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의균

2026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 올림픽이 6일 개막하는 가운데, 한국에서는 때아닌 차기 동계 아시안게임이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2029년 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던 사우디아라비아가 지난달 24일 돌연 개최를 연기한다고 선언했고, 그 과정에서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가 한국에 대체 개최 의사를 타진한 것이 알려지면서다.

당초 국토 대부분이 사막 기후인 사우디가 동계 아시안게임 유치에 나섰을 때부터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동계 스포츠는 눈과 얼음 위에서 펼쳐지는 경기인 만큼 눈이 내리는 나라에서 열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사우디 정부는 인공 눈으로 뒤덮인 스키 리조트를 짓겠다며 ‘오일 머니’를 무기 삼아 개최를 밀어붙였다. 하지만 인공 눈 제조 등을 위한 담수화 설비 등 각종 공사가 지연되며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사우디아라비아 타부크주에 건설될 계획인 레저 단지 '트로제나'의 스키 리조트 조감도. 여기서 2029 동계 아시안게임이 열릴 예정이었으나, 건설 지연 등으로 개최가 연기됐다. /네옴

동계 아시안게임 개최는 사우디의 국가 주도 사업인 ‘비전 2030′의 일환이었다. 사우디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석유 의존 산업 구조에서 벗어나 사회·문화적 전환을 통해 경제 다각화를 이룬다는 비전 2030을 국가 생존 전략으로 삼고 있는데, 스포츠 행사 개최와 스포츠계 투자는 이 전략의 핵심 프로젝트로 꼽힌다.

사우디가 수년 전부터 축구, 골프, 자동차 경주 포뮬러원(F1), 복싱, 프로레슬링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대규모 투자를 진행해온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특히 빈 살만은 자신이 이사회 의장을 겸하는 사우디 국부펀드(PIF)를 통해 스포츠계에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해왔다. 축구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사우디 리그로 이적시켰을 만큼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투자를 잇따라 성사시켰다. 동시에 인권 침해 등으로 악화된 국가 이미지를 스포츠를 통해 세탁하려는 ‘스포츠워싱(sportswashing)’을 목적으로 한 투자라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계 스포츠를 비롯해 최근 축구와 골프, 기초 종목, e스포츠에 이르기까지 계획이 변경되고 투자가 축소되는 등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는 공교롭게도 2022년 무렵부터 시작된 유가 하락세와 맞물린다. 스포츠를 앞세워 국가 이미지를 재편하려던 사우디의 ‘스포츠 입국(立國)’ 전략은 한계에 부딪힌 것일까. WEEKLY BIZ는 사우디의 대규모 스포츠 투자에 부는 변화의 배경과 전망에 대해 글로벌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정리해봤다.

◇사우디 프로축구에 무슨 일이

변화의 바람은 사우디 스포츠 투자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사우디 프로축구 리그(SPL)에서부터 불고 있다. 2023년 PIF는 사우디 4대 명문 구단(알 힐랄, 알 나스르, 알 이티하드, 알 아흘리)의 지분 75%를 인수했다. 이를 시작으로 그해 4대 구단은 호날두, 네이마르, 카림 벤제마 등 슈퍼스타들을 영입하며 이적료만 9억5700만달러를 쏟아부었고 선수들에겐 막대한 연봉을 약속하는 등 세계 축구 시장을 뒤흔들었다.

사우디 프로축구 리그(SPL) 알 나스르 소속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로이터 연합뉴스

하지만 해외 선수들의 영입과 이탈이 반복되고 리그의 글로벌 흥행과 상업적 수익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단 1년 만에 수익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하며 이적료 지출은 4억6450만달러로 전년 대비 반 토막 났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리그 차원에서 구단 지출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재정적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재정 규정을 승인했다. 이번 시즌부터는 구단 총수입의 80%를 지출 상한으로 정하고 이를 70%까지 낮출 계획이다. 오마르 무가르벨 SPL 최고경영자(CEO)는 “재정 건전성과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규정”이라고 밝혔다.

