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 동계올림픽 성화가 4일 중국 베이징 빠다링 장성 구간에서 봉송됐다. 봉송 주자로 나선 올림픽 여자태권도 금메달리스트 우징위가 취재진 앞에서 발치기를 선보이고 있다./AFP 연합뉴스

14년 전 베이징 하계 올림픽에서 미국 대통령에게 중국 국가주석의 옆자리를 양보해야 했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4일 개막하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별도의 오찬 회담까지 하며 주인공으로 대접받을 전망이다. 첨단 기술,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과 대립 중인 중·러의 밀착이 올림픽을 계기로 한층 부각되고 있다.

2일(현지시각) 러시아 타스통신에 따르면 유리 우샤코프 러시아 대통령 외교 담당 보좌관은 기자들과 만나 4일 베이징에서 중·러 정상이 오찬을 겸한 정상회담을 하고 에너지·금융 분야 등 15개 이상의 협력 협정에 서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샤코프 보좌관은 양측이 국제 관계에 대한 공동성명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통상 올림픽 계기로 열리는 정상회담이 다소 형식적인 것과 달리 실제 성과를 내겠다는 취지다. 우샤코프 보좌관은 “중국은 한 국가의 안보가 다른 국가의 안보에 해를 끼치면서 확보돼선 안 된다는 (러시아의)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며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러시아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강조했다. 두 정상은 4일 오후 8시(현지시각) 열리는 개막식에도 함께 참석한다.

푸틴 대통령은 2008년 베이징 하계 올림픽 때도 베이징을 방문해 후진타오 당시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점심을 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개막 전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환영 오찬에서 정상들은 줄을 서서 후진타오 주석을 만난 후 다 함께 오찬장으로 이동했다. 당시 입장 장면을 보면 후진타오 주석 옆에는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섰다. 푸틴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의 부인 로라 부시 여사 옆에 섰다. 후진타오 주석과 두 사람 떨어져 입장한 셈이다.

이번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이 개막식 전 단독 오찬을 하기로 하면서 다른 정상급들은 개막식 다음날인 5일 시 주석 주최 단체 오찬에 참석할 예정이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푸틴의 방중에 앞서 서면 인터뷰를 게재하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중국 관영 CCTV는 3일 푸틴 대통령과의 서면 인터뷰를 보도했다. CCTV, 중국국제TV(CGTN) 등 중국 관영 방송의 총책임자인 신하이슝 중국중앙방송총국(CMG) 국장(사장) 겸 중앙선전부 부부장(차관)이 직접 질문을 보내며 격을 높였다. 푸틴 대통령은 “나는 시 주석을 일찍부터 알고 있고 우리는 국제 문제에서 많은 공통 의견을 가진 좋은 친구이자 정치인으로 긴밀히 소통해왔다”며 “이번 방중 요청도 즉시 받아들였다”고 했다. 또 “중국은 국제무대에서 우리(러시아)의 전략적 파트너”라며 “국제 어젠다의 대다수 문제에서 우리의 입장은 일치하거나 매우 가깝다”고 했다. 푸틴 대통령은 “스포츠를 정치화하는데 반대한다”고도 해 미국, 영국, 일본 등의 베이징 동계 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참가 거부)을 비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도 3일 ‘러시아와 중국, 미래를 내다보는 전략적 동반자’라는 제목으로 푸틴 대통령의 기고를 실었다. 푸틴 대통령은 이 글에서 중·러 관계에 대해 “전례 없는 수준에 이르렀으며 효율성, 책임감, 미래에 대한 열망의 모델”이라며 이번 방중을 통해 시진핑 주석과 양자, 지역, 국제 어젠다에 대해 포괄적인 논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일본 등 중국 동쪽으로부터의 압박이 심해지자 시 주석은 중국 서쪽에 있는 모스크바와의 관계를 특별히 중시하고 있다. 시 주석은 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직접 참석했다. 중국 최고 지도자가 국제 스포츠 행사에 직접 참석한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시 주석은 러시아산 천연가스 도입을 확대하고, 새로 짓는 중국 원전에 러시아산 원자로를 설치했다. 중·러 무역 규모는 지난해 1400억달러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러시아 역시 서쪽을 압박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동진을 저지하는 데 중국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1일(현지 시각) 모스크바를 방문한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와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게 되면 러시아와 나토 간의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2014년 러시아에 뺏긴) 크림반도를 무력 등의 방법으로 수복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는 이유다. 푸틴이 기존의 ‘군사적 조치’ 같은 간접적 수사 대신 전쟁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이번 베이징 동계 올림픽 기간 푸틴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모험을 강행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