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간 수많은 중국 이공계 천재들을 길러낸 존 홉크로프트 코넬대 컴퓨터과학과 교수는 WEEKLY BIZ 인터뷰에서 “미국 최고 대학에서 보이는 글로벌 수준의 인재가 전공당 2~3명이라면 베이징대는 100명 정도”라며 “최상위권 학생의 역량은 비슷하지만 중국의 과학계 엘리트층이 훨씬 두꺼운 셈”이라고 했다./USP Images

중국의 최대 연례 정치 행사인 양회(兩會)가 4일 개막한 가운데, 중국 AI(인공지능) 기업 딥시크가 양회 기간에 맞춰 차세대 AI모델 ‘V4’를 공개한다는 소식에 글로벌 IT 업계가 다시 한번 초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딥시크는 작년 1월 첫 추론 모델 ‘R1’을 공개하며 글로벌 AI 시장에 ‘딥시크 쇼크’를 안겼다. 시장에서는 딥시크의 신모델 공개 시점을 두고 중국 기술 굴기의 상징성을 부각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중국의 기술 굴기는 글로벌 산업 지형에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AI·로봇·전기차·배터리 등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첨단 산업은 이미 중국 기업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데다, 미래 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는 R&D(연구개발) 투자액과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박사 학위 취득자 수 등 각종 지표는 중국의 저력을 보여준다. 한때 외국 기업의 주문에 따라 공산품을 양산해 냈던 ‘세계의 공장’이 최첨단 ‘테크 허브’로 변모했다는 평가다.

중국의 기술 굴기 배경에는 막대한 정부 보조금, 정부 주도의 산업 생태계 육성 등 다양한 요인이 꼽힌다. 하지만 최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중국의 이른바 ‘지니어스 플랜’이 기술 굴기의 숨은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니어스 플랜이란 베이징대·칭화대 등 중국 최고 대학에서 20~30명의 이공계 천재들을 선별해 연구자로 만든 뒤, 첨단 산업 분야로 배출하는 교육·산업 연계형 프로젝트다.

WEEKLY BIZ는 중국의 기술 굴기를 가능하게 만든 ‘지니어스 플랜’을 파헤쳐 보기 위해, 중국에서 30년 동안 이공계 인재를 가르친 존 홉크로프트 코넬대 컴퓨터과학과 교수를 최근 화상으로 만났다. 홉크로프트 교수는 컴퓨터 과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튜링상 수상자이자 컴퓨터 언어와 알고리즘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베이징대의 컴퓨터 과학 엘리트 코스인 ‘튜링 클래스’를 직접 설계·지도한 인물이다. 그는 지난 2024년 중국 정부가 외국인 학자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중국 국제 과학기술 협력상’을 받는 등 중국 내부에서 과학 인재 양성의 ‘1등 공신’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국가대표 과학인재 양성 20년

-중국의 이공계 ‘엘리트 코스’에 대해 소개해달라.

“쉽게 말해 상위 1% 인재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베이징대의 ‘튜링 클래스’와 칭화대의 ‘야오 클래스’가 대표적이다. 베이징대의 컴퓨터과학과는 1년에 250명이 입학하는데, 이 중 연구자로서의 잠재력이 보이는 인재 30명을 선별해 튜링 클래스에 배정하는 식이다.”

-선발 과정은 어떻게 되나.

“가장 중요한 기준은 ‘배움에 대한 진정성 있는 흥미와 의지’다. 애초에 후보군에 올랐다는 것만으로 성적표나 이력서는 무의미하기 때문에 심층 면접을 통해 연구자로서의 자질을 본다. 엘리트 클래스는 ‘좋은 학생’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배움을 이어가고, 높은 수준의 연구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 ‘연구자’를 발굴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엘리트 코스는 일반 석·박사 과정과 어떻게 다른가.

“엘리트 코스 구성원들은 온전히 연구에 매진할 수 있다. 일반적인 석·박사 과정은 교수가 학생을 사실상 연구 프로젝트의 보조 인력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엘리트 코스의 학생들은 직접 연구 주제를 고르고, 해당 연구를 2~3년씩 파고들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한다."

-튜링 클래스 학생들의 수준을 미국 최고 대학의 상위권 학생들과 비교하자면.

