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은 집으로 돌아가라.”
지난달 27일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이런 구호를 내세운 관광객 반대 시위가 열렸다. 시위 참가자들은 “관광보다 주거권이 우선이다” ”도시는 주민을 위한 곳”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관광객 급증으로 인한 불편과 생활 환경 악화, 집값 상승을 비판했다.
나폴리뿐만이 아니다. 포르투갈 리스본과 스페인 바르셀로나처럼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은 남유럽의 주요 관광 도시부터 동남아시아, 멕시코 등에 이르기까지 관광객 급증에 대한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전 세계 곳곳이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과잉 관광)’의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에서도 오는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K팝 대표주자인 방탄소년단(BTS) 컴백 공연이 예정돼 숙박 바가지 요금, 쓰레기 처리, 노숙 등 오버투어리즘으로 인한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UN 세계관광기구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관광객 수는 약 15억2300만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한 것으로 추산된다. 코로나 팬데믹 직전인 2019년의 14억8900만명을 넘어섰다. 세계관광기구는 오버투어리즘을 “관광의 영향으로 인해 주민들이 느끼는 삶의 질이나 방문객 경험의 품질에 과도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태”라고 정의한다. 관광객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들이려 경쟁하던 도시들이 왜 이제는 관광객을 막아서는 상황이 됐을까. WEEKLY BIZ는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오버투어리즘 현상의 원인과 그에 따른 사회·경제적 파장을 짚어 봤다.
◇‘LCC, 에어비앤비, 그리고 인스타그램’
오버투어리즘이라는 개념이 처음 회자된 것은 2010년대 후반이다. 2018년 오버투어리즘은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됐고 올해의 단어 후보에 오를 정도로 급부상했다. 그해 유럽의회에서도 유럽연합(EU) 회원국 도시에서 발생하는 관광 과밀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팬데믹은 이런 흐름에 일시적인 제동을 걸었다. 각국이 국경을 봉쇄하면서 국제 관광객 이동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팬데믹이 끝나자 억눌렸던 여행 수요가 폭발하는 ‘보복 여행’ 현상이 나타났다. 이에 코로나로 잠잠해졌던 오버투어리즘 문제가 최근 1~2년 사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관광객이 급증한 배경에는 여행의 핵심 요소인 교통과 숙박의 접근성과 편의성이 크게 높아진 점이 작용했다. 영국 항공정보업체 OAG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저비용 항공사(LCC) 좌석 수는 19억8604만4698석으로 2010년 대비 187%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항공 좌석 수가 57% 성장한 것에 비해 폭발적인 증가를 보이며, 2024년 총 좌석 수(58억5494만여석)가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라이언에어 같은 초저비용 항공사의 등장은 국가 간 이동 비용을 ‘피자 몇 판 값’ 수준으로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항공 여행의 문턱을 크게 낮췄다.
단기 숙박 공유 플랫폼의 성장도 여행 붐에 큰 역할을 맡았다. 대표적 단기 숙박 공유 플랫폼인 에어비앤비에 등록된 숙소 수는 2019년 560만개에서 지난해 900만개 이상으로 늘었고, 숙박·체험 예약 건수는 5억3300만건을 기록했다. 아고다·부킹닷컴·익스피디아 등 주요 호텔 예약 중개업체들도 주거용 부동산 단기 임대 시장에 뛰어들었다. 익스피디아가 운영하는 단기 임대 플랫폼 버보(Vrbo)에 등록된 숙소만 200만개가 넘고, 부킹닷컴의 숙박 매출 중 3분의 1가량이 주거용 부동산의 단기 임대에서 나오는 상황이다.
인구 800명 남짓의 오스트리아 할슈타트는 요즘 하루 최대 1만명의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영화 ‘겨울왕국’의 모티브가 된 것이 알려지고 인스타그램에 랜드마크인 호숫가 풍경 사진이 퍼지면서다. LCC와 단기 숙박 플랫폼이 관광객 수를 증가시켰다면, 인스타그램·틱톡 같은 소셜미디어는 관광객을 특정 지역으로 몰리도록 만들고 있다.
유럽의회는 이미 2018년부터 “소셜미디어가 특정 지역과 시기에 관광객을 집중시켜 오버투어리즘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해왔다.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 인플루언서들이 소개한 특정 장소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지고 이를 따라 하려는 ‘필름 투어리즘’과 인증샷 문화로 관광객이 구름처럼 몰려든다는 것이다. 캐이시 위치먼 조지아텍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국립공원 중 소셜미디어 노출이 높은 공원군은 그렇지 않은 곳 대비 방문객 수가 16~22% 더 늘었다.
