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홍콩의 행정장관과 입법회(의회) 의원을 친중(親中) 인사로 뽑도록 바꾼 홍콩 선거제도 개편안을 11일 폐막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국회 격)에서 확정했다. 중국에 충성하는 ‘애국자’만 홍콩의 선출직 공무원이 될 수 있다는 핵심 원칙이 담겼다. 이에 따라 홍콩에 대한 중국의 지배력이 극대화될 전망이다.

중국 전인대는 이날 찬성 2895명, 반대 0명, 기권 1명으로 홍콩 행정장관과 입법회 의원 선거제도 개편안을 통과시켰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개편안에는 홍콩 선거위원회(행정장관 선거인단) 위원 수를 현재 1200명에서 1500명으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행정장관 입후보 자격을 강화하는 동시에 내년 캐리 람 현 행정장관의 후임 선출을 앞두고 선거인단에 친중 인사들을 추가로 확보하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홍콩 정부가 후보자격심사위원회를 만들어 홍콩 행정장관 후보와 입법회 의원 후보의 자격을 심사하는 내용도 신설됐다. 위원회는 후보가 홍콩기본법, 홍콩 국가보안법, 전인대 요구 사항 등에 적합한지 심사해 출마 여부를 결정한다. 이럴 경우, 중국 정부가 원하지 않는 인물이 행정장관이나 입법회 선거에 출마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질 전망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1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전체회의에서 홍콩 선거제 개편안이 통과되지 박수를 치고 있다./AFP 연합뉴스

이번 전인대는 또 홍콩 입법회 의원 수를 70명에서 90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현재는 입법회 의원 중 절반인 35명은 홍콩 시민이 직접 선거로 뽑고 나머지는 직능 단체 간접 선거로 선출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친중 성향 인사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선거위원회도 입법회 의원 일부를 선출하도록 했다. 구체적 비율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직접 선거로 뽑는 의원 비율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는 반중 성향인 홍콩 야권이 입법회 선거에서 대승을 거두더라도 홍콩 의회를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의미다.

전인대는 이날 통과된 개편 방안에 대해 “국가와 홍콩을 사랑하는 사람이 홍콩을 다스리는 원칙을 확고히 하고 국가 주권과 안전, 발전 이익을 지키는 데 유리하다”고 했다. 시진핑 주석을 비롯해 3000명 가까운 전인대 대표들은 이날 전인대 폐막식 겸 전체회의에서 예산안 등 10개 안건을 처리했는데 홍콩 선거제 개편안이 통과됐을 때 박수가 가장 오랫동안 이어졌다고 한다. 전인대에서는 안건 대부분이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되지만 지난해 홍콩보안법 투표 때는 기권 6표, 반대 1표가 있었다. 반면 이번 선거제 개편안은 반대 없이 기권 1표만 나왔다.

홍콩 야권은 이번 선거제 개편에 대해 “범민주파에 대한 정치적 사망 선고” “일국양제의 끝”이라고 반발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후보자격심사위원회가 입법회 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 후보를 심사하게 되면서 당국이 충분히 애국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야당 후보는 사실상 출마가 금지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전인대 홍콩 대표인 훙웨이민(洪爲民) 홍콩인터넷협회 명예회장은 본지 통화에서 “홍콩 정부를 비판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라며 “애국적인 야당도 충분히 가능하고 이미 일부 그런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찬성 버튼 누르는 시진핑 - 11일 오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전체회의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홍콩 행정장관과 입법회(국회 격) 의원 선거제도 개편 법안에 녹색의 찬성 버튼을 누르고 있다. 전인대 위원의 책상 위에는 찬성의 녹색, 반대의 적색, 기권의 황색 버튼이 있다. 이날 찬성 2895표, 반대 0표, 기권 1표로 통과된 개편안은 중국에 충성하는‘애국자’만 홍콩 선출직 공무원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 핵심 원칙이다. /AFP연합뉴스

홍콩 언론들은 이번 선거제 개편에 대해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가장 큰 폭의 정치적 개편(shake up)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은 2019년 홍콩에서 6개월간 대규모 반중 시위가 이어지자 지난해 홍콩 내 반중 세력을 감시·처벌하는 내용의 홍콩보안법을 제정했다.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애국자치항(愛國者治港·애국자가 홍콩을 다스린다)’ 원칙을 강조하면서 홍콩 정치권에 대한 개편 작업이 더욱 탄력을 받았다.

중국이 홍콩 선거제 개편을 결정하면서 미국과의 갈등 관계가 더욱 악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중국이 홍콩보안법을 제정하자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은 무역 등에서 홍콩에 대한 특별 대우를 철회하고 중국과 홍콩 주요 인사들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지난 1월 취임한 조 바이든 행정부는 외교 정책 측면에서 트럼프 행정부보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더 강조하고 있다. 미국은 홍콩 선거제 개편 결정 전날인 10일 미사일 구축함인 존핀함을 대만해협에 보내고 11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진을 공개했다. 이에 대해 중국군 동부전구 장춘후이(張春暉) 대변인은 “미 군함의 행위는 잘못된 신호를 보내 의도적으로 지역 정세를 해치고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훼손한다”며 비판 성명을 냈다.

한편 리커창 총리는 전인대 폐막 후 열린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올해 성장 목표를 작년 대비 6% 이상으로 잡았지만 해외 기관들은 8%까지 보고 있다”는 질문에 대해 “6% 이상이라는 경제성장 목표는 낮은 게 아니다”라며 “안정적으로 가야 유리하게 갈 수 있다”고 했다. 리 총리는 미·중 관계에 대해 “양국 사이에는 공통 이익이 있고 이 공통점에 더 많은 힘을 쏟아야 한다”며 “공통 이익을 확대하고 중·미 관계가 어려움을 넘어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방향으로 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