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자신의 거주지가 있는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 투표소에 들어섰다. 베이징 시청(西城)구 인민대표를 뽑기 위해서다. 왕취안춘(王全春·54) 중공중앙당사문헌연구원 판공실 주임, 스잉리(史英立·56) 중앙판공청 인사국 부국장, 장신민(張新民·54) 전국인민대표대회 기관 서비스센터 주임이 출마했다. 구(區), 향(鄉), 진(鎭) 인민대표는 한국의 구, 군의원에 해당하는 자리다. 시 주석은 기표한 후 초대형 중국 국기 앞에 놓인 붉은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었다. 그는 “인민대표를 뽑는 것은 인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것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중국에서도 5년에 한 번 직접선거를 한다. 구, 향, 진 인민대표 등 ‘기층(基層) 인민대표’를 뽑는 선거다. 그다음부터는 간접선거다. 구 인민대표는 상위 기관인 시(市), 성(省)의 인민대표 선출에 참여하고, 이들은 다시 헌법상 중국의 최고 권력 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국회 격) 대표 3000여 명을 뽑는다. 베이징에서는 이날 구 인민대표 4898명, 향·진 인민대표 1만1137명을 뽑았다. 이 선거를 시작으로 시 주석의 3연임을 최종 승인하는 14기 전인대(2023년 3월 출범) 구성 작업이 본격화됐다.
같은 날 베이징의 한 대학에 다니는 류정신(가명)도 학교 안 투표소에서 투표했다. 후보 2명이 출마했다는 사실은 전날 지도 교수가 보낸 자료를 보고 처음 알았다. 단체대화방에 올라온 후보 신상 정보에는 공약은 없고 후보자의 학력, 경력만 있었다. 정치 관련 활동도 “코로나 방역 때 구 정부에 적극 협조했다”는 내용뿐이었다.
류씨는 “그나마 5년 전 선거 때보다는 나은 편”이라고 했다. “그때는 투표소 가서 거기 있는 입간판을 보고 후보가 누군지 처음 알았거든요.” 투표소에는 오전 8시부터 사람들이 긴 줄을 서 있었다. 류씨는 “인민대표가 평소 우리와 소통하는 일은 별로 없다”며 “투표 참여 여부가 입당 등 여러 평가에 반영되니까 투표하는 것”이라고 했다. 베이징 유권자 가운데는 류씨보다 인민대표 선출에 더 관심이 있는 시민도 있다. 하지만 5년에 한 번 치러지는 선거가 너무나도 조용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베이징의 기층 인민대표 선거는 지난 9월 선거인 등록으로 시작됐다. 투표하려면 사전에 주민센터에 등록해야 한다. 후보자는 정당, 단체, 선거구 유권자 추천을 받아 출마하지만 당국의 심사를 거치기 때문에 당국의 승인을 받지 못한 후보의 출마는 사실상 막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베이징의 경우 선거 경쟁률이 매번 2대1 내외 수준을 유지한다. 이후 선거 과정도 일반인에게는 ‘깜깜이’로 이뤄진다. 동네 게시판에는 유권자로 등록한 사람 명단은 공개되지만 정작 뽑을 후보자 정보는 게시되지 않는다. 투표를 독려하는 포스터가 아파트 단지, 지하철 역사 등 곳곳에 붙지만 포스터에서도 투표소 위치처럼 필요한 정보는 찾을 수 없다. 요란한 선거운동도 볼 수 없었다.
전직 인권변호사 등 14명은 지난달 베이징 기층 인민대표에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중국 인터넷에는 글을 올릴 수 없어 트위터를 통해서 출마 의사를 공개했다. 하지만 이들의 후보자 등록은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선거를 4일 앞둔 1일 이들은 “생명과 안전을 위해 선거를 중지한다”고 밝혔다. 14명 중 10명은 출마 선언 후 경찰의 감시·면담·강제 퇴거 등의 공포와 압력에 시달렸다고 했다.
중국 공산당은 기층 인민대표 선거를 중국식 ‘전 과정(全過程) 인민 민주’의 핵심이라고 부른다. 이를 바탕으로 조직되는 전인대 제도에 대해 시 주석은 “인류 정치 제도사의 위대한 창조”라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런 주장을 하기 전에 자국 국민을 납득시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