2034년 개최 예정인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에 사용할 경기장 건설도 일부 재검토 중이다. 블룸버그는 상업 도시 제다 인근에 계획된 경기장 건설이 무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난달 28일 보도했다.

◇골프부터 e스포츠까지 난항

사우디 스포츠 투자의 또 다른 상징인 LIV 골프에서도 위기에 따른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2022년 계약금만 1억달러를 들여 영입한 간판 스타 브룩스 켑카가 LIV를 떠나 지난달 PGA(미국프로골프)로 4년 만에 복귀했다. 켑카의 계약 종료 이후 패트릭 리드도 LIV에서 PGA로 둥지를 옮기면서 LIV가 2022년 출범 당시 가장 많은 계약금을 안겨준 6명 가운데 2명이 떠났다. 이는 잔류를 택한 선수들의 향후 이탈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반면 LIV를 대표할 새로운 스타 영입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출범 첫해 스타 선수들에게 안겨준 억달러 단위의 계약금 투자를 최근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PGA에 복귀한 브룩스 켑카가 지난달 28일 캘리포니아주 라호야에서 열린 2026 파머스 인슈어런스 오픈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에 출범 때부터 3일간 54홀로 유지했던 경기 방식을 올해부터는 4일간 72홀로 바꾼다. 54홀 체제에서는 선수들이 세계 랭킹 포인트를 받지 못해 4대 메이저 대회 출전이 어렵고, 이로 인해 선수 영입이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LIV라는 명칭은 로마 숫자 50(L)과 4(IV)를 합친 54홀을 상징하는 것으로 PGA와 차별성을 내세워 야심 차게 출범했지만, 이젠 대회 정체성까지 바꿔야 할 정도로 위기에 몰렸다.

PIF가 LIV 골프에 지난해 5월까지 투자한 금액은 45억8000만달러에 이른다. 하지만 흥행 실패로 중계권 등 부가 수익이 적어 수입은 상대적으로 미미해 누적 11억달러가 넘는 손실(미국 사업 제외)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애런 에팅어 캐나다 칼턴대 정치학과 교수는 WEEKLY BIZ에 “SPL은 국제적 관심을 지속적으로 끌지 못했고, LIV는 관중(시청자)을 확보하지 못하는 사이 선수들이 PGA로 복귀하는 흐름 속에서 힘을 잃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래픽=김성규

2019년부터 개최했던 국제 핸드볼 클럽 대항전 ‘IHF(국제핸드볼연맹) 슈퍼글로브’ 개최권도 2023년을 마지막으로 다른 나라에 넘겼다. 2029·2031 핸드볼 세계선수권 유치도 포기했다. 2024년 잉글랜드 구단 인수를 모색하며 투자를 시작하려던 럭비는 이후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상태다. 육상 쪽에서는 PIF 산하 스포츠 투자 기업 SURJ스포츠인베스트먼트가 지난해 3월 세계육상연맹과 상업적 권리를 관리할 새로운 법인 설립을 논의했으나 진척이 더딘 상황이다. e스포츠에서는 IOC(국제올림픽위원회)와 12년간 손잡고 2025년부터 올림픽 e스포츠 게임즈(OEG)를 개최하기로 했다가, 지난해 10월 상호 합의하에 계약을 파기했다.

◇유가 하락에 프로젝트 축소

이 같은 변화의 가장 큰 배경으로 최근 수년간 이어진 유가 하락과 이에 따른 사우디의 재정 압박이 지목된다. 런던 ICE 브렌트유 선물 근월물 기준으로 2022년 배럴당 120달러를 넘겼던 국제 유가는 하락세를 이어가며 지난달 60달러 선이 깨지기도 했다. 여전히 사우디 국가 재정의 상당 부분이 원유 판매 수익에서 나오는 구조인 만큼 유가 약세는 국가 주도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슈테펜 헤르토크 런던정경대(LSE) 교수는 WEEKLY BIZ에 “투자 변화는 저유가와 높은 재정 적자, PIF의 재원 제약 때문”이라고 했다. 중동 스포츠·정치 전문가인 제임스 도시 싱가포르 난양공대 선임연구원은 WEEKLY BIZ에 “사우디가 미래 지향적이고 공상과학 같은 거대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한 예산 균형을 맞추려면 유가가 배럴당 80~90달러는 돼야 한다”고 했다.