“나는 똑같은 과목을 미국과 중국에서 가르치면서 비교한 적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최상위권 학생들의 역량은 비슷하다. 차이는 절대적인 규모에서 나타난다. 미국 최고 대학에서 보이는 글로벌 수준의 인재가 전공당 2~3명이라면 베이징대는 100명 정도다. 중국의 과학계 엘리트층이 훨씬 두껍다는 얘기다.”

-중국이 기술 굴기에 성공한 배경은.

“정부의 역할이 컸다고 본다. 특히 정부의 다양한 노력 가운데 개인적으로 인재 교육을 강조하고 싶다. 첨단 기술의 발달을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인재 풀이 핵심이다. 중국 지도부는 이를 예견해 약 20년 전부터 엘리트 코스를 운영했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R&D 인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압도적인 ‘문제 해결 능력’

-엘리트 클래스 출신들의 진로는 어떻게 되나.

“중국의 엘리트 클래스 졸업생들은 엄청난 정책적 지원과 정치적 관심을 받는다. 실제로 정부는 엘리트 클래스 출신을 ‘국가의 전략적 인재’로 삼고 집중 관리한다. 진로는 빅테크, 글로벌 연구소, 대학 등 다양하다. 이들은 이미 세계 곳곳의 연구 조직에서 첨단 기술 개발을 이끌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틱톡의 모회사인 바이트댄스의 창업자,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플랫폼 타오바오와 테무의 모회사인 PDD의 최고경영자(CEO) 등이 엘리트 클래스 출신이다.

-엘리트층은 중국 경제·산업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미국이 특정 첨단 기술의 대(對)중국 수출을 제한했을 때, 중국이 ‘직접 만들면 된다’는 전략을 취할 수 있었던 것도 이를 뒷받침할 인재 풀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은 컴퓨터·반도체·전기차·로봇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고 있다. 작은 휴대전화용 배터리를 만들던 중국이 이제는 한 도시의 전력을 저장할 수 있는 배터리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첨단 산업의 중요성을 내다보고, 인재를 육성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픽=양진경

-당신은 중국과 미국의 이공계 엘리트를 모두 길러낸 경험이 있다. 두 나라 이공계 엘리트들을 비교해달라.

“중국 엘리트들의 가장 두드러지는 강점은 문제 해결 능력이다. 나에게 어떤 문제 해결 과제가 주어진다면 나는 미국 학생보다 중국 학생과 함께하고 싶을 것이다. 계산력·논리력·사고력 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연구 분야를 정해야 한다면 미국 학생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왜 그런가.

“중국 학생들은 눈앞에 있는 문제는 잘 해결하지만 틀을 벗어나는 사고에는 약하다. 중국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좋은 성적을 받고, 상위권 대학에 가야 한다는 사회의 압박 속에서 자란다. 이 과정에서 공부에 투자를 많이 하지만 스스로를 탐색할 시간이 부족해진다. 연구자로선 좋지 않은 배경이다. 중국 지도부 역시 여기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베이징대의 튜링 클래스, 칭화대의 야오 클래스 등 엘리트 코스가 자유롭고 창의적인 연구를 적극 지원하려 노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 학생들은 왜 새로운 문제를 찾아내는 창의적 사고가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보나.

“미국의 초등학교는 오후 3시면 수업이 끝난다. 맞벌이 부모님이 많아 학교가 끝나면 아이는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해야 한다.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탐색할 충분한 시간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오후 5시 반에 학교가 마치면 아이들은 쉴 새 없이 학원에 가거나 과외를 받는다. 좋은 성적에 대한 압박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런 성장 환경에서는 틀에 벗어난 사고가 어렵다. 노벨상 수상자들에게 어떻게 뛰어난 연구 성과를 냈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흥미가 생기는 일에 깊이 몰두했다’고 답한다. 누군가의 의지가 아니라 순수하게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에 매진한 것이다.”

◇막강한 정권이 뒷받침하는 교육

-언제부터 중국 교육계에 몸담게 됐나.

“약 30년 전부터 방학을 틈타 중국 대학에서 컴퓨터과학 강의를 했는데, 어쩌다 보니 권한이 계속 커지게 됐다. 가령 상하이자오퉁대에서 내 이름을 딴 ‘존 홉크로프트 컴퓨터과학 센터’를 설립할 당시 총장은 내게 완전한 지휘권을 줬다. 총장 고유 권한인 교수진의 승진 기준까지 내가 세웠을 정도다. 나는 발간한 논문 수와 확보한 연구비 등 불필요한 승진 기준을 없애, 교수와 학생들이 자유롭게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노력들이 결실을 맺으면서 베이징대에도 몸담게 됐다.”

