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하나의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희망’과 ‘절망’이 주는 어감의 차이는 극과 극이다. 하지만 “절망이 나를 단련시켜 희망으로 변모시켰다”고 이야기하는 평범한 이웃들을 우리 주변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서른 일곱살 일본 여성 유리 요시미도 그 중의 하나다. 유명한 작가도, 화려한 연예인도, 힘있는 정치인도 아닌 그녀는 일본 효고현 도시 니시노미야에서 열한살·열살·여덟살의 세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엄마다.
“시련이 나를 단련시켰기에 삶은 살만하는 걸 몸소 체험했다”는 그가 자신의 소박한 경험을 한국 독자들과도 나누고 싶다며 최근 한국어판으로 출간된 저서 ‘My Note-기적이 일어나는 마법의 워크북’을 들고 서울을 찾았다. 이 책은 엄밀히 말하면 학습서다. 독자가 직접 채워나가야 하는 공란이 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내일 내가 죽는다면 소중한 사람 세 명을 직접 지정해 편지를 쓰기’ ‘내 단점이라 생각하는 것을 장점·매력으로 바꾸기’ ‘싫었던 것 슬펐던 것과 거기서 얻었던 교훈을 적기’...평범하고 소소하지만 ‘바쁘게 살면서 언제 이런 것 한 번 해본적이 있었던가’ 싶은 생각도 드는 주제들이다.
책 발간 북 콘서트를 위해 최근 서울을 다녀간 유리 요시미는 “어떤 최악의 상황에서도 눈앞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다보면 긍정적인 변화가 올 수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다”면서 5년전 자신이 처했던 상황을 들려줬다. 보육교사로 2년간 일하다 건축일을 하는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주부가 돼 아이 셋을 키웠다. 하지만 코로나 창궐로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생활고에 시달렸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남편까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장례를 치르면서 자신은 그전에 몰랐던 남편의 빛 1400만엔(약 1억3500만원)까지 떠안게 됐다. 세상 물정 하나 모르던 그가 의존한 것은 가상의 세상 소셜미디어. 인간 세상에 각종 부작용을 일으키며 만악의 근원으로 꼽히는 소셜미디어라지만 적어도 유리 요시미에게는 순기능을 했다.
“처음에는 히키코모리(극단적 은둔자)처럼 살아갔죠. 생활고 때문에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얻어볼까 싶어서 접속을 했어요. 신세도 한탄하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도움도 요청해보고... 그러다 대화가 트였고 사이버상에서 친구가 생겨서 교류하게 됐어요. 선의를 갖고 도움을 준 사람들 덕에 지금의 제가 있어요. 정말 운이 좋았죠.” 유리 요시미가 사용한 소셜미디어는 음성 기반 소셜미디어로 한국에서도 한 때 인기를 끌었던 ‘클럽하우스’. 반짝 인기를 얻고 사그라든 한물 간 소셜미디어로 꼽히지만 적어도 그에게는 구원의 명줄이 되어준 셈이다.
자신과 비슷하게 힘든 상황에 처지에 놓인 여성들끼리 마음을 주는 동병상련의 장을 마련하며 인맥을 연결해주는 인플루언서가 돼갔다. 활동 반경도 일본 밖으로도 확대됐다. 지금은 싱글맘의 자립을 돕는 일을 주 업무로 하는, 일종의 사회적 기업을 이끌고 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돌아보며 힘든 상황을 극복한 경험을 학습서로 펴냈다. 먼저 출간된 일본어판은 2만부가 팔렸다고 출판사 측은 전했다. 지난달 26~27일 한·일 여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북콘서트가 열렸고, 서울 성수동에서는 부대 행사 격으로 70~90년대 K팝과 J팝을 함께 즐기는 음악행사인 ‘소울, 서울을 만나다(Soul meets Seoul)’가 홍대앞 라이브 클럽에서 열렸다.
유리 요시미는 무대에 직접 올라서 자신이 노랫말을 쓴 ‘You Are Not Alone(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도 불렀다. 책을 관통하는 주제와 동일한 가사다. “더 바랄게 없어/내려놓으면 시작하는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문을 열려있어/두려워하지마” 그는 힘든 지경에 처해있는 이들에게 “제발 눈앞의 삶을 소중하게 여겨달라”고 당부했다. “아무리 밑바닥까지 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내 자신에게 솔직해지세요. 그럼 반드시 응원해줄 사람들이 늘어날테니까요. 절망은 절대 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