유가가 예상의 범주를 벗어나자, 사우디 정부가 석유 의존형 경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획한 ‘비전 2030′ 실행을 위한 ‘기가 프로젝트’도 축소되고 있다. 기가 프로젝트는 네옴시티 건설 등을 포함한 대규모 개발 사업이다. 중동 비즈니스 플랫폼 MEED에 따르면, 기가 프로젝트에 대한 지출은 2023년 약 351억달러로 정점을 찍은 후 지난해 130억달러까지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크리스티안 코츠 울리히센 라이스대 베이커연구소 박사(중동 연구)는 WEEKLY BIZ에 “최근 사우디 투자의 규모와 범위 변화는 유가 하락과 투자 유입 둔화로 인해 기가 프로젝트를 재평가하고 실행 가능한 사업을 가려내기 위한 투자 우선순위를 재조정하는 데서 비롯됐다”고 했다. 네옴을 비롯한 기가 프로젝트라는 큰 그림이 축소됐기에 그 일부인 스포츠 투자 구조가 축소·변경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란 얘기다.

◇“선택과 집중 나설 것”

사우디의 대규모 스포츠 투자는 이대로 저무는 걸까. 최근 유가 약세와 투자 전략 변화에도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대규모 투자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울리히센 박사는 “프로젝트의 변경과 축소는 스포츠뿐만 아니라 AI·물류·광업·관광 등 핵심 분야 전략적 구조조정의 일환”이라고 했다. 이전까지는 다양한 종목에 대한 무분별하고 막대한 투자가 이뤄졌다면, 이젠 재정 압박 속에 수익이 나거나 국제적 이목을 받을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한다는 ‘전략적 재조정’이 스포츠에도 적용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줄스 보이코프 퍼시픽대(오리건) 정치행정학과 교수는 WEEKLY BIZ에 “분명한 것은 (유가 약세에도) 사우디는 막대한 잉여 자본을 보유하고 있으며 스포츠는 여전히 중요 투자 대상”이라고 했다. 에팅어 교수는 “대규모 스포츠 투자에 나선 지 6~7년이 지났는데 성과가 나지 않은 투자들을 재검토하는 건 당연하다”며 “투자 규모를 적정 수준으로 조정할 것”이라고 했다. 덴마크의 스포츠정책 싱크탱크인 ‘플레이더게임’의 스타니스 엘스보르 총괄은 WEEKLY BIZ에 “투자를 정리·효율화하면서, 글로벌 스포츠의 거버넌스와 상업적 인프라 안에 사우디의 이해관계를 더 깊숙이 심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스포츠 통한 지역 패권 경쟁

사우디가 스포츠 투자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 배경엔 중동, 특히 걸프 지역 패권국으로서 입지를 확고히 하려는 지정학적 이유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도시 선임연구원은 “중동과 이슬람 세계의 주요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사우디는 아랍에미리트(UAE)를 지역의 비즈니스 허브에서 밀어내려 스포츠와 문화 외교 부문에 투자를 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르헨티나의 우승으로 성황리에 끝난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로이터 연합뉴스

특히 2010년대 단교를 했을 정도로 앙숙인 카타르가 2022 FIFA 월드컵을 비롯해 F1 그랑프리 등 대규모 행사를 성공적으로 먼저 치르며 중동 내 스포츠 허브 이미지를 가져간 게 사우디를 자극했다는 분석이다. 엘스보로 총괄은 “사우디의 전략은 스포츠 투자를 통해 지정학적 자본을 구축하려는 것”이라며 “역내 지배력을 확고히 하고, 영향력 있는 국제 스포츠 연맹 내부에서 파워를 확보하려 할 것”이라고 했다.