◇관광 수입 느는데 왜 분노하나
대다수 국가와 도시는 관광객 유치를 장려하는 게 일반적이다. 관광객이 몰려와 돈을 쓰면 지역 경제가 나아질 거란 기대 때문이다. 실제 관광객 수가 최대였던 지난해 전 세계 총 관광 수입도 역대 최대인 1조9000억달러였으며, 세계관광기구의 최근 수년간 통계 추이를 보면 관광객 수와 관광 수입은 비례했다.
하지만 그 수익이 지역 주민에게 돌아가는 건 다른 차원의 얘기다. 관광객이 늘어나는데도 오히려 지역 주민의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 역설이 발생하기도 한다. 스페인 발레아레스 제도의 경우, 지난 25년간 관광객 수는 30% 증가했지만, 유럽 내 1인당 소득 순위는 48위에서 148위로 하락했다.
안토니오 루소 스페인 로비라이비르길리대 지리학과 교수는 WEEKLY BIZ에 “관광 수입 혜택이 지역 사회 전반에 고루 분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고 했다. 명목상 관광 수입이 늘어도 대형 체인 기업과 플랫폼, 호텔 체인이나 크루즈 선사 같은 외부 자본 등으로 빠져나가 지역에 남는 돈이 적어지면 주민의 경제적 효용은 줄어들 수 있다. 또 관광객 수요가 물가를 밀어 올려 주민들의 실질 소득을 감소시키기도 한다. 유로뉴스는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한 지역들에서 사진 찍기에 혈안이 된 관광객들은 마을에 돌려주는 것보다 가져가는 것이 훨씬 많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관광객 때문에 거주민이 삶의 터전에서 밖으로 내몰리는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관광객으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다. 주거용으로 쓰이던 매물이 에어비앤비 같은 단기 고수익 임대로 전환되면서 부동산 물건이 사라지고 매매·임대 가격이 치솟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유사한 문제가 발생하면서 비난의 대상이 된 에어비앤비는 “관광객을 교외로 분산시켜 오히려 문제를 완화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관련 연구들은 대체로 단기 숙박 플랫폼이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린다고 지적한다. 미겔 앙헬 가르시아 로페스 바르셀로나자치대 연구팀에 따르면, 바르셀로나의 에어비앤비 활성 상위 10% 지역에서 임대료가 7%, 매매 가격이 17% 올랐다. 카일 배런 전미경제연구협회 연구팀은 미국에서 에어비앤비 등록 숙소 수가 1% 늘어날 때마다 임대료가 0.018% 상승한다고 밝혔다.
◇공유지의 비극
오버투어리즘은 단순한 혼잡을 넘어, 지역 사회의 생태계와 인프라를 파괴하는 ‘공유지(公有地)의 비극’을 낳고 있다. 해변, 골목, 유적, 수도와 하수 처리 같은 공공 인프라는 누구나 누리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쓰레기·하수 처리 비용과 전력·인프라 과부하로 인한 세금 부담 등은 현지 주민들에게 전가된다. 세계적인 주요 관광 도시들의 경우, 인구 대비 관광객 수가 수배~수십배에 이르기 때문에 도시 인프라가 과부하됨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최근 대규모 반(反)관광 시위가 불붙은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의 사태는 이 비대칭적 구조를 여실히 보여준다. 기후변화에 따른 극심한 가뭄으로 현지 주민들은 엄격한 식수 제한 조치를 받으며 고통받고 있지만, 섬 곳곳에 들어선 럭셔리 리조트의 대형 수영장과 골프장 잔디에는 매일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진다. 고급 호텔에 머무는 관광객은 하루 평균 현지인보다 최대 6배 많은 물을 소비한다.
일본 교토에서는 시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시내버스가 거대한 캐리어를 든 관광객들에게 완전히 점령당했다. 저렴한 1일 패스를 쥔 관광객들 틈에서 정작 주민들은 출퇴근 버스조차 타지 못하는 시간적·심리적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태국 마야베이는 보트와 인파가 몰리며 산호의 80% 이상이 훼손돼 장기 폐쇄에 들어갔다. 필리핀 보라카이는 하수 문제가 누적돼 정부가 섬을 통째로 폐쇄해 정화했다.
