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 브랜스태드 중국 주재 미국대사가 중국의 대표적인 국영언론인 인민일보에 실어달라며 기고문을 보냈다. 미국 기술을 탈취하는 중국 기업과 유학생을 비난하고, 정부의 통제로 정상적인 인적교류활동이 막혔다면서 각성을 요구하는 등 중국을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이 기고문을 받고 격앙한 인민일보는 “사실과 맞지 않는 허술함으로 가득찬 수준 이하의 글”이라며 퇴짜를 놨다. 그러자 미 국무부가 9일(현지시각) ‘중국 선전 체제의 위선’이라며 브랜스태드 대사의 당초 기고문(영어·중국어)과 인민일보의 거절문을 모두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정치·경제·언론 등 각분야로 확전되고 있는 두 나라의 갈등의 단면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인민일보가 퇴짜를 놓은 브랜스태드 대사의 기고문 제목은 ‘호혜에 기반해 두 나라 관계를 새로 짜기’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중국과 건설적이면서 성과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하기를 바라왔고 이런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는 말로 시작하는 기고문은 상당부분 중국 체제를 비판하고 양국 관계 악화를 중국의 책임으로 돌리는 내용으로 채워져있다.
브랜스태드 대사는 “두 나라의 관계가 갈수록 균형을 잃고 있다”며 “중국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 진출해 매출을 올리고, 투자를 하고, 각종 프로젝트에 입찰하며 자본을 불려갔고, 중국 유학생과 연구자들은 미국 대학과 연구소의 환대 속에 지식을 습득해 중국 경제 현대화에 활용했다”고 주장했다. 또 중국 기자들을 ‘국영 매체 소속 근로자(state media workers)’로 지칭하면서 이들은 미국에서 자유롭게 일했지만, 미국 언론인(journalist)들은 중국 관련 취재를 할 때 각종 제재에 직면하고, 심지어 중국 입국까지 제한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이런 불균형이 외교·경제 각 분야에 만연해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미국 주재 중국 외교관들이 미국 사회의 각 분야와 자유롭게 접촉할 수 있는 반면, 재중 미 외교관들은 중국사람들과 아주 기초적인 만남을 가질때조차 당국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 진출한 일부 중국 기업들에 대해서 “그들은 현지에서 일자리를 창출할 목적이 아니라 기술을 습득해 중국으로 빼돌려 미국과 경쟁하기 위해서 미국 기업을 인수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미 정부가 기술 탈취를 이유로 일부 중국 기업과 유학생들에 제재를 가한 것에 대한 당위성도 강조했다. 미국 지적재산을 탈취해온 기업으로 중국 통신업체 ‘화웨이’를 적시했다. 브랜스태드 대사는 미·중 관계 경색의 책임이 중국에게 있음을 확실히 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부분에 대해서만 선택적으로 미국과 교류하고, 미국인과 중국 사회와의 전반적인 교류를 통제해온 중국 정부의 오랜 전략이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브랜스태드 대사의 기고문은 “두 나라가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주미 중국 대사가 미국인들과 자유롭게 교류하듯 나도 중국인들과 자유롭게 만나야 한다”는 말로 끝난다.
이 같은 내용의 기고문 게재요청을 받은 인민일보는 미 정부와 브랜스태드 대사를 거세게 비난하는 내용을 담아 거절문을 보냈다. 인민일보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정치적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미국 주재 중국 언론기관에 대해 냉전 시대의 수준의 이념적 편견을 갖고 박해하고 있다”며 최근 미국이 중국 관영 매체들을 ‘외교 사절’로 지정해 활동범위에 제약을 가하고, 중국 기자들의 비자 발급 등을 제한한 행위를 거론했다.
인민일보는 “미 당국의 비자 제한으로 인민일보 소속 주미 특파원과 가족들이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다면서 “미국 정부가 중국 언론인에 대한 차별을 당장 시정해야 한다”고도 했다. 인민일보는 그러면서 “대사가 보낸 기고문은 사실과 맞지 않고 허술함으로 가득차 있으며, 인민일보 기고문으로 채택돼 게재할만한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그래도 글을 싣고 싶으면 많이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는 9일(현지시각) 이 두 글을 나란히 홈페이지에 게재하면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명의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중국공산당의 주 선동지인 인민일보가 주중 미 대사의 기고문에 대해 장황한 불만을 늘어놓으면서 게재를 거절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고문은 통제나 검열없이 여러 분야에서 대화를 하면서 양국간 협력을 강화하자는 내용이었는데, 인민일보가 보인 반응에는 표현의 자유와 진지한 지적 토론을 두려워하는 중국공산당의 모습이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또 “중국 관료들은 활기와 자신감이 넘치고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미국 민주주의 체제의 덕을 톡톡히 봤다”며 추이톈카이 주미 중국대사가 올해에만 워싱턴포스트·폴리티코 등 5개 언론매체에 기고문을 실었고,CNN·CBS 등 방송등과 독점 인터뷰를 가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글로벌타임스나 차이나데일리 같은 국영 매체들이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미국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서 미국과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 체제를 공격해왔다고도 주장했다.
브랜스태드 대사의 기고문이 중국 정부로서는 용납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난의 강도가 높다는 점에서, 이번 기고문 소동은 미국이 거절될 것을 뻔히 알면서 의도적으로 벌인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