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중국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프간 내전이 재발해 혼란이 장기화될 경우 자국의 이익이 걸린 중앙아시아 정세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무력으로 아프간 영토 대부분을 다시 장악한 탈레반은 아프간 수도 카불을 점령한 뒤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 건국을 선포했다.

왕이(오른쪽)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지난 7월 28일(현지시간) 톈진에서 자국을 방문한 아프가니스탄 무장 조직 탈레반의 2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왼쪽)와 면담하고 있다. 왕이 부장은 이 자리에서 "미군 철수는 미국의 아프간 정책 실패를 상징하고, 아프간 국민들이 자국을 안정시키고 발전시킬 중요한 기회"라고 말했다./AFP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0일(현지 시각) 모스크바를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회담을 가진 뒤 기자회견에서 “현재 탈레반이 수도(카불)를 포함해 아프간 영토 대부분을 통제하고 있다”며 “이것이 현실이며 우리는 거기서 출발해 아프간 국가 붕괴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가 보도했다. 탈레반을 인정하자는 취지로 해석됐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현재 아프간 상황에 대해 “끔찍하다” “실망스럽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탈레반이 독일 등 서방에 협력했던 아프간인들의 안전한 출국을 허용한다면 인도주의 차원에서 협력할 의지가 있다는 점을 러시아가 탈레반 측에 전달해달라고 했다.

러시아 타스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21일에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갖고 아프간의 안정과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은 1979~1989년 아프간을 무력 침공했고, 러시아 최고법원은 2003년 탈레반을 테러 조직으로 규정하고 러시아 내 활동을 금지했다. 하지만 아프간 정국이 장기간 불안정해질 경우 러시아의 핵심 이익이 걸린 중앙아시아가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탈레반 정권을 인정하는 쪽으로 입장을 밝힌 것이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20일 루이지 디 마이오 이탈리아 외무장관과의 통화에서 “탈레반의 다음 정책에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있다”면서도 “(개방적·포용적 국가를 만들겠다는 취지의) 탈레반의 발표를 중시하며 탈레반이 현대적 정치 세력으로 조정·전환하도록 격려하는 것이 아프간인의 이익과 지역 안정에 유리하고 난민 발생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왕 부장은 지난 19일 도미닉 라브 영국 외무장관과의 통화에서도 “(아프간에 대해) 국제사회는 더 많은 압력을 가할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방향으로 더 격려하고 이끌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