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테쉬(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로 대표되는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 이른바 ‘C커머스’의 초저가 제품 공세는 최근 수년간 전 세계 유통 업계를 흔들어놨다. 실제 2024년 미국 내 모바일 쇼핑 앱 다운로드 순위에서 테무와 쉬인은 아마존을 제치고 1·2위를 석권했다. 이들은 대규모 보조금과 관세 면제의 허점을 영리하게 조합해 극단적인 저가 상품을 세계로 배송하며 이커머스의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폭발적 성장을 기록한 C커머스가 본격 궤도에 오르면서 기존 이커머스 기업들에 돌이킬 수 없는 종말을 고하는 듯 보였다. C커머스 공세 앞에 미국 전자상거래 업체 위시는 기업 가치가 급락하며 헐값에 매각됐고, 유럽 패션 이커머스의 강자였던 아소스는 매출이 두 자릿수 감소를 보이는 등 전 세계적으로 사세가 기울거나 매각된 이커머스 업체가 다수 생겨났다.
한때 테무 사용자의 평균 앱 체류 시간이 아마존을 두 배 이상 앞지르기도 하면서 위기는 아마존을 비롯한 기존 이커머스 ‘공룡들’에게로 확산하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아마존, 쇼피파이(Shopify), 메르카도 리브레(Mercado Libre)의 지난해 실적은 이런 우려가 기우였음을 증명하듯, 오히려 탄탄한 성장세를 보여줬다.
아마존의 매출은 전년 대비 12.4%, 영업이익은 16.6% 상승했으며, 아마존웹서비스(AWS)를 제외한 매출과 영업이익도 각각 약 11%, 20% 증가했다. 쇼피파이는 매출 30.1%, 영업이익 36.6%라는 폭발적 성장을 보였고, 메르카도 리브레도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39.1%와 21.7% 증가했다. 이들의 총 상품 거래액(GMV)도 2024년 대비 약 10~30%가량 늘었다. 이들이 중국 플랫폼의 공습에서 생존을 넘어 성장까지 이뤄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초저가 쇼핑으로 전 세계 소매업계의 판도를 흔든 알·테·쉬에 대한 세계 최대 이커머스 기업 아마존의 대응 전략은 ‘정면 돌파’였다. 아마존은 C커머스 업체로 이탈하는 소비자들을 붙잡기 위해 2024년 11월 초저가 전용 모바일 스토어인 아마존 하울(Amazon Haul)을 선보였다. 아마존 하울은 철저하게 C커머스를 벤치마킹한 모델로, 패션·생활용품 같은 상품을 주로 팔면서 상품 가격을 20달러 이하로 제한했다. 단, 배송은 기존 구독 서비스인 프라임(Prime)의 익일 배송 원칙을 과감히 탈피하는 대신, 2주 이내로 정해 중국 등 해외 제조 현지에서 소비자의 문 앞까지 직접 배송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배송 기간을 늘리는 대신 획기적으로 낮은 가격을 제공해 극한의 가성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을 겨냥한 것이다. 컨설팅 업체 베인앤드컴퍼니는 “아마존 하울은 중국 경쟁 업체들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면서 글로벌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마존은 미국에서만 제공하던 하울 서비스를 지난해에는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주요국과 일본, 호주 등 25개국으로 전격 확장했다. 이에 판매 제품 수가 1년 새 5배 이상, 방문자 수는 세 배 이상 늘면서, 중국 업체에 비해 압도적인 누적 리뷰 수를 바탕으로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다르메시 메타 아마존 부사장은 “고객들은 아주 낮은 가격에 훌륭한 상품을 찾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다. 이를 통해 미국 내에서만 약 20억달러의 총 상품 거래액(GMV)을 새로 창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지난해 테무와 쉬인은 중남미 시장을 가장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작년 상반기 중남미에서 테무의 월간 활성 사용자(MAU)는 전년 동기 대비 143% 급증했고, 쉬인은 중남미 전체 쇼핑 앱 다운로드의 33%를 차지했다. 또 중국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중남미 핵심 인프라이자 국영 코스코(COSCO)가 건설·운영하는 페루 찬카이 항구가 지난해부터 상업 운영을 시작했다. 이로써 기존 대비 중국발 해상 운송 시간이 10일 줄고 비용은 20% 감소해 C커머스의 공습에 대한 중남미 업체들의 위기감이 고조됐다.
이에 대한 ‘남미의 아마존’ 메르카도 리브레의 대응 전략은 ‘역습’이었다. C커머스의 심장부인 중국 본토에 직접 물류 허브를 구축하는 파격적인 역발상 전략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중국 판매자들의 상품을 중국 내 거점에 모아 보관했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브라질·멕시코·아르헨티나·칠레·콜롬비아로 포장·발송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전략으로 메르카도 리브레는 C커머스 업체들이 중국 생산 공장에서 조달해 초저가로 판매할 수 있는 구조적 우위를 자사 플랫폼으로 흡수했다. 이를 통해 중남미 소비자들은 굳이 C커머스를 이용하지 않아도 익숙한 메르카도 리브레 앱 내에서 중국 현지 공급업체가 제공하는 초저가 상품을 직접 탐색하고 결제할 수 있게 됐다. 메르카도 리브레는 주주서한을 통해 “우리는 중국 기반 상품의 공급망을 직접 통제함으로써 서비스 수준을 개선했다”고 자평했다.
