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르면 오는 9일을 기해 우크라이나에 대해 공식적으로 전쟁을 선포하고 병력과 무기를 대폭적으로 투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CNN이 3일(현지 시각) 미국 및 서방국 관리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9일은 러시아의 대표적 국경일인 2차 대전 전승기념일(승리의 날)이다. 앞서 러시아는 지난 2월 우크라이나를 무력으로 침공했지만, 대외적으로는 ‘특별 군사 작전(Special Military Operation)’이라고 표현해왔다. 그런데 아예 전쟁이라는 호칭을 써서 더 강경하게 공격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경우 미국과 러시아의 대리전 구도가 더욱 뚜렷해질 전망이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최근 330억달러(약 41조5000억원)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의회에 승인 요청하며 총력 지원 체제로 돌입한 바 있다. 벤 월리스 영국 국방장관도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푸틴이 ‘특별 군사 작전’에서 태세 전환을 시도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전면전 전환 가능성을 시사했다. 러시아가 공식적으로 전쟁을 선포할 경우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민간인 살상 및 기반 시설 파괴 피해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러시아의 ‘전쟁 선포’는 당초에는 없던 시나리오였지만, 푸틴 정권의 전세 오판에 따른 고전과 및 전승기념일이 갖는 상징성이 상황을 급변시켰다는 분석이다. 푸틴은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행했을 때만 해도 수도 키이우를 비롯한 주요 도시를 신속하게 함락시키고 친러 꼭두각시 정권을 세운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군의 강력한 저항과 국제사회에서의 퇴출과 고립, 자국군의 예상 밖 졸전과 사기 저하 등 악재가 겹치면서 장기 교착 국면에 빠졌다.
다만 전승기념일이 확전이 아닌 종전·정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일 공개된 이탈리아 최대 일간지 코리엘레 델라 세라 인터뷰에서 지난달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를 만났을 때 푸틴이 전승기념일에 맞춰 종전을 추진한다는 계획에 대해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오르반 총리는 유럽연합·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국 지도자로는 드물게 푸틴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교황의 이날 발언으로 물밑에서는 여전히 협상이 진행되고 있으며, 성사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교황은 자신이 직접 모스크바로 가서 푸틴을 만나 협상을 중재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