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정글에서 반세기 넘도록 유인원 오랑우탄을 밀착 관찰하며 베일에 벗긴 생태를 세상에 알린 세계적인 동물학자 겸 인류학자 비루테 골디카스(80)가 24일 지병인 폐 질환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설립해 이끌어오던 국제오랑우탄재단은 25일 비루테스의 별세 소식을 전하고 “그녀는 인간이 자연과 하나이며, 우리의 생존을 위해 자연 세계를 반드시 보호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했다. 재단은 이어 “트라이메이츠(Trimates)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고도 했다. 트라이메이츠란 셋(tri)과 영장류(primate), 또는 친구(mate)를 합성한 신조어다. 혈혈단신 정글로 들어가 베일에 가려진 유인원을 연구하며 동물생태학과 인류학에 공헌한 세 여성학자인 다이앤 포시·제인 구달·비루테 골디카스를 말한다. 고릴라 연구와 보호에 헌신하다 1985년 요절한 포시, 침팬지의 삶을 세상에 알리고 지난해 10월 타계한 구달에 이어 골디카스까지 세상을 떠났다.
백인 여성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이들은 영국의 생물학자 겸 고고학자 루이스 리키(1903~1972)를 사사했다는 학연으로 연결돼있고, 환경운동가로도 족적을 남겼다는 점에서 ‘리키의 천사들’로도 불렸다. 셋 중 가장 마지막에 세상을 뜬 골디카스는 1946년 캐나다로 향하던 리투아니아 출신 이민자의 딸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원숭이를 주인공으로 한 동화 ‘호기심 많은 조지’에 흠뻑 빠지면서 영장류를 연구하는 탐험가로 인생의 행로를 정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를 거쳐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동물학 학사·인류학 석사를 받으며 영장류 현지 생태 연구에 대한 꿈을 키웠다. 그리고 리키 박사를 만나 ‘트라이메이츠’의 마지막 멤버로 합류했다.
앞서 독학으로 자연 생태를 배우고 스물세살이던 1957년 케냐로 건너와 박물관 직원으로 일하던 영국 출신 제인 구달이 침팬지 생태를 밀착 관찰하는 임무를 맡고 탄자니아 곰베 숲으로 향했다. 6년 뒤인 1963년에는 미국 켄터키주의 어린이 병원 치료사로 일하다 동물의 생태에 흠뻑 빠져 아프리카로 건너온 서른 한 살의 다이앤 포시가 역시 루이스 리키 사단에 합류한 뒤 고릴라 생태 현장 연구를 위해 르완다로 향했다. 두 사람에 이어 세번째 유인원 현장 연구자가 된 골디카스가 향한 곳은 아프리카가 아닌 인도네시아 칼리만탄섬의 열대 우림이었다.
침팬지·고릴리와 함께 대표적인 유인원이면서도 생태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오랑우탄의 서식지가 이곳이기 때문이다. 포시·구달과 달리 동물학 관련 학위자였던 골디카스는 리키 박사의 유인원 연구팀이 되기 위해 3년 간 끈질기게 설득했다고 한다. 골디카스는 1971년 배우자와 함께 보르네오의 탄중 푸팅 보호구역에 도착했다. 전화·도로·전기 등 기본 생활 인프라가 전무한 그곳에서 그는 오랑우탄 현장 연구에 돌입했다. 앞서 구달과 포시가 했던 것처럼 서두르지 않고 무리의 일원들로부터 강력한 신뢰를 얻어 이들의 생태를 세밀하게 관찰·기록하는 방법이었다. 오랑우탄 암컷의 평균 출산 간격이 약 7.7년으로 매우 길다는 것, 오랑우탄이 섭취하는 먹이는 400종 이상에 이른다는 것 등 세밀한 생태와 더불어서 인간 못지 않게 복잡한 사회구조도 골디카스의 현장연구를 통해 윤곽을 드러냈다.
골디카스는 1986년 로스앤젤레스에 국제오랑우탄 재단을 설립했고, 오랑우탄이 서식하는 열대 우림을 지켜내기 위한 환경 보호 운동에도 헌신했다. 그는 미국과 캐나다, 부모의 고향인 리투아니아, 연구의 기반인 인도네시아를 오가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또 인도네시아 정부의 자문관으로 위촉돼 오랑우탄 보호정책 수립과 실행에 관여했다. 동물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만으로 혈혈단신 정글로 들가서 고릴라·침팬지·오랑우탄들과 동고동락하며 세밀한 생태를 밝혀낸 ‘트라이메이츠’의 서사는 전세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들이 밝혀낸 연구 성과는 각 연구자들의 인생 스토리와 함께 내셔널지오그래픽·라이프 등의 잡지에 소개됐고,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등이 만들어졌다. 이들의 활약상은 환경보호운동과 생태주의·여성주의 운동등에서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중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난 포시의 죽음은 비극이었다. 고릴라에 대한 무차별 밀렵을 막기위해 포획용 덫 제거에 앞장서며 밀렵꾼들의 눈엣가시가 됐던 그는 1985년 12월 26일 자신의 텐트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 사건의 전모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침팬지 연구를 통해 인류학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고 세계곳곳을 누비며 자연과의 공존과 환경 보호의 메시지를 전달했던 구달은 지난해 10워러 91세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