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의균

지난달 일본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역사적인 압승을 거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본 정치에서 보기 드문 강력한 권력을 손에 쥔 지도자다. 그는 반도체·AI(인공지능)·방위 산업 같은 전략 분야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투자해 경제를 다시 성장 궤도에 올려놓겠다는 구상을 내세우고 있다.

지금까지 윤곽을 드러낸 ‘사나에노믹스’(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경제정책)는 겉으로 보기엔 아베노믹스의 연장선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책이 작동해야 할 경제 환경은 크게 달라졌다. 과거 일본의 고질병은 디플레이션이었지만, 지금은 엔화 약세와 물가 상승이 핵심 변수다. 세계 3위 경제 대국 일본은 역대 가장 강한 리더를 맞아 어디로 향하는가. 디플레이션 시대의 정책은 인플레이션 시대에도 유효할까. 국가 주도의 산업 투자 전략이 새로운 성장 모델이 될 수 있을까. 세계가 숨죽인 채 일본의 새로운 실험을 지켜보는 이유다.

◇사나에노믹스의 서막

사나에노믹스의 태동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카이치 총리가 의원 시절인 2021년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출간한 ‘미래를 여는 새로운 국가 경영론: 아름답고 강하며 성장하는 나라를 향하여’에는 아베노믹스의 계승과 발전 구상이 오롯이 담겨 있다. 대담한 금융 완화(물가 상승률 2% 달성 시까지 통화 완화 기조 유지), 탄력적 재정 정책(위기 상황에서 국가 부채에 구애받지 않는 과감한 지출) 등을 통해 일본 경제를 강하게 재건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다카이치는 경제를 안보와 지정학의 관점에서 바라봤다. 반도체, 양자 컴퓨터, AI 등 전략 물자와 첨단 기술 공급망을 국내화하고, 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법적 장치(경제안보추진법 등) 마련을 강조했다. 중국에 대한 산업 의존도를 낮추고, 일본의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헌법 개정을 통해 자위대의 지위를 명확히 하고, 국방비를 GDP의 2% 수준으로 증액할 것 등도 주장했다. 특히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와 사이버·우주 공간에서의 방위력 강화를 역설하며, 미·일 동맹을 기축으로 하되 일본의 독자적인 방위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완화적 거시 정책을 통한 경제 성장과 첨단 기술 확보를 바탕으로 군사적·경제적 위협으로부터 일본을 보호하고 보수적 가치를 수호하겠다는 청사진을 담았다. 당시 다카이치는 총리 후보였으나 최종 당선되지 못했고, 이후 기시다 내각에서 경제안보담당상을 역임하며 책의 내용을 정책화하는 데 주력했다.

◇총선 압승, 시장의 베팅

지난해 10월 그가 총리로 취임하자, 금융시장에서는 ‘다카이치 트레이드’가 시작됐다. 무제한 금융 완화와 적극적 재정 지출로 엔화가 약세를 보이고 국채 금리가 상승하는 가운데 일본 증시가 오름세를 지속할 것이라는 베팅이었다. 사나에노믹스가 계승하고자 하는 아베노믹스 시기, 엔·달러 환율이 80엔에서 150~160엔대까지 올랐고(엔화 약세) 주가는 60~70% 상승했던 경험을 투자자들은 떠올렸다.

유일한 차이점은 국채금리였다. 아베 내각(2012~2020년) 당시 장기국채 매입에 나선 일본은행(BOJ)은 상장지수펀드(ETF)와 J-리츠까지 매입하는 파격 행보를 보였다. 2016년에는 전 세계 중앙은행 중 처음으로 마이너스 정책금리(–0.1%)를 도입하고 10년물 국채금리가 0% 내외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수익률곡선통제(yield curve control) 정책도 시행했다. 전방위 돈 풀기로 유동성이 넘쳐나는 가운데 2016~24년까지 일본의 10년물 국채는 1%를 하회하는 저금리가 지속됐다.

