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리룬(오른쪽 4번째) 대만 국민당 주석이 8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국민당 미국 대표처 개소식에 참석했다./국민당 홈페이지

대만 야당인 중국국민당(국민당)이 8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 ‘국민당 미국 대표처’를 개소했다고 대만 언론이 보도했다. 2008년 미국 사무소를 폐쇄한 지 14년 만이다. 주리룬(61) 국민당 주석은 국민당이 친미(親美) 정당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중국의 군사 위협에 맞서 미국과의 국방 협력 필요성을 주장했다. 국민당은 전통적으로 중국과의 경제적 협력을 강조해 왔지만 대만 안보 위기감과 반중 정서가 커지면서 미국에 다가가는 것으로 보인다.

10일 대만 연합보에 따르면 주 주석은 이날 워싱턴 펜실베니아애비뉴 국민당 미국 사무소에서 열린 개소식에 참석해 “14년 전 사무소가 폐쇄되면서 워싱턴에서 국민당의 목소리가 사라졌지만 이제 우리가 돌아왔다”고 말했다. 사무소는 백악관과 미 의회까지 차로 5분 거리다. 국민당은 2008년 국민당 소속인 마잉주가 총통에 당선되면서 외교부를 통해 외교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는 판단에 미국 사무소를 폐쇄했었다. 다만 2016년 민주진보당(민진당)에 정권을 내준 후에도 미국 사무소를 재개하지 않았다.

주 주석은 이날 ‘국민당은 친중 정당으로 인식되는데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 갈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국부 쑨원 선생이 창당한 후 지금까지 국민당은 언제나 친미, 자유, 평화, 안전과 번영의 정당이었고 친중(親中) 정당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친중 정당은 “외부에서 잘못된 꼬리표 붙인 것”이라고 했다. 이 자리에는 덴 비어스 미 국무부 대만 협조 담당관 등이 참석했지만 연설은 하지 않았다고 연합보는 전했다.

주 주석은 2~9일까지 10일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해 행정부, 의회, 싱크탱크 인사들을 만났다 . 지난 6일 그는 92 공식(92共識·하나의 중국 원칙을 유지하되 표현을 각자 알아서 한다는 1992년 중국과 대만 측의 합의)에 대해 “창조적 모호성” “공식(공통 인식)이 없는 공식”이라고 했다. 의견이 다르다는 것을 합의한 것이라는 의미다.

중국은 92공식 인정을 대만과 협력의 전제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차이잉원 총통이 이끄는 대만 민진당 정부는 “중국이 정의하는 92공식은 대만 다수가 거부한다”며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반면 국민당 내에서는 중국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92공식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과 달라진 대중 관계에서 유권자에게 외면받는 92공식을 폐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갈리고 있다.

92공식에 대한 부정적 평가로 보이는 주 주석의 발언에 중국은 발끈했다. 중국 국무원 대만판공실 마샤오광 대변인은 9일 “92공식을 멋대로 왜곡해서는 안된다”며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라”고 했다. 애국주의 성향의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10일자 사설에서 “정치적으로 유치하고 국민당에 반전(집권)의 기회도 주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립대만대에서 경영학, 미 뉴욕대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주 주석은 대만대 교수로 근무하다 입법위원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마잉주 정부에서 행정원 부원장을 지냈고 2010년 신베이시장 선거에서 차이잉원 현 총통을 꺾고 시장에 당선됐다. 하지만 2016년 총통 선거에서는 차이 총통에게 패배했다. 지난해 9월 국민당 주석에 선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