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현지 시각)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병원에서 러시아가 자체 개발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스푸트니크 V' 접종이 진행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앞서 지난 2일 코로나19 백신의 대중 접종을 시작하라고 지시했다./AFP연합뉴스

미국·영국·캐나다·EU(유럽연합)를 비롯한 서방 선진국들과 일부 중동·중남미 국가를 포함해 이르면 이달 안으로 30여 국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코로나 백신 접종이 이뤄질 전망이다. 이달 내로 접종을 시작하는 국가들은 대부분 지난 봄·여름부터 백신을 입도선매하기 위해 노력한 나라들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17일(현지 시각) 트위터에 글을 올려 “12월 27, 28, 29일에 EU 전역에서 백신 접종이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전날에는 “회원 27국이 함께 백신 접종을 시작하자”고 했다. 이미 EU는 인구 4억5000만명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백신 10억6000만회분을 확보했기 때문에 유럽의약품청(EMA)의 사용 승인만 나오면 바로 접종할 수 있다.

주요국 코로나 백신 확보 현황

독일에선 베를린 지방정부가 오는 27일 접종을 시작할 준비를 마쳤다고 했다. EU 회원국 간에 준비 상황에 따라 며칠간의 오차는 있을 수 있지만 이르면 이달 안으로 회원 27국에서 동시다발적인 접종이 가능할 전망이다.

이미 백신 접종을 시작한 영국·미국·캐나다에 이어 이스라엘도 19일부터 미국 제약사 화이자의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시작한다. 사우디아라비아도 17일 화이자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이 외에 말레이시아·멕시코·아르헨티나·칠레가 이달 내 접종 개시가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서방 선진국들과 중동·중남미 일부 국가를 합치면 이르면 올해 안에 30여 국에서 백신 접종이 이뤄지는 셈이다. 중국도 시기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시노팜 등 자국 제약사들이 개발한 백신을 빠르면 이달 말부터 일반인들에게 접종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은 1억2700만명인 인구를 모두 접종하고도 남는 2억8000만회분을 내년 상반기까지 조달하기로 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반면 우리나라는 백신 확보마저 여의치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9일 “정부는 4400만명분 백신 물량을 확보했고, 내년 2~3월이면 초기 물량이 들어와 접종을 시작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실제 계약이 완료된 것은 아스트라제네카 1000만명분뿐이고, 3400만명분의 계약 완료 시점은 불분명한 상태다.

한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7일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엘리제궁은 마크롱이 자가 격리를 하면서 계속 업무를 수행한다고 밝혔다.

캐나다, 인구의 11배 확보… 이스라엘, 모사드까지 동원해 ‘백신작전’

미국 백악관은 지난 5월 중순 ‘초고속 작전(Operation Warp Speed)’이라는 팀을 출범시켰다. 코로나 백신 개발과 확보를 책임지는 컨트롤타워를 세운 것이다. 당시 1차 코로나 확산기를 맞아 미국 보건부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백신이 최선의 희망”이라고 보고한 직후 꾸려졌다. 트럼프는 글로벌 제약사 GSK(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백신 부문 대표를 지낸 민간 전문가 몬세프 슬라위를 ‘초고속 작전’ 팀의 최고책임자로 기용했다. 또 국방부, 보건부의 전문가들을 대거 참여시켰다. 이 팀은 지난 7~8월 미국 정부가 미국 제약사인 화이자 및 모더나와 맺은 백신 선구매 계약을 주도했다.