그래픽=김성규

반면, 다카이치 총리 취임 이전부터 물가상승률이 높아지면서 BOJ가 2024년 3월 기준금리를 0.1%로 인상하고 수익률곡선통제도 중단키로 결정했다. 지난해 12월에는 기준금리를 0.75%까지 높였다. 통화정책 정상화 과정에서 일본 10년물 국채금리는 2%대까지 꾸준한 오름세를 보였다.

‘다카이치 트레이드’의 정점은 올 2월 8일 중의원 선거였다. 2월 말까지 금융시장에서 다카이치 트레이드는 대체로 잘 들어맞았다. 지난달 말 다카이치 내각은 ‘고압 경제’(통화 완화와 유동성 공급을 통해 경제 성장을 극대화)를 주창하는 교수 2명(토이치로, 아야노)을 BOJ 정책위원회 심의위원 후보로 지명했다. 다카이치가 금리 인상에 유보적이라는 의견을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에게 전달했다는 언론 기사도 나왔다. BOJ가 금리 인상을 늦출 가능성이 부각되자, 엔·달러 환율은 160엔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올랐다. 현재 8%인 식료품 소비세를 2년간 0%로 인하하겠다던 공약 이행 가능성도 높아지면서, 일본 10년물 국채 금리는 재정 악화 우려를 반영해 1999년 이후 최고치인 2.33%까지 급등했다.

◇다카이치 트레이드의 변곡점

‘다카이치 트레이드’는 앞으로도 유효할까. 적어도 환율에 대해서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중동 사태로 인해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사나에노믹스에 전술적 변화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대외 여건이 어려울수록 다카이치 정부가 직면하고 있는 구조적 난관이 부각돼 환율 관리가 중요해졌다.

명목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본 정부 부채는 2021년 220%에서 2025년 202%까지 하락했다. GDP 대비 정부 순이자 지급 비율도 과거 저금리에 힘입어 2013년 0.9%에서 2024년에는 0.1%까지 낮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 부채 규모는 GDP의 200%를 넘고, 최근 국채 금리가 급등함에 따라 이자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4%에 육박하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올 1월 1.7%까지 둔화한 덕분에 근로자 1인당 실질 임금이 1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이미 높아진 식료품 가격에 최근 유가 급등으로 서민들의 체감 물가는 걱정할 만한 수준이다. 생산가능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있고 인구 고령화는 심화하는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 비추어 다카이치 정부는 경제 성장보다 물가 안정에 우선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엔화 약세를 저지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최근 들어 가타야마 사쓰키 일본 재무상이 엔화 약세를 우려하는 발언을 쏟아내는 데에는 미국과의 환율 공조 필요성뿐 아니라 국내 물가 상황도 고려한 것이란 해석이 많다. 가타야마 재무상은 참의원 시절부터 과도한 엔저의 폐해를 우려하고 BOJ 금리 정상화를 지지하는 목소리를 일관되게 내왔다.

지난해에 이어 올 3월 춘투에서도 5%대 명목임금 인상률이 확인되고 중동 사태가 악화되지 않는다면, BOJ는 6~7월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1.00%로 한차례 인상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우에다 총재는 경제 물가 상황이 개선되면 금리인상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재정정책과 관련해선 ‘책임있고 능동적인 재정정책’ 중 당분간 ‘책임’에 방점을 찍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부채가 200%를 넘지만 순부채(총부채-금융자산)는 77%에 불과하다는 점을 부각하고, 식료품 소비세 면세 재원도 경제 성장에 따른 세수 증가분으로 충당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베의 화살, 사나에의 총알

아베 내각은 디플레이션 탈출이 급선무였기 때문에 금융경제 여건에 아랑곳하지 않고 저금리와 엔 약세를 일관되게 밀어붙였다. 2000년과 2006~2007년 BOJ가 일시적 경기 회복과 물가 상승을 기조적 움직임으로 오판하여 기준금리를 섣불리 인상했다가 전 세계 IT 버블 붕괴와 글로벌 금융 위기로 일본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다시 빠져든 전례가 있다. 아베, 스가, 기시다로 이어지는 동안 일본 정부와 BOJ가 완화적 금융 완화에 강력하고 꾸준히 나선 결과, 1995년부터 2022년까지 대체로 마이너스 상태였던 GDP 디플레이터(경제 전체의 물가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 변동률이 2023년부터 큰 폭의 플러스로 반전했다.

