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변에 들어선 25층 건물은 멀리서 보면 눈부시게 빛났다. 하지만 가까이 갈수록 이가 빠진 듯 떨어져 나간 유리창들과 붉게 녹슨 철재 기둥이 모습을 드러낸다. ‘궈먼(國門)빌딩’이라는 이름처럼 중국 랴오닝성 단둥과 북한 신의주를 잇는 압록강대교의 ‘대문’ 격인 이 빌딩은 준공 7년이 지난 지금 천천히 폐허가 돼 가고 있었다. 공사 대금을 못 치르며 200억원대 소송에도 걸린 상태다.

중국의 대표적 대북 교역 도시 랴오닝성 단둥과 북한 신의주를 잇는 '압록강대교'에 이르는 도로가 지난달 29일 텅 비어 있다. 중국이 4000억원 넘게 투자했지만 완공된 지 7년이 지나도록 방치된 상태다. 다리와 연결된 오피스 빌딩(빨간 원 안)도 500억원 가까이 들여 지었지만 창문이 떨어져 폐허 같은 모습이다. 작은 사진 속 왼쪽 다리는 앞서 건설된 철도·도로 교량인‘북중우호교’이고, 오른쪽은 6·25 때 끊어져 교량 기능을 상실한‘압록강단교궩다. /박수찬 특파원·연합뉴스

건설비만 500억원 가까이 투자된 오피스 빌딩이 버려진 것은 북한이 7년째 압록강대교의 개통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방북한 원자바오 당시 중국 총리가 제안해 건설된 길이 3㎞의 다리는 미래 북·중 경제협력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최소 4000억원이 들어갔다는 이 다리는 2014년 완공됐지만 북한 쪽 연결도로 공사가 지연됐다. 2019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방북한 후 지난해 북측이 연결 도로를 지었지만 북측 세관 등 무역을 위한 필수시설은 아직 들어서지 않은 상태다. 압록강대교와 연결되는 ‘프리미엄’을 자랑하던 궈먼빌딩도 문을 못 연 채 방치되고 있다.

빌딩 주인은 단둥의 대표적 기업인 수광(曙光) 자동차그룹 계열사다. 중국 법원 자료에 따르면 이 회사는 공사비 가운데 250억원을 지급하지 못해 건설사로부터 소송당했다. 수광그룹은 북한으로 자동차, 부품을 수출해왔으나 매출 부진, 투자 실패 등으로 주가가 2017년 대비 60% 이상 곤두박질쳤다. 한 사업가는 궈먼빌딩을 가리켜 “대북 교역 도시 단둥의 비극을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했다.

중국의 대표적 대북 교역 도시인 단둥 경제가 북한의 국경 봉쇄로 쇠락하고 있다. 단둥은 북·중 교역의 70%를 담당하고, 북한 근로자들을 고용해 의류, 가전제품을 생산하던 도시다. 하지만 북한의 핵실험으로 유엔의 대북 제재가 강화된 데다 북한이 지난해 2월 초 단둥으로 들어가던 국경을 완전히 봉쇄하면서 타격을 입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 대북 교역 도시인 단둥 경제가 북한의 국경 봉쇄로 쇠락하고 있다. 단둥은 북·중 교역의 70%를 담당하고, 북한 근로자들을 고용해 의류, 가전제품을 생산하던 도시다.

지난해 단둥 경제는 전년 대비 0.4% 성장해 중국 전체(2.3%)의 6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올 상반기에도 중국 전체 무역이 코로나 전인 2019년 대비 23% 증가하는 동안 단둥은 2019년 대비 마이너스 20%를 기록하고 있다. 6·25 당시 끊어진 압록강단교(斷橋)를 보기 위해 중국 전역에서 온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압록강변 상가는 빈 점포가 적지 않았다.

북한이 1년 반 넘게 국경을 닫으면서 북한에 거주하던 화교(중국 국적자)들은 북한 집에 못 가고 단둥에서 ‘난민’ 신세가 됐다. 신의주에 살며 무역업을 하던 화교 K씨도 그중 하나다. 그는 지난 1년 반 사이 단둥에서 거처를 5번 옮겼다고 했다. 식당에서 일하지만 집 구할 돈도 없어졌다. 김씨는 “단둥에만 나 같은 사람이 수백명”이라며 “(중국과) 무역이 끊겨 신의주 장마당 물건은 70%가 줄었다고 한다. 특히 식량이 문제”라고 했다.

최근까지도 북한 경제가 대북 제재, 코로나, 기상재해 등 삼중고를 겪으며 북한이 조만간 단둥 쪽 교역로를 열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한 중국인 대북 무역업자는 “전적으로 북한에 달렸는데, 전혀 신호가 없다”고 했다. 북한 남포와 산둥성 룽커우 사이에 일부 해상 무역이 이뤄지고 있지만 규모는 크지 않다. 또 다른 대북 무역업자는 “최근 룽커우에서 북한으로 건축 자재를 보내기로 했는데 북한에서 갑자기 ‘안 받겠다’고 했다”며 “이유를 물으니 ‘중국이 (대북 제재로) 북한 석탄을 안 받는 상황이 풀려야 한다’고 하더라”고 했다. 한 소식통은 “북한은 중국에 제재 해제 등 구체적 액션을 원하고 있는데 중국이 국제 제재를 이유로 미온적이다 보니 양측의 입장 차가 있다”고 했다.

중국 랴오닝성 단둥 궈먼빌딩. 압록강대교의 랜드마크지만 7년째 방치되면서 외장재 곳곳이 떨어져 나가고 철재 부위는 녹슨 상태다./단둥=박수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