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우크라이나 청년 안드리 니콜라옌코는 처음 찾아간 낯선 나라 한국에 매력을 느꼈다. 그는 3년 뒤에 다시 방문해 연세대 어학당에서 차근차근 한국어를 배웠다. 그리고 2002년부터 4년 동안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에서 근무하면서 ‘한국통 외교관’으로 성장했다. 행정가를 거쳐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중앙 정치 무대에도 입문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정장 대신 검은 활동복을 입고, 서류가방 대신, 무기를 들고 수도 키이우(키예프) 방어에 나서며 전사(戰士)처럼 살고 있다.
7일 본지와 화상으로 인터뷰한 니콜라옌코(43) 의원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거센 저항에 직면해 예상 밖으로 고전하는 상황에 대해 “푸틴과 그의 친구들은 아주 큰 실수를 했다”고 일갈했다. “우크라이나인의 피와 DNA에는 굴하지 않는 전사의 정신이 깃들어 있어요. 푸틴 일당은 그걸 간과했어요. 마치 (크림반도가 강제병합되던) 2014년의 상황처럼 하루 이틀 내에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니콜라옌코 의원은 “푸틴은 이제야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했음을 자책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외교관을 그만두고 행정가를 거쳐 정치인으로 전향한 이유에 대해 “외교만으로는 나라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동부 돈바스 지역 도네츠크주 부지사로 재직하던 2014~2015년 러시아 정부의 지원을 받은 친러시아 반군 세력의 준동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지는 상황을 겪었다. 당시 반군 세력과 맞서던 상황 때문에 “러시아의 감시 대상 블랙리스트에 내 이름이 올라 있다”고 했다. 가족들을 키이우 바깥으로 피신시켰고, 대다수 우크라이나 남성처럼 무기를 들고 수도 방비에 나섰다. “지금도 곁에 무기가 있느냐”고 묻자 소총과 권총을 꺼내 능숙한 집총 자세를 취하며 “다행히 아직 이 무기들을 실제로 사용해야 하는 상황은 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이번 러시아 침공 후 “미사일이 날아가는 것을 두 눈으로 봤고, 러시아 공격에 희생된 사람들의 시신도 지켜봤다”며 “죽어가는 우크라이나인들을 위한 국제사회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의 공습을 원천 차단할 수 있는 비행금지구역 설정과 더 강력한 대러시아 경제제재를 요청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입장을 지지했다. 의석수 25석 야당인 ‘똑똑한 정책’에 소속된 그는 집권 여당 소속 젤렌스키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용감했어요. 도망가지 않았고요. 또한 분석력이 탁월하고 맞서싸우는 능력까지 보여줬습니다.” 그러면서 “국가적 위기에 맞서 분열하지 않고 한마음으로 단합하는 국민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는 수도 키이우는 서울과 참 닮은 도시라고 했다. “두 곳 다 나라의 유서 깊은 역사 도시이며 정치 경제 중심지지만, 강이 흐른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한강이 서울을 가로지르며 남과 북으로 나누듯이, 드니프로강은 북에서 남으로 흐르며 키이우를 동과 서로 분할하죠.”
그는 향후 재건 과정에서 자신이 쌓아놓은 한국 인맥을 총동원하겠다는 포부도 말했다. “우크라이나에서도 한류는 인기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한류를 넘어서 과학과 방위 산업, 원자력 등 두 나라가 함께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합니다. 우리가 시련을 딛고 재건하는 과정에서 한국과 꼭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