아베노믹스 덕분에 다카이치 내각은 디플레 탈출 부담을 덜었다. 현재 일본은 완전 고용 상태에서 지속적인 임금 인상이 이루어지는 등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이 나타나고 있다. 물가, 임금, 주가, 집값 등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지표에서도 디플레 탈출 징후가 뚜렷하다. 일본 정부가 아직 디플레이션 탈출을 공식 선언하지 않았지만, 시간 문제로 보인다.

완전히 달라진 바통을 이어받은 사나에노믹스의 거시정책은 통화보다 재정을 중심으로 운용될 것이다. 무제한 돈풀기를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물가 안정을 위해서 엔화 약세보다 엔화 안정을 중시하고, 세수가 뒷받침되지 않아 감당하지 못하는 재정지출은 억제할 것으로 예측된다. 식료품 소비세를 8%에서 0%로 인하하는 대신, 현행 10%인 여타 품목의 소비세율을 중장기적으로 12%까지 높이는 방안이 논의될 수도 있다.

이란 사태를 기회로 전략 산업과 안보 관련 투자는 확대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해 신설된 성장전략 본부는 경제안보와 에너지 등 위기관리 투자 및 성장투자의 핵심이 될 17개 전략분야와 8개 이슈에 대한 민관 협력 로드맵 초안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아베노믹스가 세 개의 화살(대규모 금융 완화, 적극적 재정 정책, 성장 전략)로 대표된다면, 사나에노믹스는 두 개의 총알(책임 있고 능동적인 재정정책, 위기관리 투자 및 성장 투자)로 불릴 만하다. 아베의 첫 번째 화살(대규모 금융완화)은 과녁(디플레이션 탈출)을 맞췄다.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면 명목 경제 성장률이 높아진다. 세수가 늘어나 재정 여건이 개선된다. 아베가 못다 맞춘 나머지 두 개의 화살이 다카이치에게는 추동력과 파괴력이 배가된 두 개의 총알이 되었다.

정책 운용 방식에도 상당한 변화가 감지된다. 아베노믹스가 아베의 원맨쇼였다면, 사나에노믹스는 총리-재무상-BOJ 총재의 3각 협력 체제를 유연하고 보완적으로 작동할 것으로 보인다. 아베노믹스가 GDP, 물가, 금리, 환율 등 거시 지표로 성과를 평가받았다면, 다카이치 내각은 민생 지표를 중시할 것으로 보인다.

◇원·엔 환율 향방은

일본의 행보는 우리 경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환율을 통해서다. 원·달러 환율은 2008년 금융 위기, 2020년 코로나 위기를 제외하면 엔화와 동조하는 움직임을 보였으며, 특히 일본의 대규모 재정 지출 확대로 인한 엔화 약세 국면에서 상관관계가 높게 나타났다.

중동 사태가 안정된 이후 글로벌 외환시장은 사나에노믹스의 두 개 총알에 다시 관심을 가질 것이다. BOJ가 상반기 중 금리를 추가 인상하는 가운데 2027회계년도 예산(안) 등을 통해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투자를 통한 성장 잠재력 제고 기대가 커진다면 연말에는 엔·달러 환율이 150엔을 밑돌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경제는 한은의 금리 동결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세수 여건이 개선되면서 추경에 따를 추가 국채 발행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생산적 금융 등 투자 중심의 성장 정책도 가시화되고 있다. 엔화 강세 시 원화 강세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엔·달러 환율이 150엔을 하회한다면 외환시장에서 동조성이 커진 원·달러 환율도 1400원 선 아래에서 안정될 수 있다.

※ 본 기고문은 필자의 개인 의견이며, 연구소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권영선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연구본부장

한국은행, 리먼브라더스, 노무라증권에서 35년간 이코노미스트로 근무하며 거시경제와 금융시장을 연구했다. 지난해 ‘일본경제 대전환’을 공동 집필했다.

권영선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연구본부장(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