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는 때로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흔들린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그랬다. 두 사건은 전 세계를 인플레이션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었고, 각국 중앙은행은 전례 없는 속도로 금리를 끌어올렸다. 불과 한두 해 전만 해도 저성장·저물가가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보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바뀔 수 있는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지난 2월 말 시작된 이란 전쟁도 그런 사건 중 하나다. 세계 경제의 시계는 또 한 번 멈추었다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돌발 변수 만난 세계 경제
전쟁 전 풍경을 잠시 돌아보자. 미국 경제는 순풍을 타고 있었다. 인공지능 서버와 데이터센터 투자 열기 속에 경기는 양호한 흐름을 이어갔고, 지난해 전례 없이 높은 수준의 관세 부과에도 불구하고 물가 오름세는 점차 꺾이고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케빈 워시를 연방준비제도 의장으로 지명하자 시장은 올해 두 차례에서 많게는 네 차례의 금리 인하를 기대했다.
일본도 오랜 잠에서 깨어나는 중이었다. 30년 동안 물가가 오르지 않던 나라에서 드디어 인플레이션의 싹이 텄고, 엔화 약세가 그 흐름을 더욱 부추겼다. 우에다 가즈오 총재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꾸준히 금리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경기를 이끄는 가운데 2%대 성장 기대가 무르익고 있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사실상 금리인하 기조의 종료를 선언한 이후, 다음 수순이 동결이냐 인상이냐를 놓고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그 모든 그림이 전쟁 한 번에 흔들렸다. 이란은 미국·이스라엘의 공습에 정면으로 맞서는 대신 다른 카드를 꺼내 들었다. 호르무즈 해협이었다. 페르시아만에서 아라비아해로 이어지는 이 좁은 물목은 세계 원유 소비와 액화천연가스(LNG) 교역의 5분의 1이 통과하는 에너지의 동맥이다. 군사력의 열세를 지정학적 핵심 병목을 조여, 미국과 동맹국들의 경제적 비용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만회하려 한 것이다.
결과는 즉각적이었다. 중동산 원유의 기준인 두바이유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고, 천연가스 가격은 두 배 가까이 뛰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최악의 경우 2분기 평균 두바이유가 배럴당 17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중동 지역의 원유와 천연가스 생산 시설이 상당 부분 파괴되었다. 전쟁이 끝나도 시설을 복구하는 데는 수개월이 걸린다. 호르무즈 봉쇄가 풀리더라도 에너지 공급 차질은 한동안 계속된다는 뜻이다. 충격이 일회성 파도가 아니라 오래 밀려드는 조류가 될 수 있다.
유가가 오르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우선 사람들은 주유소 계산대에서 부담을 느낀다. 가계의 지갑이 얇아지고 소비가 줄어든다. 동시에 기업의 원가 부담도 커진다. 투자가 위축되고 생산이 둔화된다. 물가는 오르는데 경기는 가라앉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 충격이다. 에너지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과 일본에서는 타격이 더 직접적이다. 무역수지가 나빠지고 통화 가치 하락 압력은 커진다. 원화와 엔화가 약해지면 수입 물가가 다시 오르고, 그것이 또 인플레이션을 자극한다. 악순환이다.
이 상황에서 중앙은행의 선택지는 급격히 좁아진다. 물가와 환율을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한다. 그러나 꺼져가는 경기를 살리려면 오히려 금리를 내려야 한다. 어느 쪽을 택해도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리고 이 공통된 딜레마를 앞에 두고도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연준), 일본은행, 한국은행이 처한 상황은 서로 다르다.
◇연준: 덜 아프지만, 더 복잡하다
유가가 올라도 미국이 받는 충격은 상대적으로 작다. 이유는 단순하다. 미국은 에너지를 수입하는 나라가 아니라, 수출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셰일 혁명 이후 미국은 석유를 거의 자급자족하는 수준에 올라섰고, 천연가스는 2022년부터 세계 최대 수출국 자리를 지키고 있다. 소비자는 주유비 부담이 늘지만, 에너지 기업은 오히려 이익이 커진다. 충격이 일부 상쇄되는 구조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두바이유가 배럴당 110달러로 오를 경우 유럽과 영국의 성장률은 0.5%포인트 가까운 충격을 받지만, 미국의 타격은 그 4분의 1 수준에 그친다.
