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의균/gemini

인류가 반세기 만에 다시 달에 사람을 보낸다. 미국은 1972년 아폴로 17호 이래 중단된 유인(有人) 달 탐사를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으로 재개했다. 이르면 다음 달 6일 플로리다주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아르테미스 2호 임무로 우주비행사 4명을 태운 오리온 우주선이 스페이스론치시스템(SLS) 발사체에 실려 달로 발사된다. 앞서 2022년 아르테미스 1호 임무는 마네킹을 태운 오리온 우주선이 달 궤도를 도는 무인(無人) 시험 비행으로 진행됐다.

전문가들은 아르테미스 달 탐사를 계기로 우주 헬스케어 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과거 아폴로 프로그램은 1회성 달 탐사로 진행됐지만, 아르테미스는 장기적으로 달에 유인 기지를 세워 화성 같은 심우주(深宇宙) 탐사를 위한 전진 기지로 삼는다는 계획이기 때문이다. 우주인이 달에서 살려면 식품 자체 조달이 가능해야 하며,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원격 진단과 치료, 로봇 수술 기술도 발전해야 한다.

특히 우주 제약 산업도 발전할 수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이미 지구 상공 400㎞ 궤도를 도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고가의 바이오 의약품을 고순도로 제조하는 데 잇따라 성공했다. 또 우주에서 인체가 겪는 신체 변화를 연구하면 난치병을 치료하고 노화를 억제할 신약도 개발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2035년쯤 우주 헬스케어 산업이 100억~200억달러 규모의 시장을 이룰 것이라고 전망한다. 우주 기지와 생명 유지 인프라까지 따지면 수천억 달러 경제 효과까지 점쳐진다.

◇우주정거장 25년 성과 대부분이 헬스케어

우주가 신약의 보고(寶庫)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국제우주정거장이 입증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지난해 11월 국제우주정거장 25주년을 맞아 4000건 이상의 과학 실험 중 최고 성과 25가지를 선정해 발표했다. 그중 10가지가 헬스케어 분야였다. 혹독한 우주 환경에서 우주인이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기 때문이다.

그래픽=이진영

우주에서는 인체가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지구에서 서 있으면 중력에 의해 피가 아래로 내려가지만, 중력이 거의 사라진 우주에서는 몸 어느 곳이나 균등하게 피가 흐른다. 그만큼 지구보다 머리에 피가 더 많이 가 우주정거장의 우주인들은 늘 얼굴이 부어 있다.

동시에 뼈에서 칼슘도 한 달 평균 1% 줄어든다. 근육에서는 단백질이 빠져나간다. 러시아 우주정거장 미르에 탑승했던 우주인들은 1년 뒤 근육 단백질이 약 20%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우주에서 오래 있으면 점점 머리는 부풀고 팔다리는 가는 영화 속 우주인의 모습으로 변해간다는 말이다.

NASA는 우주인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다양한 원격 진단과 치료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우주인이 먹을 채소 우주 재배도 50종으로 늘었으며, 물을 99.8%까지 재활용하는 생명 유지 시스템도 발전했다. 특히 우주에서 겪는 신체 변화의 원인을 규명하는 연구도 발전했다. 우주에서 유전물질인 DNA 해독도 성공했으며, 인체의 모든 세포로 자라는 원시세포인 줄기세포를 키우고 이를 미니 장기인 오가노이드로 만드는 연구도 발전했다.

가장 유명한 우주 헬스케어 연구는 이른바 쌍둥이 실험이다. NASA는 2015년부터 1년간 국제우주정거장에 머문 우주비행사 스콧 켈리와 같은 기간 지구에 있었던 일란성 쌍둥이 마크 켈리를 비교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예상대로 스콧은 우주에서 근육과 뼈가 약해지고 유전자도 일부 변했지만, 지구 귀환 뒤에는 대부분 회복됐다.

하지만 염색체 말단에 있는 텔로미어가 짧아진 것은 회복되지 않았다. 염색체는 유전 정보를 담은 DNA들이 실패 격인 단백질에 감겨 있는 형태이다. 텔로미어는 줄넘기의 손잡이처럼 염색체 끝에서 손상을 막는 물질로, 노화 과정에서 짧아진다. 우주 환경이 노화를 촉진했다는 뜻이다.

◇우주에서 개발한 기술, 지구인 생명 살려

우주에서 진행한 헬스케어 연구는 지구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큰 도움을 줬다. 국제우주정거장에는 캐나다가 개발한 로봇 팔인 캐나다암이 있다. 캐나다 캘거리대 연구진은 이 로봇 기술로 자기공명영상(MRI)과 연동되는 뇌 수술 로봇을 개발해 2008년 첫 수술에 성공했다.

