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개봉한 블록버스터 ‘진주만’은 태평양전쟁의 도화선이 됐던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미국 청춘남녀들의 사랑·우정과 버무린 대작이다. 하지만 때론 현실에선 영화보다 더 극적인 일이 일어나는 법이다. 1941년 12월 7일 길이 178m, 무게 2만7900t의 미 해군 전함 USS 오클라호마함이 일본군의 공습으로 침몰했다. 배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승조원 429명이 목숨을 잃었다. 극히 일부를 제외한 수습 시신들은 ‘신원확인 불가’ 판정을 받았다. 영원히 ‘실종’ 상태로 있을 것 같았던 이들 대부분이 진주만 공습 80주기를 맞은 올해 가족 품에 안겨 안식에 들게 됐다.

'USS 오클라호마 프로젝트'를 통해 신원이 확인된 승조원 마틴 영 수병의 시신이 지난 15일 켄터키주 루이빌에 안장되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은 27일(현지시각) 오클라호마함 희생자 감식작업의 성공적 완료를 알리는 공식 유해 반환 행사를 6월 7일 네브래스카주와 하와이주에서 거행한다고 밝혔다. 2015년부터 진행해온 신원감식작업, ‘USS 오클라호마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완수됐음을 알리는 행사다. 이날 DPAA 감식시설에서 마지막까지 신원 확인이 되지 않은 유해가 해군으로 반환되는 ‘원대복귀’가 공식적으로 이뤄지며 각별한 예우를 받으며 영면에 들게 된다. 이 행사를 비롯해 올해 미 전역에서 진행중인 진주만 공습 80주기 기념행사가 열린다.

하와이는 미군의 전략적 요충지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왼쪽에서 둘째)가 지난 4월 30일 진주만 기지를 방문했다. 그는 이날 미군의 국방 전략에 관해 연설했다. /AP 연합뉴스

‘USS 오클라호마 프로젝트’를 통해 지금까지 신원이 확인된 승조원은 앞서 장례를 치르고 고향땅이나 국립묘지에 안장된 승조원을 포함해 338명. 신원감식을 할 수 없어 ‘실종자’로 분류됐던 승조원의 86%다. 그러나 현재 감식작업의 진행상황까지 실종자 90%의 귀향이 가능할 것이라고 DPAA는 전망했다. 당초 기대치는 80%였다. 이는 10여년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결과였다. 희생자들의 유해를 수습해 가족들에게 돌려보내려는 시도는 2차 대전 종전부터 이뤄졌지만 감식 기술의 발달의 한계로 진척을 보지 못했기 문이다. 승조원 429명의 시신은 오클라호마함이 폭침된 1941년 12월부터 1944년 6월까지 단계적으로 인양돼 하와이의 공동묘지 두 곳에 묻혔다. 이후 1947년 시신들을 꺼내 하와이 스코필드 미군기지에 있는 신원확인센터로 옮겼다.

1941년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으로 숨진 오클라호마함 승조원 헤럴드 트랩, 윌리엄 트랩 형제.

그러나 오랫동안 바닷물속에 있다가 다시 공동묘지에 매장되는 과정에서 심각하게 훼손됐고, 신원을 알 수 있는 군번줄 등도 대부분 유실됐다. 검식 기술의 한계로 신원이 확인된 35명에 대해서만 장례를 치른 뒤 나머지 시신들은 호놀룰루에 있는 국립묘지에 46개 지점에 나뉘어 매장됐다. 하지만 2003년 시험적으로 수습한 한 개의 관에서 최신 감식 기술을 통해 95명의 유해가 뒤엉킨 더미임을 확인하고 실종군인 5명의 신원을 확인하는데 성공하면서 감식 작업이 추진력을 얻었다. 유해 더미를 네브래스카주 오펏 공군기지에 마련된 DPAA감식시설로 옮긴 뒤 1만3000여점으로 분류하고 실종자 유족들로부터 DNA를 제공받는 준비 과정을 거쳐 2015년부터 감식 작업이 본격화했다.

'USS 오클라호마함 프로젝트'에 의해 300명째 희생자로 공식확인된 존 미들스워트 해병.

‘80년만의 영면’을 앞두고 전사자들 안타까운 사연도 주목받고 있다. 오클라호마함에서 복무하다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형제도 있다. 인디애나주 출신 해럴드 트랩(당시 24세)과 윌리엄 트랩(23)형제다. 형제의 신원은 작년 11월 공식 확인됐으며, 하와이 국립묘지에 안장된다. 애타게 신원확인을 기다리던 승조원들의 직계 가족이 잇따라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올해 초 300번째 전사자로 확인된 열아홉살 해병 존 F. 미들스워트 일병도 그런 경우다. 그의 누나는 DNA를 DPAA에 제출하고 동생 소식을 기다리다가 2015년 98세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