더불어 남미 주요국의 세관 시스템과 완벽하게 연동된 세금 납부 및 배송 추적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언어 장벽과 통관 지연에 시달리던 중국 현지의 우수 판매자들까지 자사 생태계로 대거 끌어들였다. 그 결과 메르카도 리브레는 지난해 중남미에서 매출이 전년 대비 39.1% 증가한 289억달러를 기록하며 대륙 내 지배자로서 지위를 더욱 확고히 다졌다.
◇C커머스와의 차별화
아마존이 직매입 위주, 소비자가 직접 방문하는 중앙 집중형 쇼핑몰이라면 쇼피파이는 본인만의 쇼핑몰을 창업하려는 판매자들에게 필요한 솔루션을 제공하고 각자의 쇼핑몰 사이트에 올라온 물건들을 한곳에 모아 보여주는 방식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수많은 브랜드의 개별 온라인 자사몰(DTC)을 뒤에서 만들어주는 사업 구조인 셈이다.
이는 C커머스의 공습에 취약할 수 있는 구조이기도 하다. 테무와 알리익스프레스가 동일한 공장 제조품을 원가에 가깝게 공급하면서, 중간에서 마진을 취하거나 마케팅에 의존하던 영세한 DTC 브랜드들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또한 C커머스의 틱톡, 숏폼, 라이브방송 등 콘텐츠 안에서 소비자를 바로 상품 판매 창으로 데려오는 방식은 소비자가 개별 브랜드 자사몰로 찾아갈 필요를 줄이기도 했다.
이에 쇼피파이는 영세 B2C(기업·소비자 간 거래) 시장에서 C커머스와의 ‘진흙탕 싸움’보다는 B2B(기업 간 거래) 시장으로의 진출로 방향을 틀었고, 전략은 주효했다. C커머스가 개별 소비자에게 값싼 소형 물품을 판매하는 데는 최적화돼 있지만, 기업을 대상으로 대량의 물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거나 복잡한 세금 계산, 신용 결제 조건 등을 처리할 인프라와 신뢰를 갖추는 데는 쇼피파이보다 떨어진다는 데서 나온 결정이었다.
쇼피파이는 기업 전용 ‘쇼피파이 플러스 엔터프라이즈 플랜’ 구독 모델을 통해 기존의 B2C 자사몰과 동일한 인터페이스 내에서 기업 고객만을 위한 맞춤형 전용 솔루션을 대거 구축했다. 여기엔 기업별 맞춤형 가격 카탈로그 제공, 대량 주문을 위한 설정, B2B 전용 외상 결제 조건 지원 등 기능이 포함됐다. 이에 스타벅스, 캐나다구스, 소네파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을 B2B 고객으로 유치했다. 이런 전략이 적중하면서 지난해 쇼피파이의 B2B 부문 총 상품 거래액은 전년 대비 96% 성장했다. 할리 핀켈스타인 쇼피파이 사장은 “쇼피파이 상인들의 성장세를 B2B가 떠받치고 있다”고 했다.
메르카도 리브레는 강력한 핀테크 인프라라는 C커머스 업체들이 갖지 못한 차별성 있는 무기를 활용해 기존 이용자들의 이탈을 막았다. 핀테크 자회사 메르카도 파고(Mercado Pago)는 자체적인 AI 신용 평가 모델을 바탕으로 쇼핑몰 구매 이력을 분석해 소비자에게 구매 자금을 선지원하고 신용카드를 적극적으로 발급했다.
이는 메르카도 리브레가 단순한 쇼핑 플랫폼에 그치는 게 아닌, 경쟁 플랫폼들이 제공하지 못하는 막강한 구매력까지 자사 고객들에게 부여하는 효과를 냈다. 은행 계좌가 없거나 신용카드를 발급받지 못한 인구가 상당한 중남미 이용자의 특성을 공략해 결제·이체·저축·대출 등 금융 생활 서비스를 쇼핑과 엮은 것이다. 장기간 다져온 지역 내 핀테크 인프라를 락인(Lock-in) 장치로 활용해 이용자를 묶는 동시에 신규 이용자도 유입시켰다. 베인앤컴퍼니는 “메르카도 리브레의 강력한 생태계, 지역 이해도, 브랜드 신뢰도 때문에 중국 업체들이 쉽게 이길 수 없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중남미 내 가장 큰 시장인 브라질(58억달러)과 멕시코(34억달러)에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를 단행해 당일 또는 익일 배송 지역을 확장했다. 2주 이상 걸리는 중국 직배송과의 속도 차이를 벌렸다. 그 결과 지난해 4분기 기준 메르카도 파고의 월간 활성 사용자는 전년 대비 27% 증가한 7800만명을 돌파했다.