◇스포츠워싱은 이제 뒷전

사우디의 스포츠계를 향한 공격적 투자에는 늘 스포츠워싱이란 비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사우디 정부를 비판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와 대규모 처형, 여성 인권 운동가 투옥 등 인권 유린 국가라는 오명을 벗기 위한 투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우디가 국가 이미지 세탁 목적으로 투자할 필요성은 점점 사라지는 모양새다. 엘스보르 총괄은 “사우디는 카타르의 월드컵 개최에 대해 국제 스포츠계가 크게 반발하지 않았던 것을 지켜봤으며, 오히려 스포츠계는 (막대한 돈을 쓰는) 사우디를 계속해서 극진히 대접했다”고 했다. 도시 선임연구원은 “내 동료인 언론인 카슈끄지가 살해되는 등 지난 10년 동안 사우디의 인권 상황은 최악이었지만 모두가 스포츠 이벤트 앞에서는 이를 잊었다”며 “빈 살만은 스포츠워싱을 신경조차 쓰지 않으며, 강대국들도 사우디의 인권 상황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지난해 미 백악관에서 만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왼쪽)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UPI 연합뉴스

빈 살만에 우호적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미국과 관계가 보다 개선된 점도 사우디의 스포츠워싱 필요성을 줄였다. 보이코프 교수는 “트럼프와 사우디의 친밀한 관계, 양국 정부의 스포츠에 대한 관심과 인권 문제에 대한 무관심은 스포츠워싱의 정치적 효용을 약화시켰다”고 했다. 스포츠워싱의 필요성이 줄어든 것은 투자 방향에도 변화를 줄 전망이다. 보이코프 교수는 “2034년 월드컵 유치 성공은 엄청난 스포츠워싱 승리였고, 그 덕분에 다른 작은 이벤트 개최 노력들은 덜 필요해졌다”고 했다.

◇미래는?

사우디 정부가 기가 프로젝트 내에서 지출 우선순위를 재조정하고 수익 창출에 신경 쓰기 시작하면서 스포츠 투자는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대형 이벤트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스포츠 측면에선 2034 월드컵, 문화 측면에선 2030 엑스포에 자본과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울리히센 박사는 “스포츠 투자 자금이 국내 기반이 약한 다양한 종목에 분산되기보다는 월드컵 관련 프로젝트로 점점 더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헤르토크 교수는 “월드컵처럼 취소할 수 없는 가장 주목받는 대규모 프로젝트에만 대외적인 행사를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며 “예산은 삭감되고 중요도가 낮은 프로젝트는 취소될 것”이라고 했다. 에팅어 교수도 “규모가 크고 화제성이 높은 스포츠 프로젝트들에 계속 투자하는 것이 현실적이며 사우디는 월드컵을 국가를 선전하는 ‘번쩍이는 광고판’으로 만들기 위해 막대한 돈을 쓸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투자해왔던 주요 종목에 대한 투자는 어떻게 될까. 에팅어 교수는 “사우디는 서구와 경쟁하기 위한 리그를 만들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기존 스포츠 위계질서에 도전하기보단 그 안에서 협력하며 영향력 확보에 힘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LIV 골프가 형식을 전통적 72홀로 변경하고 PGA와 통합을 추진하는 것은 이 같은 맥락이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무가르벨 SPL CEO는 “SPL은 유명 선수 의존에서 벗어나 전성기의 선수들을 영입하여 균형을 맞추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밝히며, 21세 이하 선수 의무 출전 제도 도입 등 자국 인재 육성을 위해 구조적 변화를 시행했다. 스타 선수들을 대거 영입해 유럽 빅리그와 경쟁하기보단 내실을 다지는 쪽으로 무게 추를 옮겨가는 셈이다. 2010년대 중국이 시진핑 국가주석 주도의 ‘축구굴기(蹴球崛起)’ 투자로 중국슈퍼리그가 단기간 세계의 주목을 받다가 정부의 관심이 사라지자 제자리로 돌아간 것을 반면교사 삼는 것이다.

동시에 사우디는 수익률과 인기를 따져 특정 종목에 집중해 국제적 영향력을 고도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엘스보르 총괄은 “연맹 내 영향력 확대, 중계권 통제, 스포츠 거버넌스 설계 같은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라며 “사우디의 목표는 단지 게임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의 규칙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