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면서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공관을 폐쇄하고 자국민을 철수시키는 가운데 중국⋅러시아⋅ 터키 등은 아프간 대사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같은 직접 개입은 피하면서도 아프간에 대한 영향력 강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아프간과 중앙아시아를 둘러싸고 강대국의 ‘그레이트 게임’이 재현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지르노프 아프간 주재 러시아 대사는 16일 러시아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탈레반 점령 후) 상황은 평화롭고 조용하다”며 “수도 카불은 전임 대통령인 가니 정부 때보다 낫다”고 말했다. 지르노프 대사는 현재 100여 명이 머물고 있는 대사관 주변을 탈레반이 지켜주기로 했다고도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탈레반과의 관계를 심화시키려는 러시아의 노력이 그대로 드러난 발언”이라고 했다. 러시아 전신은 구소련 시절인 1979~1989년 아프간을 무력 침공했고, 탈레반은 반소련 투쟁 과정에서 결성됐다.
중국은 아프간 내 자국민을 철수시키면서도 “아프간 탈레반과 연락을 유지해 아프간 문제 해결을 위한 건설적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화춘잉(華春塋)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앞서 16일 브리핑에서 “탈레반 측은 여러 차례 중국과의 양호한 관계를 희망했고, 중국도 아프간 재건·발전에 참여하길 기대했으며, 결코 어떤 세력이 아프간 영토를 이용해 중국에 위해를 가하도록 허락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을 환영한다”고 했다.
중·러와 아프간의 경제 무역 관계는 미미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아프간 문제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아프간 혼란이 경제, 에너지 안보 등 핵심 이익이 걸린 중앙아시아로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특히 아프간이 과거처럼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단체의 근거지가 될 경우 국내 안보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왕위(王愚) 아프간 주재 중국 대사는 16일(현지시각) 중국 관영 CCTV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아프간) 내정에 간섭하지 않지 않고 정파들과 폭넓게 접촉해 아프간 국민 전체를 우호적으로 대할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