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 코로나 백신 부족 사태를 겪는 가운데 대만 대기업들이 1000만회 분량의 백신을 사 정부에 무상 제공하기로 했다. 물류 비용 등을 포함해 100억대만달러(약 4000억원)어치다. 중국 정부 개입으로 대만 정부가 백신 확보에 어려움을 겪자 기업들이 나선 것이다.

자유시보 등 대만 언론에 따르면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업체인 대만 TSMC와 애플 제품 조립으로 유명한 대만 가전회사 폭스콘 측은 12일 독일 바이오엔테크로부터 각각 500만회씩, 총 1000만회 분량의 화이자 백신을 도입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바이오엔테크는 미국 화이자와 공동으로 코로나 백신을 개발한 회사다. 백신은 독일 공장에서 생산돼 9월부터 대만에 공급될 전망이다.

대만 정부는 지난 2월 “바이오엔테크로부터 500만회 분량의 백신을 도입하려 했지만 중국 정부의 방해로 계약 막바지에 무산됐다”고 주장했다. 중국 대륙과 대만에서 바이오엔테크 백신의 생산·공급권은 개발비를 댄 중국 상하이 푸싱제약이 가지고 있다. 이와 관련, 대만 자유시보는 바이오엔테크에 파견된 푸싱제약 출신 중국인 고위 임원이 계약서에서 대만을 ‘나라(country)’로 표현한 부분을 문제 삼아 반대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5월 중순 대만에서 코로나가 급증하자 대만 야당인 국민당은 중국산 백신 도입을 주장했지만 반중 성향인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은 이를 거부했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정부가 통일적으로 도입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코로나로 산업 분야까지 영향을 미치자 폭스콘과 TSMC는 각각 6월 1일과 10일 해외에서 백신을 도입하겠다며 정부 허가를 요청했고, 차이잉원 총통은 6월 18일 궈타이밍(郭台銘) 폭스콘 창업자, 류더인(劉德音) TSMC 회장과 면담하고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가 못 구했던 백신을 기업들이 나서서 24일 만에 계약에 성공한 것이다.

대만 정부는 12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도입이 대만 정부의 지도 아래 이뤄졌다고 했다. 또 백신이 중국 공장이 아닌 독일 공장에서 생산해 현지 상표가 붙고, 중국 등 다른 곳을 거치지 않고 대만으로 직송된다고 했다. 중국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뜻으로 보인다. 다만 계약상으로는 중국 푸싱제약의 자회사가 공급자로 됐다는 점에서 중국 측의 양보가 있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궈 회장은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중국) 대륙 베이징 당국의 관여나 간섭은 없었다”고 했다.

미국, 일본이 대만에 백신을 지원했지만 대만의 백신 확보량은 이달 초 기준 700만회분에 그쳐, 아직 본격적으로 대규모 접종을 못 하고 있다. 1차례 이상 백신을 맞은 대만인은 전체 인구의 14%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