제약 산업도 우주 연구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바이오 의약품의 치료제 성분인 단백질은 중력이 없으면 더 균일하게 합성된다. NASA에 따르면 2021년 현재 국제우주졍거장에서 500건 이상 단백질 결정 성장 실험이 진행됐다. 이는 우주정거장에서 수행된 실험 중 가장 큰 규모이다.

성과도 나타났다. 미국 제약사 머크(MSD)는 지난 2019년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 미세 중력’에 “우주정거장에서 면역항암제인 키트루다의 약효 단백질을 지구보다 더 균일하고 점도가 낮게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중력이 거의 없는 우주에서는 침전이나 대류가 크게 줄어 단백질 결정이 지구보다 균일하게 만들어진다.

만약 우주에서처럼 단백질 결정을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다면 지금처럼 병원에서 정맥 주사를 하지 않고 간단하게 피하 근육 주사도 가능하다. 또 약품 정제는 물론 보관도 쉬워져 제조, 유통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단백질 입자가 균일하게 용액 속에 고루 퍼진다면 냉장 보관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개발도상국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머크는 우주정거장에서 진행한 연구를 바탕으로 키트루다 피하 주사제를 개발해 지난해 9월 미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머크는 국내 업체인 알테오젠의 효소 기술을 이용해 우주에서 찾은 단백질 합성법을 구현했다. 키트루다는 2023년 250억달러 매출을 기록하며 세계 1위 의약품이 됐다. 약물 투여가 간편한 피하 주사제까지 나오면서 올해는 350억달러까지 매출이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도 우주정거장에서 면역항암제인 옵디보의 단백질 결정을 성장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그 성과를 기반으로 역시 피하 주사 제형을 개발해 2024년 FDA 승인을 받았다. 비만 치료제 마운자로로 유명한 일라이 릴리도 2019년부터 국제우주정거장에 자체 실험 모듈을 설치하고 알츠하이머 치매의 원인으로 알려진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의 응집 현상을 연구하고 있다.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 단백질도 우주에서 고순도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노화 원인 찾아 수명 연장할 수도

우주 헬스케어는 지구에서 개발한 바이오 의약품의 생산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난치병과 수명을 연장할 신약도 개발할 것으로 기대된다. AI(인공지능)와 세포 연구가 결합하면서 우주에서 인체가 겪는 신체 변화를 유전자 차원에서 규명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지난 2일 사우디아라비아 파이잘국왕병원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장기간 우주여행에서 나타나는 유전자 변화를 단일 세포에서 모두 찾아내고 건강 문제를 해결할 치료 방안도 제안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혈액 줄기세포를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배양하면서 유전자가 발현되는 과정을 AI로 추적했다. 그 결과 근육과 심장, 신경계를 손상하는 유전자 변화가 포착됐다. 수면과 생체 리듬과 관련된 변화도 나타났다. 연구진은 AI를 통해 우주인이 겪을 수면 장애를 치료할 물질도 제시했다.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연구진도 지난해 ‘셀 스템 셀’에 발표한 논문에서 우주정거장에서 줄기세포를 배양하면서 AI로 분석한 결과 노화가 촉진되는 현상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진은 앞서 NASA의 쌍둥이 실험에도 참여했다. 줄기세포는 우주에서 에너지를 더 많이 소모하고 휴식과 회복 능력을 상실했다. 앞서 우주에 1년 머문 스콧 켈리처럼 줄기세포에서도 염색체를 보호하는 텔로미어가 크게 줄었다.

특히 지구에서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던 ‘다크(암흑) 게놈’이 갑자기 활발하게 작동했다. 사람 DNA의 55%는 수천 년 전에 바이러스가 남긴 부분으로 단백질을 합성하는 데 쓰이지 않는다. 의미가 없는 DNA라는 뜻이다. 우주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 다크 게놈이 작동하면서 노화를 촉진했다. 연구진은 이 결과가 암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암 환자의 줄기세포는 우주 환경에서 나타난 것과 비슷한 손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줄기세포가 우주에서 겪은 급속한 노화를 해결하면 수명을 연장하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

난치병을 극복할 우주 신약 성과도 나왔다.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는 쓰쿠바대가 개발한 듀센 근이영양증 치료제 단백질을 우주정거장에서 합성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이 병에 걸리면 근육세포를 구성하는 핵심 단백질이 합성되지 않는다. 전 세계 환자 수는 30만명 정도인데 대부분 20대에 심장 근육 기능이 멈춰 사망한다. 지난해 임상 3상 시험 최종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해 상용화되지는 못했지만, 우주 연구가 난치병 치료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였다.

