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당시 미군 군종 장교로 참전했다 중공군 포로수용소에서 끌려간 뒤 동료 장병들을 돌보다 희생된 에밀 카폰(1916~1951) 신부. ‘6·25의 예수’로 불리며 한국(태극무공훈장)과 미국(명예훈장)에서 모두 최고 등급 무공훈장을 사후 수여받고 올해에는 바티칸 교황청에 의해 가경자(可敬者)로 선포되며 시성 절차에 들어간 카폰 신부의 이름을 딴 예배당이 한국 땅에 처음 생겼다. 경기도 평택시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에 있는 ‘카폰 예배당(Kapaun Chapel)’이다.
주한미군은 당초 ‘프리덤(자유) 예배당’이었던 이곳의 이름을 카폰 신부를 기념해 새로 명명했고, 지난 5일 험프리스 기지 사령관 라이언 워크맨 대령의 주관으로 공식 명명 기념식을 열었다. 카폰 신부는 군종 사제(대위)임에도 불구하고 전장(戰場)에서 목숨을 걸고 동료 병사들을 지켰고, 중공군 포로수용소에 끌려간 뒤 모진 학대와 탄압에 맞서며 동료 병사들을 위해 희생했다는 전우들의 증언이 전해지며 이름을 알렸다.
특히 실종 70년이 지난 2021년 유해의 신원이 확인돼 고향 캔자스주에서 성대한 귀향·안장 행사가 열렸고, 성인 인정의 첫 단계인 가경자로 선포되는 인생 궤적도 주목받아왔다. 미군은 그동안 미국 안팎의 군 시설과 학교 등에 기념비를 세우거나 그의 이름을 딴 교육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며 기념해왔다. 하지만 군종 사제였던 그의 이름이 붙은 예배당 건물은 없었는데, 그가 참전했다 희생된 한국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현충일을 하루 앞둔 지난 5일 열린 ‘카폰 예배당 명명식’ 단상에는 주한 미군 부대 깃발과 함께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란히 세워졌다. 워크맨 사령관은 기념사에서 “카폰 군종 대위의 삶은 한 개인의 용기, 신에 대한 믿음, 그리고 동료 병사들에 대한 사랑에 관한 것”이라며 고인을 기렸다. 전 세계의 미군 부대 내 건물들은 각각 일련번호와 함께 정식 명칭이 부여돼 관리된다. 이 때문에 건물 이름의 명칭을 바꾸는 절차는 간단하지 않다.
2021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카폰 신부의 유족을 만나 태극무공훈장을 사후 수여하고, 고(故) 정진석 추기경이 직접 번역했던 ‘종군 신부 에밀 카폰’ 개정판이 출간되는 등 한국에서 카폰 신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그의 이름을 딴 예배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가 주한 미군 군종장교들 사이에서 활발하게 일었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캠프 험프리스 내 예배당 중 하나인 ‘프리덤(자유) 예배당’을 카폰 신부를 기려 다시 명명하는 것으로 방향이 정해졌다.
‘프리덤 예배당’을 ‘카폰 예배당’으로 바꾼 것에 대해 주한 미8군 군목인 이선 대령은 이렇게 말했다. “‘자유’도 군인 예배당으로는 적절한 이름이죠. 하지만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장병들의 궁극적인 희생으로 말미암아 자유가 주어진다는 의미를 전달하고자 내린 결정입니다. 자유를 위해 전우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대가를 치른 카폰 군종 대위는 우리 군의 빛나는 사례입니다.”
6·25 전장에서 그는 미사를 집전하며 전우들의 지친 영혼을 위로하고, 죽어가는 병사들의 마지막을 위해 기도하던 천주교 종군 사제였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딴 ‘카폰 예배당’은 천주교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이들의 ‘믿음’을 지켜주는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캠프 험프리스 기지 사령부 관계자는 “카폰 예배당은 천주교 외의 다른 종교에도 개방돼 있다”며 “종교를 불문하고 신앙인들을 위한 성스러운 공간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주한 미군은 기독교(천주교·개신교)뿐 아니라 유대교·이슬람교·불교 등 다양한 방면의 군종 병과를 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주로 천주교 미사가 열리고 있지만, 앞으로는 다른 종교들의 의식도 열릴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주한 미8군 군목 이선 대령은 “군종 병과는 종교적 배경에 무관하게 병사와 가족, 군무원들의 신앙 생활을 돕는다”며 “카폰 군종 대위는 모든 군종들에게 큰 영감을 줬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은 카폰 신부가 한미 동맹을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점을 감안해 카투사와 영내에서 근무하는 한국인들도 적극 예배당을 이용할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며, 장기적으로는 이곳을 접점 삼아 한국 천주교계와도 협력해 카폰 신부를 더욱 널리 알린다는 청사진도 세웠다고 한다. 6·25 발발 75주년을 맞은 시점에서 한반도 정세가 더욱 엄중해지는 상황에서 카폰 신부의 이름을 딴 예배당이 생겼다는 점도 주목받고 있다.
에밀 카폰은 캔자스주 필센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사제 서품을 받고 6·25가 터진 직후 참전했다. 총탄이 날아다니는 전장을 지프차를 몰고 다니며 미사를 집전했고, 병사들의 고해성사를 받았다. 포탄이 빗발치는 와중에도 전사한 병사들을 위해 임종 기도를 올렸다. 중공군에게 포위당해 철수 명령이 내려진 후에도 통나무로 참호를 만들어 부상한 병사들을 대피시켰다. 중공군이 운영하는 평북 벽동의 포로수용소에 갇힌 뒤에도 병사들을 보살피다 1951년 5월 이질과 폐렴 등으로 35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투옥 중인 자신에게 공산주의 사상을 주입하려는 중공군을 단호하게 꾸짖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전우들에게 “이제 내가 가고 싶어 하는 곳으로 간다. 그곳에 도착하면 모두를 위해 기도하겠다. 그들도 용서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카폰의 고향 캔자스 지역 사회에서는 그를 성인으로 추대하자는 움직임이 일찍부터 일어나 1993년 시성의 첫 단계인 ‘하느님의 종’으로 선포됐고, 32년 뒤인 올해 2월 다음 단계인 ‘가경자’로 선포됐다.
캔자스주의 다른 도시 헤링턴의 우체국은 ‘에밀 카폰 우체국’으로 바뀌었다. 2008년부터는 카폰 신부의 신앙과 용기를 배우자는 취지로 매년 여름 그의 필센 고향집으로 향하는 순례 행사가 시작됐다. 수백 명의 젊은이들이 십자가를 앞세우고 100㎞ 가까이 걸으며 일렬로 신부의 생가를 찾는 장면이 해마다 반복됐다. 2013년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군인에게 주는 최고 등급의 무공훈장인 명예훈장을 사후 추서했다. 2021년 10월 카폰 신부 유해의 안장식이 열린 뒤 고향 필센의 성당에는 ‘에밀 카폰 박물관’이 조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