◇사적 제재...‘안티 투어리즘’ 확산
사정이 이렇다보니 “관광객은 돌아가라”던 외침이 “아예 오지 마라(Do not come)”는 절규로 바뀌고 있다. 전 세계 주요 관광지를 휩쓸고 있는 안티 투어리즘(Anti-tourism) 시위는 이제 단순한 혼잡과 소음에 대한 불만을 넘어섰다. 치솟는 임대료와 생활비에 쫓겨나고 평범한 일상을 빼앗긴 지역 주민들이 주거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벌이는 처절한 방어전이 됐다.
최근 가장 격렬한 저항이 일어나는 곳은 남유럽이다. 이 지역에서 오버투어리즘을 반대하는 SET 연합은 지난해부터 스페인·포르투갈·이탈리아의 10여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탈리아 제노바에서는 골목을 메운 크루즈 관광을 풍자하려 종이 크루즈선을 끌고 행진했고, 스페인 마요르카 팔마에서는 항공기·크루즈 모형을 든 시위대의 대규모 관광 반대 행진이 이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위와 구호에 그치지 않고 관광객에게 직접 위해를 가하거나 기물을 파손하는 등 행태가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달 스페인 그라나다에서는 하룻밤 새 관광객용 숙소 열쇠 보관함 500여 개가 파손되거나 접착제로 밀봉되는 대규모 사보타주가 발생했다. 파손된 보관함에는 “단기 주거 비즈니스에 반대한다”는 스티커가 붙었다. 바르셀로나에선 시위대가 물총으로 관광객들을 향해 물을 쏘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시위 등을 통한 주민들의 사적 제재 행위가 오버투어리즘 문제를 극복하는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라고 평가한다. 스테판 괴슬링 스웨덴 린네대 관광학과 교수는 WEEKLY BIZ에 “시위는 정책 입안자들에게 주민들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정책적 개입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지역별 가지각색 대응 방안
각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관광객 증가의 부담을 분산하기 위한 정책을 잇달아 도입하고 있다. 가장 흔한 방식은 관광객에게 추가 비용을 부과하는 ‘비용 청구형’이다. 일본 교토가 대표적 사례다. 교토시는 2027년부터 관광객을 대상으로 버스비를 2배 올리고, 1박에 10만엔 이상인 고가 숙소의 숙박세를 기존 최대 1000엔에서 최대 1만엔으로 10배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스 역시 산토리니와 미코노스 등 인기 관광지에서 크루즈 관광객에게 상륙 부담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노르웨이도 피오르드 관광지의 과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자체가 숙박 요금의 최대 3%를 부과하는 관광세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숙박 공급을 직접 제한하는 정책도 확산되고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도심 관광 과밀을 막기 위해 신규 호텔 건축을 사실상 금지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바르셀로나는 2028년까지 단기 임대를 금지했다. 자우메 콜보니 바르셀로나 시장은 “1만 채의 관광객용 단기 임대 아파트가 2028년까지 모두 시장에 나오면, 10년 동안 지어지는 부동산 규모와 맞먹는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도 환경 훼손과 과잉 개발 논란이 커지면서 일부 지역에서 호텔과 빌라 등 신규 관광 숙박 시설 개발을 제한하거나 중단하는 조치가 시행된 바 있다.
관광객 수 자체를 직접 제한하거나 방문 흐름을 관리하는 정책도 늘고 있다. 암스테르담은 도심 혼잡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대형 크루즈선을 줄이기 위해 크루즈 터미널 이전과 정박 제한 정책을 추진 중이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는 동시 접안할 수 있는 크루즈선을 하루 두 척으로 제한했다. 페루의 마추픽추 역시 세계유산 보호를 위해 하루 방문객 수를 제한하고 시간대별 입장제를 운영한다.
최근에는 데이터 기반 관광 관리도 확산되고 있다. 베네치아는 CCTV와 센서를 통해 실시간 인파 흐름을 분석해 혼잡 지역을 관리한다. 교토는 실시간 카메라와 인공지능 기반 혼잡 예측 정보를 앱으로 제공해 관광객이 덜 붐비는 장소와 시간을 선택하도록 유도한다. 루브르 박물관이나 그리스 아크로폴리스 등 주요 관광지에서는 시간대별 예약제를 도입해 방문객 밀도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루소 교수는 “이러한 규제들은 실제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고 있다”면서도 “관광 산업의 불평등 구조나 대규모 이동이 초래하는 환경 문제까지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