◇국내서도 우주 연구와 투자 늘어나

국내에서는 제약사인 보령(옛 보령제약)이 우주 제약에 도전하고 있다. 미국 액시엄 스페이스는 올해부터 국제우주정거장을 대체할 민간 우주정거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보령은 액시엄에 투자해 민간 우주정거장의 실험 공간을 확보했다.

보령은 2022년부터 우주 헬스케어 아이디어 경진대회인 ‘휴먼 인 스페이스(Humans In Space, HIS) 챌린지’를 개최했다. 2023년 이 대회에서 수상한 미국 바이오 기업 람다비전은 보령에서 투자받아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실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람다비전은 우주에서 단백질을 200층 쌓아 인공 망막을 개발했다. 망막색소변성증, 황반변성 등 유전적 망막 질환으로 실명한 환자들의 시력 회복이 목표로 올해부터 임상시험에 들어갈 계획이다.

지난해 HIS 대회에서 우승한 박찬흠 한림대춘천성심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줄기세포 실험 장비인 바이오캐비닛(BioCabinet)을 개발해 지난해 11월 누리호 4차 발사 때 우주로 보냈다. 바이오캐비닛은 차세대 중형 위성 3호에 탑재된 일종의 초소형 실험실이다. 연구진은 우주에서 줄기세포로 심장 오가노이드를 만들고 심혈관 질환 치료법을 찾는다는 계획이다. 2027년에는 우주에서 악성 뇌종양인 교모세포종 세포를 배양하고 항암제를 투여하는 초소형 위성(큐브샛) 바이오렉스(BioRexs)를 발사할 계획이다.

◇미국의 R&D 투자 축소가 걸림돌

산업계는 우주 헬스케어 산업이 10년 뒤 수십조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과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맥킨지는 2024년 보고서에서 우주 경제 규모가 2035년까지 1조800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중 헬스케어 분야는 수십억 달러의 잠재력이 있다고 내다봤다. 최근 다른 조사 기관들은 잇따라 우주 헬스케어 시장 규모를 100억달러 이상으로 예상했다.

리서치 앤드 마켓은 지난 19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우주 기반 건강 모니터링 시장이 2025년 27억달러에서 2030년까지 연평균 12.9%씩 성장해 49억5000만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맥킨지는 2023년에 우주 제조가 제약과 식품, 반도체 등에서 2030년에 100억달러 이상 시장을 이룰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기관이 예측한 우주 응급 의료, 우주 제조 등 분야별 시장 예측 규모를 합치면 2035년쯤 수백억 달러에 이른다.

물론 걸림돌도 있다. 미국은 2026년 NASA 예산을 61억달러 삭감했다. 국제우주정거장 예산은 5억800만달러가 날아갔다. 업계는 예산 삭감이 우주 연구·개발(R&D)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람다비전의 와그너 대표는 “정부 지원이 삭감될 때 대가를 치르는 것은 연구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환자들”이라며 “지금은 우주 기반 연구를 축소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제우주정거장이 2030년 퇴역하는 것도 문제다. 우주 연구 기반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민간 우주정거장이 빨리 만들어지면 공백을 메울 수 있다고 기대한다. 미국 우주 스타트업 바스트(Vast)는 우주 발사체 업체인 스페이스X와 협력해 상업용 우주정거장 헤이븐-1(Haven-1)을 개발하고 있다. 올해 2분기부터 스페이스X의 팰컨 9 로켓으로 정거장을 구성할 모듈을 발사할 계획이다. 액시엄 스페이스는 올해 말 민간 우주정거장의 첫 모듈을 발사하고 2030년대가 되기 전에 모듈 4개를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국제우주정거장에 실험 장치를 보내고 다시 지구로 가져오는 데 건당 750만달러가 들지만 민간 우주정거장이나 우주선, 큐브샛 연구가 활성화되면 비용이 크게 떨어져 우주 헬스케어 연구와 제조가 더 활성화될 수 있다. 미국 우주 기업인 바르다 스페이스 인더스트리는 지름 90㎝인 우주 약물 제조 우주선으로 우주에서 항바이러스제를 합성하고 지구로 귀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바르다는 미국 전자결제 업체인 페이팔을 창업한 피터 틸이 투자한 업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