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중국 광둥(廣東)성 선전(深圳)에 음식·문화 복합 상가 원허유(文和友)가 문을 열었다. 오전 7시부터 생긴 줄은 강변도로를 지나 근처 다리까지 500m 이상 이어졌다. 오후가 되면서 대기 번호가 5만번을 넘기도 했다. 일부 중국 네티즌이 “차라리 고속열차 3시간 타고 창사(長沙·원허유 1호점이 있는 도시)를 다녀오는 게 빠르겠다”고 했었는데, 지금도 그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2018년 창사에서 시작한 원허유는 1980년대 중국 거리를 영화 세트처럼 만들어 놓은 푸드코트. 중국 소비 트렌드인 ‘궈차오(國潮)’와 맞물려 인기를 끌면서 “음식업계의 디즈니랜드”가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1990년 선전에 맥도널드 중국 1호점이 문을 열었을 때 서양의 맛을 보려고 줄을 섰던 중국 소비자들이 이제는 중국의 외식 브랜드에 환호하고 있는 것이다.
궈차오가 중국 젊은 층 사이에서 뚜렷한 소비·문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2000년 이후 출생자인 ‘링링허우(零零後)’의 애국주의 분위기와 결합하면서 관련 업계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매년 11월 초 열리는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 시즌인 솽스이(雙十一·11월 11일이라는 뜻)도 궈차오 현상이 휩쓸었다. 중국 매체 참고소식에 따르면. 알리바바의 쇼핑몰에서는 중국 박물관들이 만든 문구용품, 문화 상품이 작년 대비 4배 팔려 나갔다. 청나라 때 설립된 팡후이춘탕(方回春堂)의 흑임자환(丸)은 판매량이 3배 가까이 늘었다. 중국 포털사이트 바이두에 따르면, 솽스이 기간 중국산 제품 관련 검색은 작년보다 42% 증가했다. 올 상반기 중국 휴대폰 판매량 가운데 89%는 중국산이었다.
중국 매체들은 2018년 중국 스포츠 브랜드 리닝(李寧)이 뉴욕 패션 위크에 진출한 것을 궈차오의 시작으로 본다. 리닝은 중국산이란 사실을 감추기 급급했던 기존 중국 의류 브랜드와 달리 티셔츠 앞면에 ‘중국 리닝’이라는 네 글자를 인쇄했다. 올 들어 미국이 인권 문제를 들어 중국 신장 면화 수입을 금지하고 미국 브랜드인 나이키가 신장산 면화를 쓰지 않는다고 밝히자 리닝은 반대로 신장 면화를 쓴다는 사실을 전면에 내걸었다. 베이징의 대형 백화점 리닝 매장에서 만난 20대 직장인 왕(王)모씨는 “같은 품질이면 가급적 애국적인 기업 제품을 쓰는 게 마음 편하다”며 “올해 정저우(鄭州)에 홍수가 났을 때도 국산 스포츠 브랜드들은 큰돈을 기부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중국 매체 삼련생활주간은 최근 호에서 화장품 브랜드인 완메이르지(完美日記), 화시쯔(花西子), 차·음료 브랜드인 차옌웨써(茶顔悅色), 식음료 문화 상가인 원허유를 최근 인기를 끄는 궈차오 브랜드로 소개하며 “신세대 소비자는 글로벌 브랜드냐 중국산이냐를 따지지 않는다”고 했다. 화시쯔 등 화장품 브랜드들은 ‘차이나 쿨(China cool)’을 앞세워 일본 등 해외 시장에도 진출하고 있다.
런저핑(任澤平) 동우증권 수석 경제학자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중국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지난해 1만달러를 돌파하면서 새로운 소비를 추구하는 중국 젊은 소비층이 등장해 궈차오 현상을 이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부모 세대와 달리 소비에서 실용과 개성을 추구하는데, 1970년대 말 미국, 1980년대 초 일본, 1990년대 한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중국산 제품의 품질이 높아진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중국 국력 신장에 따른 문화적 자신감의 급상승, 미·중 갈등에 따른 애국주의 확산, 신규 브랜드의 진입이 쉬운 중국의 온라인 판매 환경 등이 상승 작용을 일으키며 전자 제품, 의류, 화장품, 식음료 등 소비 문화 전반에 빠르게 궈차오가 확산하고 있다. 지난 1월 중국 관영 CCTV방송은 서양의 음악 장르인 랩을 중국화한 ‘궈차오 랩’을 틀기도 했다.
☞궈차오(國潮)
’국산 바람’이라는 뜻으로 중국 기술, 문화를 기반으로 한 중국산 제품이 인기를 끄는 현상이다. 2018년 중국 스포츠 브랜드 ‘리닝’을 시작으로 본다. 2000년대 이후 태어난 젊은 층이 주도하며 화장품·IT·식음료 등 중국 소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