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정복자들이 잉카 제국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놀란 것은 어마어마한 금의 양뿐 아니라 잉카인들이 금을 대하는 태도였다고 합니다. 태양신을 숭배하던 잉카인들에게 금은 ‘태양의 땀’으로 여겨졌습니다. 금은 개인이 소유해 쌓아두는 재산이 아니라, 제국의 질서와 신앙을 상징하는 신성한 존재였습니다. 궁전과 사원을 장식하는 금은 권력 과시가 아니라 신과의 연결 고리였습니다. 그러나 유럽인에게 금은 전혀 달랐습니다. 금은 녹여 나누고, 저장하며, 군대와 제국을 키우는 수단이었습니다. 같은 금이 문명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녔던 셈입니다.
21세기 들어 금은 다시 새로운 의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금 상장지수펀드(ETF), 금 스테이블코인처럼 금을 금융 시스템 안으로 끌어들이는 장치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여기에 미국이 제재와 관세를 통해 달러를 무기화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각국 중앙은행은 달러 보유를 줄이고 금을 사들이고 있습니다. 달러 중심 질서에 균열이 생기자, 가장 오래된 안전 자산이 다시 호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잉카의 금이 신앙의 상징이었다면, 지금의 금은 불확실한 세계에서 신뢰를 붙잡으려는 선택에 가깝습니다. 여기에 금 코인 등 새로운 수요까지 더해지며 금 가격도 요동치고 있습니다. 반짝이는 금이 다시 한번 시대의 중심에 설 수 있을지, 주목해야 할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