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재장악한 후 이들의 폭정을 피해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으로 몰려드는 주민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프간 정부 붕괴 직후 몰려든 수천 명의 주민들로 아수라장이 됐던 공항은 미군이 본격 통제하면서 17일 운영을 재개, 18일까지 62편의 비행기가 이륙했다.
공항은 외국인과 출국 허가를 받은 현지인들만 출입이 허용되고 있다. 하지만 여권도 아무런 서류도 없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몰려온 주민들이 공항 주변 담장을 따라 기약 없이 노숙 중이다. 이 공항을 통해 탈출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주민은 최대 1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불과 닷새 전까지 한 나라의 국제 관문이었던 곳이 국민들의 생사가 엇갈리는 운명의 현장이 된 것이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18일(현지 시각) “미군이 공항을 통제하고 있지만 공항 밖은 여전히 혼돈 상태”라고 전했다. 특히 공항 주출입구 주변에서는 몰려드는 주민들을 막기 위해 탈레반 대원들이 칼라시니코프총의 개머리판과 각목 등으로 주민들을 마구 폭행하는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탈레반 대원이 주민들에게 “이 문은 닫혔다. 외국인과 탑승 서류를 가지고 온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고 소리쳤지만 인파는 흩어지지 않았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이들의 짐을 노린 도둑들까지 몰려들었다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탈레반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마구 몰리면서 17일 공항 주변에서 인파에 깔리거나 총격으로 최소 40명이 숨졌다는 현지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18일에도 공항 입구에서 최소 17명이 부상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소셜미디어에는 카불 공항 담장을 둘러친 철조망 바깥에서 젊은 아프간 여성이 경계 근무 중인 미군을 향해 “탈레반이 오고 있다. 제발 살려달라”며 울부짖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도 올라왔다.
뉴욕포스트 등 외신에는 공항 담벼락을 넘는 시민을 향해 탈레반 조직원이 주저없이 총을 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이 공개됐다. 공항에 밀려든 아프간 시민들이 공항 철조망 앞에서 한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아기를 들어올려 손에서 손으로 넘기며 공항 안쪽으로 먼저 들여보내려는 장면도 포착됐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18일 “아프가니스탄 거주 미국인을 전원 안전하게 철수시키기 위해 8월 31일 이후까지 미군이 주둔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 당분간 카불 공항으로 몰려드는 아프간인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7일 “탈레반이 아프간을 떠나려는 민간인들의 안전한 출국을 보장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지만 이 같은 장담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이 제시한 철군 완료 시한인 이달 말까지 미국인 1만명과 현지 협력 아프간인 8만명을 탈출시키기 위해 하루 5000~9000명씩 비행기에 태워 보낸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17일 오전 3시부터 24시간 동안 보낸 인원이 2000명에 불과하며 초반부터 목표치에 크게 미달하고 있다. 대피 작업이 차질을 빚는 이유는 아프간인들의 망명을 막으려는 탈레반이 검문소를 공항 주변 곳곳에 세워놓고 현지인들의 통과를 막기 때문이라고 주요 외신들은 분석했다.
한편 19일 아프간 독립기념일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아프간 국기를 든 시민들이 시위를 벌였고 탈레반이 총격을 가하면서 여러 명이 사망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러시아 스푸트니크통신에 따르면 동부 잘랄라바드에서 시민 4명 이상이 탈레반 총격에 희생됐고, 쿤나르주에선 탈레반 대원들이 국기로 덮인 차량을 향해 총을 쏘면서 3명이 목숨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