그렇다고 연준이 마음 편히 정책을 펼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오히려 더 복잡한 압박에 놓여 있다. 한쪽에서는 물가가 오르고, 다른 쪽에서는 경기가 식는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 인하 요구까지 겹친다. 제롬 파월 의장에 대한 공개 비판은 물론 법적 압박까지 이어지고 있다. 새로 지명된 케빈 워시가 인플레이션을 이유로 금리 인하를 미룬다면 정치적 갈등은 더 깊어질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위험은 정치 압박 그 자체가 아니다. 신뢰의 문제다. 압박에 밀려 금리를 낮추었다가,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유가 상승이 물가 전반으로 번진다고 상상해보자. 사람들은 앞으로 물가가 계속 오를 것이라 믿기 시작하고, 그 기대 자체가 인플레이션을 현실로 만든다.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 중앙은행의 신뢰가 흔들리는 순간이다. 1980년대 초 폴 볼커 의장이 정책금리를 19%까지 끌어올린 것도 바로 이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였다. 그 과정에서 11%에 육박하는 두 자릿수 실업률과 깊은 경기 침체를 감수해야 했다. 그 고통스러운 기억이 지금 다시 소환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신뢰를 잃은 중앙은행이 치러야 하는 비용은, 처음부터 신뢰를 지키는 비용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일본은행: 30년 만의 귀환, 그러나 지도 없는 길
일본은행은 세 중앙은행 가운데 가장 특수한 상황에 있다. 연준과 한국은행이 긴축과 완화 사이에서 방향을 고민하는 동안, 일본은행은 아직 정상화의 초입에 있다. 우에다 총재는 2023년 4월 취임 이후 30년 만에 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끝내고 정책금리를 0.75%로 끌어올렸다. 장기 금리가 지나치게 오르지 못하도록 직접 개입하던 수익률곡선제어(Yield Curve Control) 정책도 단계적으로 걷어냈다.
이란 전쟁 이후 고유가로 물가 오름세가 더 뚜렷해지면서 이 정상화 속도는 빨라질 수 있다. 우에다 총재는 지난 3월 금리를 동결하면서도 “경기 하강이 일시적이고 기조적 물가 흐름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금리 인상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밝혀 추가 긴축 의지를 분명히 했다. 현재 0.75%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어서 몇 차례 인상을 더해도 경기를 과도하게 짓누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은행 앞에는 지도가 없다. 30년 동안 마이너스 금리에 익숙해진 가계와 기업, 그리고 막대한 국채를 쥔 금융기관들에게 금리 인상은 연준이나 한국은행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충격파를 낳을 수 있다. 여기에 스태그플레이션 압력까지 맞물리면 그 파장은 더 예측하기 어렵다. 정상화를 서두르다 어느 선을 넘는 순간 충격이 급격히 증폭될 수 있다. 문제는 그 선이 정확히 어디인지, 지금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국은행: 새 선장, 낯선 항로
한국은행에는 새 수장이 들어선다. 이재명 대통령이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경제고문 겸 조사국장을 차기 총재로 지명하면서, 5월 금융통화위원회부터 그가 회의를 이끌 전망이다.
신 후보자는 어떤 인물인가. 저금리 장기화가 가계 부채 누증과 금융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고 일찍부터 지적해 왔고, 2022년 글로벌 금리 인상기에는 선제 인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그는 분명 매파다. 그러나 동시에 공급 충격에 따른 일시적 물가 상승에는 통화정책이 과도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도 밝혀왔다. 즉 금융 불균형과 인플레이션 기대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되, 충격의 성격에 따라 정책 강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용적 매파’라는 평가가 붙는 이유다. 최근 그는 “경제 전체 흐름과 금융·실물 간 상호작용이 일어나면서 어떤 효과를 자아냈는지 충분히 파악한 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는 시장 예상보다 더 신중하고 균형 잡힌 정책 접근을 시사한다.
그러나 새 총재가 누구든, 한국은행이 향하는 방향은 이미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지금은 정부의 석유 최고가격제, 유류세 인하, 공공요금 동결 덕분에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2%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는 정책으로 틀어막은 둑과 같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되고 중동 생산시설 복구가 늦어질수록 에너지 가격 상승은 결국 소비자물가로 스며든다. 이란 전쟁이 점차 완화되더라도 5~6월경 물가상승률은 3%에 바짝 다가설 것으로 보인다.
성장 측면에서도 긴축의 명분이 쌓이고 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IT 산업에 힘입어 올해 성장률이 2%를 넘어서면, 경제가 잠재 수준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를 보여주는 GDP 갭은 마이너스에서 연말께 0에 가까워진다. 완화 기조를 유지할 논리적 근거가 크게 약해지는 것이다. 여기에 수도권 집값 상승과 가계 부채 확대에 따른 금융 불균형, 원화 약세가 불러오는 수입 물가 압력까지 더해지면 금리 인상의 명분은 더욱 분명해진다.
