미국의 소셜 미디어 기업 페이스북이 지난 4일(현지 시각) 네덜란드를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다. ‘블랙 피트(Black Pete)’라는 네덜란드의 전통 풍습을 인종차별적 행위로 규정하고 이와 관련한 그룹 페이지를 삭제했기 때문이다.
12월을 전후해 네덜란드에서는 남녀노소가 얼굴을 검은색으로 칠하고 중세 시대 옷을 입고 나타나 축제를 열거나 퍼레이드를 한다. 곱슬머리 가발을 쓰고 붉은 립스틱도 칠한다. 이를 블랙 피트라고 한다. 언제 시작됐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19세기 중반부터 굳어진 풍습이다. 특히 기독교 축제인 성니컬러스의 날(12월 5일)에 얼굴을 검게 칠한 사람들이 축제를 벌인다.
100년 이상 유지된 블랙 피트 전통에 대해 2000년대 들어 인종차별적 행위라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에도 흑인 인구가 조금씩 늘어나는 것과 맞물려 흑인을 희화화하는 인종 비하라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이들은 네덜란드가 19세기에 식민 통치를 경험하면서 블랙 피트가 생겼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백인 사회는 인종과는 무관한 행위라고 맞선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선물을 주기 위해 온 사람들이 굴뚝을 통과하느라 얼굴에 그을음이 생긴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블랙 피트를 없애자는 운동을 벌이는 시민단체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암스테르담은 2017년부터, 로테르담은 2019년부터 퍼레이드를 할 때 얼굴을 검은색으로 칠하지 말고 숯으로 그을음만 표현하라고 했다. 피부가 검다는 게 아니라 숯 검댕이 묻은 것이라는 걸 분명히 하라는 것이다. 올해 블랙 피트를 두고 유독 시끄러운 이유는 미국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에 의해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인종차별 논란이 거세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2011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블랙 피트를 없애는 데 찬성한 네덜란드인이 7%에 그쳤다. 하지만 인종차별 논란이 불거지면서 블랙 피트 유지에 찬성하는 네덜란드인이 지난해 59%였고, 올해는 47%로 줄었다.
그러나 우파 진영을 중심으로 블랙 피트를 지키려는 움직임이 강하다. 페이스북이 블랙 피트와 관련된 그룹 페이지를 삭제하자 일부 정치인은 페이스북을 비난했다. 제1 야당인 자유당의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는 “페이스북의 무차별적인 검열 행위를 막기 위한 결의안을 유럽의회에 제출하자”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