영국, 드라이브 스루 접종 - 영국 그레이트 맨체스터주 하이드에 마련된 드라이브 스루 백신 접종 시설에서 17일(현지 시각) 한 여성이 미 제약사 화이자의 코로나 백신을 맞고 있다. 영국은 지난 8일부터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AFP 연합뉴스

미국·영국·캐나다·EU 등 주요국들이 속속 연내 백신 접종을 개시할 수 있게 된 것은 지난봄부터 일찌감치 백신 확보 경쟁을 벌여 입도선매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코로나 초창기인 지난 3월 말 존슨앤드존슨의 백신 후보 물질 연구에 4억5600만달러(약 5000억원)를 지원하겠다고 밝히면서부터 백신 확보전에 시동을 걸었다. 5월 ‘초고속 작전’ 팀이 본격적으로 활동한 이후 미국은 지난 7월 화이자와 1억 회분, 8월엔 모더나와 2억 회분의 백신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EU도 백신 개발에 나선 글로벌 제약사들과 일찌감치 접촉했다. EU는 8월까지 영국 제약사인 아스트라제네카와 백신 4억 회분을 계약했다. 일본도 8월 초 화이자 백신 1억2000만 회분을 계약했다. 블룸버그가 지난 8월 초 집계했을 때 이미 미국·영국·일본 등이 계약 체결을 완료한 백신만 13억 회분에 달할 정도였다.

백신 확보 경쟁은 가을에는 거의 끝나 버렸다. EU가 화이자와 3억 회분의 계약을 체결한 때가 11월 11일이었다. 그때쯤에는 화이자가 내년까지 생산 가능한 13억 회분 중 11억 회분을 미국·EU·일본·영국·캐나다·뉴질랜드가 차지하는 것으로 이미 계약이 완료됐다.

사우디도 접종 시작 -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타우피크 알라비아(오른쪽) 보건장관이 17일(현지 시각) 화이자 백신을 접종받고 있다. /AFP 연합뉴스

뉴욕타임스가 이달 중순 자체 분석한 결과 이미 계약된 백신 분량이 EU는 인구의 2배, 미국과 영국은 각 4배 이상이다. 일본은 1억2700만 명인 인구를 모두 접종하고도 남는 2억8000만 회분을 내년 상반기에 공급받기로 했다. 지난 8월 아베 신조 당시 총리가 “내년 상반기까지 전 국민 접종 분량을 확보하겠다”고 약속한 것을 지켰다.

초기부터 백신 쟁탈전에 뛰어든 이스라엘도 오는 19일 화이자 백신을 접종하기 시작해 1월 말까지 수백만 명분을 접종한다고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밝혔다. 이스라엘은 정보기관인 모사드가 백신 확보를 위해 눈에 보이지 않게 움직이고 있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중국 정부는 자국 제약사들이 내년에 모두 20억 회분의 백신을 생산할 예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해외 개발 백신도 들여올 계획이다. 상하이푸싱의약품과 독일 바이오앤텍은 코로나 백신을 중국에서 생산·공급하기로 했다.

국가의 크기가 백신 확보전의 성패를 결정하진 않는다. 인구 580만 명인 싱가포르의 보건과학청은 지난 14일 화이자 백신의 사용을 승인했다. 리셴룽(李顯龍) 총리는 TV 대국민 담화에서 “백신을 사용할 수 있게 돼 터널 끝에서 빛을 볼 수 있게 됐다”며 “최초 백신 물량이 12월 말에 도착할 예정이며, 내년 3분기까지 모든 싱가포르 국민에게 백신을 공급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리 총리는 “팬데믹 초기부터 정부는 무대 뒤에서 조용히 백신을 확보하려 움직였다”고 했다. 싱가포르 정부가 백신 구입에 투자한 예산은 10억싱가포르달러(약 8180억원)로 한국의 10배에 가깝다.

방글라데시 현지 언론 데일리스타에 따르면 자히드 말레크 방글라데시 보건 장관도 내년 1월 중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 접종이 가능할 것이라고 지난 13일 밝혔다.

이르면 이달 안으로 30여 국에서 대규모 접종이 시작되면 내년 봄까지 백신 접종을 마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날 전망이다. 미 백악관 산하 ‘초고속 작전’ 팀의 몬세프 슬라위 최고책임자는 지난 13일 인터뷰에서 “내년 1분기까지 미국인 1억 명이 접종을 마칠 것”이라고 했다. 영국은 이달 말까지 최대 400만 회분을 접종하는 것을 시작으로 내년 4월이면 백신을 원하는 성인에게 모두 접종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독일은 1분기에 화이자 백신만 550만 명에게 접종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