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3일 광둥(廣東)성 선전(深圳)을 방문했다. 그는 14일 선전경제특구 설립 40주년 기념식에서 선전을 세계적 혁신 도시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힐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부친이 터를 닦은 선전에서 개혁·개방을 강조함으로써 미·중 갈등 국면에서 결속력을 강화하려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선전이라는 이름을 짓고 특구 개발의 첫 삽을 뜬 사람은 시 주석의 아버지인 시중쉰(習仲勳)이다. 10년간 이어진 극좌 사회운동인 문화대혁명(1966~1976년) 당시 감옥에 투옥됐던 시중쉰은 1978년 광둥성 당서기에 부임했다. 그가 맨 먼저 현지 지도를 간 곳은 바오안(寶安)현이었다.

1978년 9월 쉬중쉰(가운데) 중국 광둥성 서기가 광둥성 후이양(惠陽)을 현지 시찰하고 있다. 후이양에 속했던 바오안현은 1979년 선전시로 개편된다. 맨 왼쪽이 당시 칭화대를 다니던 시진핑 중국국가주석. /인민망 캡처

홍콩과 마주 본 농촌인 바오안현에는 당시 홍콩으로 도망가는 중국인 행렬이 이어져 문제가 되고 있었다. 시중쉰은 경제 발전 없이는 홍콩으로의 탈출 행렬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1979년 바오안현을 선전시로 개명하고, 중앙의 비준을 받아 1980년 경제특구로 지정했다.

선전 발전의 원동력은 권한 분산과 대외 개방이었다. 선전신문은 2013년 기사에서 “시중쉰이 중앙의 권한을 광둥성에 이양해 달라고 과감하게 건의해 승인을 받아냈다”고 했다. 홍콩, 마카오와 가깝고 중앙 정치의 간섭을 덜 받는 선전에 외자(外資)가 밀려왔고 중국 첫 맥도널드, 주식거래소가 들어섰다. 시중쉰은 1989년 천안문 사태 직후 중앙 정치에서 물러나 선전으로 내려갔고 죽기 직전까지 머물렀다. 선전은 중국 경제성장의 기적을 이루며 2018년 홍콩 경제력을 앞섰다.

시진핑 주석 역시 선전을 미래 중국을 대표하는 도시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시 주석은 2019년 8월 선전을 ‘중국특색사회주의 선행 시범구’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광둥성·홍콩·마카오를 묶는 거대 경제권인 ‘웨강아오 대만구’의 중심 도시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충격과 미·중 갈등 속에서 이 계획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선전에는 화웨이, 텅쉰, 중싱(ZTE) 등 중국 대표 기업들의 본사가 자리 잡고 있는데 이 기업들이 차례차례 미국 정부의 제재 명단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13일 이번 시 주석의 광둥 방문을 다룬 중국 관영 신화통신 기사의 제목은 ‘새로운 상황에서 자력 경쟁의 길을 말한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