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동두천시 소요산 입구에 있는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은 6·25 전쟁을 주제로 한 공간이다. 유엔 깃발아래 직접 전장에서 피흘리며 싸운 전투지원(미국·영국·호주·네덜란드·캐나다·뉴질랜드·프랑스·튀르키예·필리핀·그리스·태국·남아프리카공화국·벨기에·룩셈부르크·콜롬비아·에티오피아) 16국과 의료지원 6국(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이탈리아·독일·인도)의 활약과 헌신을 주제로 한 전시물들로 구성돼있다. 건물 앞에는 직접 파병해 적과 맞선 전투지원 16국의 깃발이 게양돼있고, 박물관 곳곳에서 이들 나라의 국기와 이름을 볼 수 있다.
그런데 6·25 발발 75주년이었던 올 6월 이들 참전국에 포함돼있지 않은 나라를 테마로 한 전시가 열렸다. ‘6·25 전쟁에 참전한 라트비아 용사들(Latvians in the Korea War)’이다. 많은 한국인들에게는 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와 함께 ‘발트 3국’의 하나로 친숙한 나라, 올림픽 썰매 경기의 전통적 강호로 알려진 라트비아의 알려지지 않은 6·25 참전 역사를 한국인들에게 알리기 위한 취지로 마련된 전시다. 주한 라트비아 대사관과 라트비아 전쟁기념관, 한국 국가보훈부가 협업해서 전시를 준비했고 박물관을 운영하는 동두천시에서 공간을 제공했다.
메인 전시실이 있는 2층 로비에 라트비아에서 태어난 젊은이들이 미국 이주 후 미군으로 유엔 깃발 아래 6·25에 참전해 한국을 위해 싸운 과정을 알려주는 패널이 게시됐다. 흰색과 밤색으로 구성된 라트비아 국기를 모티브로 한 디자인에 맞춰 군복을 입은 장병들의 이름과 당시의 행적이 소개됐다. 아이바르스 카를리스 살레니엑스는 스물 한 살이던 1952년 격전지인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일명 ‘펀치볼’에서 교전 중 적군을 잇따라 쓰러뜨리는 무공을 세운 뒤 벙커로 떨어진 적의 수류탄으로 몸을 던져 전우들의 목숨을 구하고 산화했다. 야니스 크루민스는 스물 두 살이던 1953년 4월, 경기도 연천의 ‘폭찹고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두 달 뒤 다시 자원해 정찰을 나갔다 적과 맞닥뜨렸고 교전 과정에서 희생됐다.
역시 6·25 전장에서 전사한 루돌프스 리에파와 브루노 글라제르스. 그리고 레오디느스 오졸린스, 구나르스 스톱니엑스, 비스만디스 만굴리스 등 라트비아 출신 다른 참전용사들의 이름과 사진이 소개됐다. 6·25에 참전한 라트비아 출신 장병은 확인된 사례만 열 네 명으로 전원 미군 소속으로 참전했으며 그 중 네 명이 전사했다. 이번 전시는 이 나라의 역경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이기도 하다. 라트비아는 1990년 5월 독립을 선포하고 이듬해 유엔에 가입하며 주권 국가로 재출발하기 전까지 반세기 동안 소련의 강제 점령기를 거쳤다. 다른 발트국가인 에스토니아와 리투아니아도 비슷한 역사를 가졌다.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이던 1944~1945년 12만명의 라트비아인이 소련의 압제를 피해 고국을 떠났고 이 중 상당수가 미국·캐나다·영국 등에 정착했다.
특히 미국에 정착한 라트비아인들은 새로운 조국이 된 미국 사회에 빨리 정착하기 위해 앞다퉈 군대에 입대했다. 그런 상황에서 6·25가 터지고 최소 열 네명의 라트비아 출신 젊은이가 미군의 일원으로 참전해 그 중 네 명이 전사한 것이다. 이들 다수는 무공을 인정받아 각종 훈장을 수훈했다. 이번 전시회를 준비한 주한 라트비아 대사관은 “라트비아의 군인들은 더 이상 조국을 지킬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다른 나라의 군대에서 자유의 이상을 위해 용감하게 싸웠다”며 “이런 그들의 무공을 한국인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었다”고 전시의 취지를 밝혔다. 이어 “많은 라트비아인들이 6·25에서 싸운 데는 한국의 상황에서 자신들의 고국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라고도 했다.
야니스 베르진스 주한 라트비아 대사는 6·25 발발 75주년이 되던 지난 25일 전시가 열리던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을 찾은 뒤 박형덕 동두천시장을 만나 전시를 유치해준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베르진스 대사는 “라트비아는 자유와 민주주의, 법치를 수호하기 위해 소련에 점령당한 조국에서, 6·25가 발발한 한국에서 싸웠고, 지금은 (러시아에 침공당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국제 연대에 동참하고 있다”며 “모든 나라들은 압제에서 침략에서 벗어나 평화속에서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