-중국 지도부의 연락을 받은 적도 있나.

“중국 국무원 총리와도 수차례 대면 만남을 가지며 조언을 나눴다. 교육부 장관과 대학교 총장 등 교육계 인사들과도 왕래가 많았다. 중국 지도부는 교육 혁신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별도로 예산을 요청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중국의 강력한 정치 권력과 톱다운식 정치 시스템이 교육 혁신을 뒷받침하고 있는 셈이다.”

-이외에도 현재 맡고 있는 교육 사업이 있나.

“‘프로젝트 101’이라는 전국 단위 교육 혁신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높은 품질의 교육 콘텐츠를 만들고, 수업 방식을 개선하는 게 골자다. 처음에는 컴퓨터 과학 관련 핵심 과목을 골라, 과목당 10~15명의 교수진을 꾸려 디지털 교육 콘텐츠를 만들었다. 지금은 물리학·생명과학·통계학 등 20개 전공의 교육용 웹사이트까지 구축해 놓은 상태다.”

-수업 방식은 어떻게 바꾸나.

“대학 총장들은 학교의 국제 순위를 높이기 위해 교수들에게 논문을 내고 연구비를 확보하라고 요구한다. 교수들이 교육 자체에 투자할 여력이 부족한 환경이란 뜻이다. 그래서 나는 각 성장(省長)들에게 지역 내 대학 수업을 평가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각 대학에서 강의 20개를 무작위로 뽑고, 다른 대학 교수가 수업의 흥미로움, 학생들의 몰입도, 내용 이해도 등을 평가하게 하는 식이다.”

-어쩌다 이런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됐나.

“중국 지도부가 교육 혁신에 관한 나의 아이디어를 높이 평가하면서다. 지난 2024년에는 시진핑 주석 이름으로 ‘중국 국제 과학기술 협력상’을 받았다. 이 상은 기여도에 따라 국가 주석, 총리, 교육부 장관 등 직위 순의 상이 나오는데, 나는 가장 높은 등급의 상을 받은 셈이다. 당시 관계자들은 ‘내가 해온 일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에 기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프로젝트 101’의 향후 운영 계획은.

“교육부 장관은 ‘프로젝트 101’을 국제화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이에 우리는 중국어로 된 모든 콘텐츠를 영어로 옮기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의 최고 교수진이 만든 콘텐츠를 무료 개방하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 챗GPT에 대해 배우고 싶다면 우리 웹사이트를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미·중 기술 경쟁의 결말은?

-중국은 앞으로도 첨단 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낼까.

“중국은 이미 글로벌 수준의 연구자를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시스템을 완성했다. 중국은 미국·유럽과 맞먹는 R&D 인력을 보유하게 됐다. 특히 중국이 교육을 국가 경제 성장과 산업 구조를 좌우하는 ‘전략적 투자’로 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중국은 중앙집권식 정치 시스템을 토대로 장기적인 교육 혁신을 일관성있게 추진하고 있다. 물론 중국은 완벽한 나라가 아니다. 하지만 문제를 의식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무기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승자’는 누구라고 보나.

“승자를 가리는 건 의미가 없다. 중국과 미국이 서로 협력해야 한다. 양국은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대국인 만큼 협력했을 때의 이점이 훨씬 많다. 지금은 진영 싸움을 하며 편 가르기를 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피해는 커질 것이라고 본다. 과학의 발전은 불안정 속에서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과학의 발전은 보편성이 보장돼야 한다. 한 사람의 연구 결과를 누구나 접근할 수 있어야 발전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런 과학의 속성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중국의 엘리트 교육과 기술 굴기가 한국에 시사하는 바는.

“중국은 엘리트 코스를 통해 얻은 성과를 ‘프로젝트 101′을 앞세워 전국 1500개 대학으로 확산시키려 한다. 반면, 한국은 서울대를 비롯한 최상위권 대학 몇 곳에만 의지하려는 듯하다. 더구나 상대적으로 최상위권 학생들에게 역량을 충분히 펼칠 수 있는 환경도 마련돼 있지 않다. 교수를 채용할 때 논문 수보다 ‘교육자로서의 자질’을 따지고, 전국 단위의 교육 개선 사업을 진행하는 등 새로운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