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IT 전문가와 네티즌들이 대만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 TSMC를 비난하자 중국 관영 매체가 “근시안적 사고”라며 자국 여론을 비판했다. TSMC가 미국의 ‘반도체 동맹’ 강화 방침에 협조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지만 중국 역시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인 대만과 협력해야 하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다. 대만해협의 군사적 긴장이 연일 높아지고 있지만 반도체를 둘러싼 중국과 대만의 오월동주(吳越同舟)가 계속되는 모습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최근 ‘반도체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방법은 세상에 없다’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칼럼은 중국 인터넷에서 논란이 되는 TSMC 난징 공장 투자 건을 다뤘다. TSMC는 지난달 말 중국 장쑤성 난징에 29억달러(약 3조2000억원)를 투자해 생산라인을 확장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2016년 설립된 난징 공장은 월 2만개의 28㎚(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반도체 웨이퍼를 생산하고 있는데 증설 후에는 월 4만개로 늘어난다.
중국 네티즌들은 TSMC가 미국 정부의 반도체 정책에 협조해 난징 추가 투자액의 4배 규모인 120억달러를 미국에 투자한다는 점과 난징 공장의 설비가 미국 공장에서 생산하려는 반도체(5㎚) 설비보다 낙후됐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투자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인민일보는 이런 여론에 대해 “내부 순환(기술 자립과 내수)만 강조하는 일방적 발상, 근시안적 행태, 무조건 선두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과대망상은 (중국) 반도체 산업의 장기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국제 정세가 복잡할수록 국제 산업 공급망에서 협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중국 지방 정부들이 반도체 붐에 편승해 앞다퉈 투자에 나섰던 최근 상황도 비판했다. 인민일보는 “2년 만에 외국 기술을 대체하고 3년 만에 업계 선두와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식의 구호를 내세웠지만 정작 중대한 반도체 생산 프로젝트가 부실과 가동 중단 상황에 직면했다”고 했다. 이어 “산업계 인사들은 10년간 칼 한 자루를 가는 각오, 정력과 함께 글로벌 협력, 개방 혁신을 통해 세계 반도체 판도에서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며 “여론 역시 격차를 이성적으로 보고 객관적 분위기를 조성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도 칼럼을 통해 “중국의 반도체 제조 능력 진척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반도체 자급자족을 위해 중국이 직면해야 하는 진짜 과제를 감추는, 잘못된 자신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중국 관영 매체의 이 같은 보도는 중국의 지배 세력인 공산당이 최근 반도체와 관련된 국제 상황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중국은 미·중 무역 전쟁에서 반도체를 “목을 조르는 핵심 기술”로 보고 국산화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반도체 자급률이 여전히 30% 수준에 머물고 있다. 기술 면에서도 대만 TSMC, 한국 삼성전자에 비해 뒤처져 있다는 평가다. 지방 정부의 지원 속에 7㎚급 반도체 생산을 목표로 2017년 설립된 우한훙신반도체제조(HSMC)는 기술력 부족, 자금 조달 문제로 올 초 공중분해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