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며 장기(長期) 대결을 예고한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가 원자력·에너지 등에서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에는 러시아산 원자로를 넣은 원전이 들어서고 서방의 수출 금지 조치에 대비해 원전 연료, 석유·가스 분야 협력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신화통신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화상회의를 열고 장쑤성 롄윈강시 톈완(田灣) 원전, 랴오닝성 후루다오시 쉬다푸(徐大堡) 원전 기공식을 함께 지켜봤다고 보도했다. 톈완 7·8호기, 쉬다푸 3·4호기 등 총 4개 중국 원전은 러시아가 개발한 3세대 원자로인 VVER-1200이 적용됐다.
중국 매체 환구시보 영문판은 중·러 정상의 원자력 협력에 대해 “강화되는 미국의 제재·규제에 맞서 가까워지고 있는 양국 관계를 보여준다”고 했다. 중국 에너지 전문 매체 ‘차이나5e닷컴’의 한샤오핑 수석 애널리스트는 환구시보에 “중·러의 원자력 협력은 미국의 포위 전략에 맞서 양국의 에너지 안보, 무역 확대에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1~4월 중·러 무역은 402억달러(약 45조원)로 전년 대비 20% 가까이 증가했다. 중국 상무부는 양국 무역액이 올해 사상 최고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4380㎞ 국경선을 맞댄 중국과 러시아는 1969년 국경 전쟁을 벌이며 사실상 적국이 됐다. 1979년 미·중 수교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미·중 전략적 동맹 성격이었다. 2000년대 들어 중국과 러시아는 중앙아시아 지역 테러 집단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상하이협력기구를 발족시키고, 개발도상국 입장에서 금융·기후변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에도 참가했다.
양국 협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집권 이후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미국이 중국에 대해 무역·기술 등 전방위적 견제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자 중국은 원자력, 우주 개발 등 첨단 분야에서 러시아와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러시아 역시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침공·합병 후 시작된 서방 제재로 중국과의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리신 상하이국제문제연구원 러시아·중앙아시아 센터장은 “(중·러 협력에서) 핵심 분야는 첨단, 신기술”이라며 “미국의 대중 기술·무역 제한 조치 속에서 일부 미국 기술을 러시아 기술로 대체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