아마존은 제품 보증과 원활한 환불 등 서비스로 C커머스와 차별점을 만들었다. 아마존 제3자 셀러가 판매한 상품의 배송 지연·파손·상품 상이 등 문제를 직접 개입해 환불 또는 교환을 보장하는 고객 보호 제도를 시행해 왔는데, 이를 초저가 하울 서비스에도 적용했다. 또한 글로벌 물류 네트워크를 활용해 C커머스 대비 투명한 배송 추적과 원활한 환불·반품 절차를 제공했다. 이는 불량품이나 짝퉁 문제로 피로감을 느끼던 C커머스 고객들을 다시 흡수하게 만들었다.
◇C커머스 공세 막는 각국
지난해 들어 본격적으로 시작된 전 세계적인 소액 면세 제도(De minimis)의 축소·폐지 환경은 알·테·쉬의 성장세를 둔화하게 만드는 동시에 글로벌 이커머스 공룡들에게 든든한 방패막이 됐다. 이 제도는 국경을 넘나드는 일정 수준 이하의 소액 화물에 대해 관세와 부가가치세(VAT)를 면제해 줬다.
이 제도는 원래 기업을 위해 설계된 게 아니라, 여행자 등 개인이 소액의 물건을 본국으로 보내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C커머스 업체들이 최근 수년간 이를 활용해 소매 비즈니스를 구축해왔다. 이는 C커머스 플랫폼들이 중간 유통망 없이 초저가 상품을 전 세계 소비자에게 직접 배송하며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핵심 배경 중 하나가 됐다.
C커머스가 각국의 유통업 판도를 흔들자 하나둘 칼을 빼 들기 시작했다. 지난해 8월 전 세계에서 소비가 가장 큰 미국이 800달러 이하 소액 화물에 대한 관세 면제 조치를 전격 중단했다. 미 정부와 의회는 이러한 면세 조항이 “중국 이커머스 기업들에게 부당한 혜택을 제공해 미국의 소규모 지역 상점들을 파괴해왔다”고 지적했다.
앞서 멕시코는 2025년 1월 대부분의 특송 화물에 대해 소액면세 예외를 종료하고 19% 단일 관세율을 적용했다. 베트남은 2025년 2월 18일부터 1백만 동 이하 수입물품에 대한 관세·부가가치세 면제를 종료하였다. 튀르키예는 2024년 8월 소액면세 기준을 30유로로 하향했다. 브라질 역시 2024년 8월을 기점으로 50달러 이하 수입품에 대한 기존의 면세 혜택을 철폐해 국경을 넘는 물품에 대해 최대 44.5%에 달하는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은 더욱 확산할 전망이다. 유럽연합(EU)은 오는 7월부터 150유로 미만 상품에 대한 기존의 면세 혜택을 폐지하고, 각 품목당 3유로의 고정 취급 수수료를 부과하는 조치를 승인했다. 멕시코는 올해부터 2500달러 이하 모든 화물에 33.5%의 글로벌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태국도 올해부터 1500바트 이하 수입 물품에 대한 면세 예외를 종료하고 관세 및 7% 부가가치세를 부과하고 있다. 영국도 현행 135파운드인 관세 면세 기준의 폐지를 2029년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다만 이 같은 변화가 C커머스를 시장에서 퇴출시키진 못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커머스 데이터 분석업체 마켓플레이스펄스의 주오자스 카지우케나스 CEO는 WEEKLY BIZ에 “소액 면세 폐지로 중국계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전보다 잃기는 했다”면서도 “그들은 그사이 이미 상당한 규모로 성장했고 공급망도 다변화해 둔 상태여서 여전히 대체로 더 저렴한 제품을 내놓는 데다, 초저가 상품만 판매하던 단계에서 벗어나 다양한 가격대의 상품을 판매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 시장은?
알·테·쉬는 한국에서도 2024년까지 폭발적 성장을 보였으나, 가품·보안 논란 속에 소비자 피로감이 겹치며 상승세가 한풀 꺾였다. 특히 지난해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중국 플랫폼 전반에 대한 보안 불신을 확산시킨 모양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알리익스프레스의 주간 활성 이용자(WAU)는 한때 500만명을 넘겼으나 지난해 11월 476만명, 지난 1월 377만명으로 줄었다. 테무의 WAU도 한때 400만명대를 기록하다 올해 초 360만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주간 결제 추정액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정보 유출과 이후 갖가지 논란에도 쿠팡은 지난달 WAU 2800만명을 회복하며 선두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G마켓, 11번가, 네이버플러스 스토어, SSG닷컴 등 국내 이커머스 플랫폼들은 쿠팡 사태와 중국 업체의 하락세 속에 잠시 반사이익을 보며 WAU가 한때 3~10%가량 증가했지만 300만~400만명대 수준에 머물며 눈에 띌 만한 반등은 이뤄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