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번주부터 인간을 빼고 살아서 움직이는 모든 것들의 이야기, ‘수요동물원'으로 인사드리게 된 조선일보 국제부 정지섭 기자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3~40대 이상의 독자분들이라면 “옛날 어린아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로 시작하는 VHS 비디오 앞부분 공익캠페인 동영상을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이야기 주제가 바로 호환(虎患)입니다.
이제 남한땅에서 호랑이는 자취를 감췄고 북한 땅에서도 극소수 개체의 생존사실만 전해지고 있는만큼 사람이 산 속에서 호랑이에게 사냥당하는 참사가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그야말로 전설속 얘기죠. 하지만 한 세기 전만 해도 호환은 실재하는 위협이었습니다.
한반도 생태계 최상위권 포식자로 호랑이가 포효하던 시절, 호환을 겪은 조상들은 실제로 어떻게 대처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이를 보여주는 소중한 사료가 최근 발견돼 수요동물원 첫 회를 통해 독자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양반의 고장으로 유명한 경북 안동에서 호환으로 아버지를 잃은 집안에서 한 대(代)를 건너 손자가 마침내 복수에 성공하며 뒤늦게나마 효도를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를 최대한 요약하고 읽기 쉽게 풀어 소개합니다.
◇맨 손으로 호랑이 잡아
조선 정조 재위기였던 1777년 2월 25일 72세의 이처기(李處基)가 안동 도산면 분천리 마을에서 호환을 당했다. 집안·동네 사람들이 함께 횃불을 들고 징을 울리며 혈흔을 따라 수색한 끝에 10여리 떨어진 온혜리 성황당 북쪽 어심골에서 시신을 찾았다.
아들 이정용(貞龍)은 3년상을 치른 뒤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는 일념으로 항상 낫을 날카롭게 벼려 허리춤에 차고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을 찾아다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이 원통함은 이처기의 손자이자 이정용의 아들인 이지헌(之憲)이 풀었다. 힘이 장사요 용맹하기 그지 없었던 이지헌은 어릴때부터 할아버지가 만년에 우연히 흉수(凶獸)에 목숨을 잃었으며, 할아버지의 기일때마다 그 짐승이 집주변으로 찾아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른이 된 뒤 이지헌은 몸을 단련하고 힘을 길렀고 호랑이를 찾아다녔지만 좀처럼 실마리를 찾기 어려웠다.
하루는 나무를 하러 간 집안 종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아 뒷골로 올라가보니 나무를 하고 있는 종의 옆으로 커다란 흉물(凶物)이 누워있었다. 이지헌은 종에게 소리쳐서 얼른 내려오라고 하자 호랑이가 벌떡 일어나 종을 덮치려 했다. 이지헌은 호랑이에게 달려들었고, 둘은 데굴데굴 굴러 오래묵은 나무둥지가 있는 곳에서 멈췄다. 다행스럽게도 사람 아래 호랑이가 깔린 상황이었다.
이지헌은 한 손으로 호랑이의 목을 잡고 다른 손으로 종으로부터 낫을 받아 호랑이의 두 눈을 찔렀다. 그러자 호랑이의 눈알이 빠져나왔고, 호랑이는 두 세 번을 펄쩍펄쩍 뛰다 죽었다.
이지헌은 이후 호랑이의 가죽을 예안(禮安) 현감에게 바치니 현감은 비록 위험한 행동이었으나 생명을 건 지극한 효심에 감복하여 후한 상을 내렸고, 이를 기록하여 후세에 귀감으로 삼도록 하라고 전해온다.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던 이지헌은 철종 9년 1857년 57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원문은 한문으로 돼 있는, 이 글을 쓴 사람은 주인공 이지헌의 증손자인 독립운동가 고(故) 이삼현(參鉉) 선생(1877~1954)입니다. 이삼현 선생의 증손 이유택 전 송파구청장이 최근 집 다락에 있던 문서들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빛을 보게 돼 본지에 제보를 해주셨습니다. 이 전 구청장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집안 어른들의 용맹함과 효심을 칭송하고 후대에 전하려는 목적에서 기록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본래의 목적과 달리 이 글은 읽는 사람에게 흥미로운 점도 보여줍니다.
인간과 호랑이의 관계를 건조·냉철·객관적 시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호랑이는 오랫동안 우리 민족의 영물로 여겨왔습니다. 물론 단군 설화에서 참을성 없는 패배자로 그려지고, 전래동화 ‘해님달님’처럼 악당 식인 캐릭터로 나오기도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아는 호랑이의 모습은 겨레의 용맹한 기상을 상징하는 동물이라는데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비교적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 243년전 일을 담은 글에서 묘사된 호랑이는 흉악스런 짐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노년에 끔찍한 최후를 맞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어려서부터 전해들었던 손자는, 할아버지의 원수를 갚지 못한 아버지의 한을 풀기 위해 단단히 별렀고 결국 복수에 성공하고 가죽을 벗겨내 고을 원님에게 바칩니다. 하지만 그 후유증으로 기력이 쇠해진 손자 역시 쉰 일곱에 생을 마감합니다. 결국 확실한 승자는 없는 싸움이었던 셈이지요.