관건은 속도다. 한국은 세 나라 가운데 가계 부채 부담이 가장 크다. 금리를 너무 빠르게 올리면 쌓여온 빚의 무게가 경기 회복의 싹을 짓누를 수 있다. 반대로 늦추면 물가의 고삐가 풀리고, 원화 약세와 맞물린 수입 인플레이션이 번질 수 있다. 미 연준의 행보도 변수다. 한미 금리 격차가 벌어질수록 자본 유출과 원화 추가 약세 압력은 커진다. 한국은행은 국내 여건뿐 아니라 대외 변수까지도 예의주시해야 한다.
◇더 깊은 균열: 재정과 통화의 충돌
그러나 세 중앙은행이 맞닥뜨린 진짜 위기는 어쩌면 인플레이션 그 자체가 아닐지 모른다. 더 근본적인 위험이 있다. 물가를 잡으려는 중앙은행의 ‘찬물’과, 경기 부양과 표심을 위해 돈을 푸는 정부의 ‘불꽃’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미·일 세 나라는 약속이라도 한 듯 저마다 그 충돌을 연출하고 있다. 미국은 가장 노골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크고 아름다운 법안’(OBBBA)을 통해 대규모 감세를 밀어붙이며 재정 확장의 가속 페달을 밟는 동시에, 중앙은행을 향해 금리를 내리라고 공개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재정과 통화를 동시에 완화하겠다는 구상인데, 그 부담은 결국 고스란히 물가로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도 다르지 않다. 우에다 총재가 30년 만의 금리 정상화를 조심스럽게 추진하는 동안, 다카이치 사나에 정부는 아베노믹스 이후 굳어진 확장적 재정 기조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앙은행 혼자 브레이크를 밟는 사이, 정부는 여전히 가속 페달 위에 발을 올려두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상황 역시 각별히 주목된다. 올해 예산 증가율이 8.1%에 달하는 확장 기조 속에서, 정치권은 전 국민의 70%에게 1인당 10만~60만원의 고유가 피해 지원금을 지급하는 추가경정예산 카드를 꺼내 들었다. 유가 상승에 따른 민생 대책이라는 성격을 지니지만, 중동발 에너지 충격으로 물가가 다시 들썩이는 시점에서 재정 지출 확대가 인플레이션을 추가로 높일 위험이 있다.
더욱이 신현송 신임 총재가 통화정책의 고삐를 막 잡으려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문제는 더 예민해진다.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정책 신뢰는 수장 교체기에 가장 취약해지기 마련이다. 새 총재가 재정 확장 압력에 맞서 긴축 기조를 얼마나 단호하게 견지할 수 있느냐가 향후 한국은행의 정책 신뢰를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한쪽은 브레이크를 밟고, 다른 한쪽은 가속 페달을 밟는 상황이 계속되면 경제는 균형을 잃는다. 시장은 혼란스러운 신호를 받고, 사람들은 물가의 향방을 가늠하기 어려워진다. 기대 인플레이션이 다시 자극을 받는 순간, 중앙은행이 홀로 감당해야 할 부담은 몇 배로 커진다. 그리고 한 번 흔들린 신뢰를 되돌리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역사에서 배웠다. 결국 지금의 문제는 금리를 몇 번 올리고 내리는 기술적 선택이 아니다. 재정과 통화가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느냐의 문제다. 정책 공조가 무너지면, 중앙은행이 아무리 올바른 판단을 내려도 그 효과는 반감된다.
세 중앙은행은 저마다 다른 출발선에 서 있으면서도 같은 압력을 받고 있다. 에너지 충격이 일시적 파도에 그칠지, 경제 구조를 바꾸는 거센 조류가 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좀 더 지켜보자’는 선택지는 사라진다.
지금 세 중앙은행에 필요한 것은 완벽한 처방이 아닐지 모른다. 틀렸을 때 재빨리 고칠 수 있는 유연함, 그리고 시장이 그 유연함을 믿게 만드는 신뢰다. 그 신뢰는 중앙은행 혼자서 지키기 어렵다. 재정이 같은 방향을 바라볼 때 더욱 확고하게 지킬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풀리지 않는 한, 그 공조를 만들어내는 일이 어느 때보다 어렵고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권효성 블룸버그 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
한국은행 조사국 경제전망 총괄과 통화정책국 정책분석팀장을 지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에서 한국 및 대만 거시경제 분석과 전망 등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