사람과 대형 맹수가 육탄전을 벌여서 결국 목숨을 빼앗았다는 것, 눈알이 급소가 될 수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 ‘과연 그랬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극적 요소가 배제된, 다소 애매한 결말이 오히려 이 이야기가 조금의 자의적 표현은 있을지언정 어느정도 사실에 부합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해주기도 합니다.
만일 호랑이가 영험하고 두려운 존재라는 믿음이 널리 퍼져있었더라면, 호환을 운명이자 체념으로 받아들이는 듯한 심경의 표현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주인공 이지헌은 끝내 호랑이를 찾아 죽이는데 성공합니다. 이런 ‘처단’의 배경에는 할아버지의 목숨을 빼앗은 것에 대한 복수도 원인이 됐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사람이 손쉬운 사냥감이라는 것을 인식한 호랑이가 사람 사냥에 맛을 들이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지역사회의 강한 경계심도 한 원인이 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30년 터울을 두고 두 번의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모두 호랑이를 마스코트로 삼을 정도로 호랑이 사랑이 대단한 한국인이기에 이 글에 나오는 호랑이에 관한 건조하면서 냉철한 서사는 당혹감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그런 당혹감은 한국인의 애틋한 호랑이 사랑의 역사가 비교적 짧을 수도 있겠다는 추정으로도 이어집니다. 잘 알려진대로 한반도에서 호랑이가 자취를 감춘 시기는 일제강점기입니다.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잡힌 호랑이가 남한 최후의 야생 호랑이로 기록돼있습니다.
당시 일제가 진행한 해수구제사업으로 호랑이와 표범 등을 비롯한 여러 야생동물 개체수가 급감했다는 이야기도 널리 알려져있습니다. 이후 6·25 전쟁과 급격한 산업발전을 거쳐 한반도 산하의 호랑이 회생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게 됐다는 것이 ‘호랑이 멸종 공식’입니다.
이런 일련의 기록과 전승을 통해 호랑이는 ‘일제가 앗아간 우리의 것’이라는 상징성을 갖게 됐고, 그 과정에서 용맹함, 신성함 등의 긍정적·신화적 이미지는 더해지고, 육식짐승 본연의 흉포함이나 인간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부정적 요소들은 자연스럽게 가려지게 된 건 아닐까요. 이제는 더 이상 찾을 수 없다는 상실감과 민족정서가 혼합되면서 민족의 영물, 민족 정기의 상징이라는 위상이 더 굳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역사에서 ‘만일’이라는 것을 따지는것만큼 무의미한 일도 없다지만, 만일 호랑이가 사라지지 않고, 한반도 곳곳에 서식하고 있다면 어떨까 하는 가정을 해봅니다. 야생 호랑이가 멸종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뿌듯함의 이면으로는 인간과의 공존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닥쳤을 것입니다.
일제시대 호랑이 사냥꾼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대호’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 알려진 니콜라이 바이코프 원작 ‘위대한 왕’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시베리아 수컷 호랑이 ‘왕’의 일생을 통해 먹는 자와 먹히는 자의 필사적인 투쟁, 생태와 인간과의 자연과의 충돌을 생생히 그려나간 소설로, 한 때 소년소녀아동문학전집에 포함될 정도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의 완역본에는 주인공 호랑이의 사냥 및 포식장면이 잔혹하리만치 생생하게 등장합니다. 그 먹잇감으로 사람도 있습니다. 짐승 가죽을 훔쳤다는 죄로 마을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젊은이가 산채로 호랑이밥으로 던져지는 장면입니다. 호랑이는 밀림의 법을 집행하는 절대자의 모습인 동시에 피와 고기를 탐하는 고양잇과 맹수의 두 가지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21세기에도 호환이 계속된다면 어떨까요. 해외뉴스를 다루는 국제부에서 근무하다보니 사자·호랑이·악어·상어·뱀·퓨마·곰 등의 맹수에게 사람이 희생됐다는 소식을 가끔 접합니다. 이런 소식을 해외토픽성으로 듣는 것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로 알게 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일 것입니다.
이번 사료의 무대가 되는 경북 안동시 도산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봉화군 춘양면에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멸종된 한국 호랑이의 혈통을 이어받은 시베리아 호랑이 5마리가 방사돼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지리산의 반달가슴곰처럼 야생 복원 가능성까지도 염두에 두고 시작된 프로젝트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243년전 호환이 일어났던 장소와 호랑이 복원 사업의 첫걸음을 뗀 곳이 모두 낙동강 최상류 경북 북부 산악지대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그 옛날 현실적 공포인 호랑이와 마주했던 선조들은 백두대간수목원의 호랑이 야생 방사장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합니다. 다음주에 찾아뵙겠습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