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업의 가치가 지나치게 고평가된 상태는 아닐까 걱정이라고요? 진정한 위기는 AI 혁신에 뒤처지는 것이라고 봅니다. AI는 이미 다양한 산업에서 거대한 변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AI 거품이 터지는 것보다 AI 붐에 올라타지 못하는 게 더 큰 리스크라고 생각합니다.”
굴리는 자산(AUM)만 2670억유로(약 454조원)인 글로벌 ‘투자 큰손’이자, 세계 2대 사모펀드인 EQT를 이끄는 수장의 말엔 거침이 없었다. 최근 글로벌 증시에서는 AI 관련 기업이 과도하게 고평가됐다는 ‘AI 버블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페르 프란젠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0일 오전 WEEKLY BIZ와 만나 눈에 보이지 않는 거품보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AI 혁신의 가치에 더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스웨덴 발렌베리가(家)에 뿌리를 둔 EQT는 세계 5대 사모펀드 중 유일한 비(非)미국계인 데다 아시아에서 운용 자본이 가장 많은 큰손 투자자다. 사모펀드는 단순히 기업의 주식을 보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수·합병(M&A) 등 경영 활동에 직접 뛰어들어 기업의 체질까지 바꿔내는 ‘액티브(active) 머니’이자 ‘스마트(smart) 머니’로 불린다. WEEKLY BIZ는 세계에서 가장 공격적이고 영리한 이 투자사와 함께 최근 글로벌 시장의 위기와 기회를 살펴봤다.
◇“버블? AI 붐에 뒤처질 걱정부터”
-최근 월가를 중심으로 번지는 ‘AI 버블론’에 대한 생각은.
“역사적으로 AI와 같은 초대형 기술 혁신이 일어날 때는 관련 기업의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대비 주가 수준)이 과도하게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투기로 인해 가격 거품이 발생하는 것이다.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다. 우려가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기술 혁신 끝에는 반드시 명확한 승자와 패자가 나뉜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승자와 패자는 어떻게 갈린다는 뜻인가.
“AI는 우리 세대가 겪을 가장 핵심적인 메가 트렌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EQT는 AI 버블이 붕괴되는 것보다 AI라는 메가 트렌드에서 소외되는 상황이 훨씬 큰 리스크라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EQT의 모든 신규 투자 심사 회의에서는 반드시 ‘이 기업은 AI로 어떤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
-EQT는 AI 산업에 어떤 형태로 투자하고 있나.
“우리는 벤처·성장 단계에선 ‘토종 AI 기업’ 위주로 투자하고, 인프라 부문에서는 데이터센터 투자를 통해 AI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AI 붐 속에 생겨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곳곳에 파이프라인을 구축한 셈이다. EQT는 벤처 투자 경험도 풍부하기 때문에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는 데 있어 경쟁사보다 경쟁 우위에 있기도 하다.”
◇‘메가 트렌드’에 올라타라
-EQT의 투자 포트폴리오 구성은.
“EQT는 약 3000억달러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는 글로벌 사모펀드다. 우리는 사모 투자 중에서도 바이아웃(buy-out·기업의 경영권을 확보한 뒤, 기업 가치를 높여 매각하는 투자 방식) 비즈니스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다른 사모펀드와 달리 벤처부터 성장 기업까지 함께 키우는 전략을 갖고 있다는 차별점이 있다. 성장성이 높은 스타트업부터 장기 수익을 창출하는 안정적인 자산까지 폭넓게 투자하며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를 갖춘 셈이다.”
-주로 어떤 인프라에 집중하나.
“최근에는 데이터센터에 많이 투자하고 있다. 현재 우리는 글로벌 데이터센터 개발 업체인 ‘에지코넥스(EdgeConneX)’를 통해 전 세계 50여 국가에서 80여 개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또 데이터센터를 돌리는 데 필수적인 에너지 전환 기술 관련 투자 비중도 적잖다. 대규모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막대한 전력을 감당할 에너지 생산 기술과 신재생에너지 등에 투자하는 것이다.”
-에너지 전환에 드라이브를 거는 이유는.
“EQT는 섹터 기반의 체계적인 투자를 추구한다. 우리는 AI·디지털화, 에너지 전환, 인구 구조 변화 등이 앞으로 세상을 바꿔 나갈 메가 트렌드라고 보고 있고, 이를 겨냥한 투자를 진행 중이다. 가령 첨단 산업의 발달로 에너지 소비는 급증하고, 고령화라는 인구 구조 변화로 건강 관리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다. 이런 메가 트렌드에 발맞춰 에너지 전환과 헬스케어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불확실성 시대, 리스크부터 줄여야
-미·중 무역 전쟁, 러·우 전쟁 등 거세진 지정학적 갈등이 사업에 영향을 주지 않았나.
“최근 벌어진 글로벌 무역 질서 변화와 정책적 불확실성이 리스크로 떠오른 건 맞다. 그러나 EQT는 특정 국가의 정책이나 국경을 크게 타지 않는 내수 중심 비즈니스에 주로 투자해 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충격이 적었다. EQT는 헬스케어와 IT(정보기술), 그리고 IT 기반 서비스 기업들 가운데 자국 시장을 중심으로 사업하는 회사들에 주로 투자해 왔다.”
-대외 리스크 노출을 줄이기 위한 전략인가.
“그렇다. 투자 관점에서 오늘날처럼 불확실성이 큰 환경에서는 포트폴리오 다각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제로 EQT는 미국의 정책적 불확실성이 커지고, 기업들의 밸류에이션이 지나치게 높아진 이후로 미국 밖 시장에 더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더구나 EQT는 미국에 본적을 두지 않는 세계 최대 사모펀드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를 조정해 글로벌 다변화를 이룰 수 있도록 돕는 데 유리한 측면이 있다.”
-불확실성이 큰 시대, 투자 전략은 어떻게 세워야 할까.
“우리는 투자를 결정할 때, 먼저 통제할 수 있는 요소와 통제 불가능한 요인을 명확히 구분한다. 물론 위험을 감수할 만큼 가치 창출 가능성이 큰지 따져봐야겠지만, (글로벌 경기의 불확실성이 큰) 현재 상황에선 최대한 리스크를 줄이는 게 현명하다고 본다. 특히 무역 정책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국내·지역 기반 기업일수록 투자 신뢰도는 더욱 높아진다. 지금처럼 지정학적 환경이 불안정한 때에는 변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예측 가능성이 높은 투자처를 찾는 것을 추천한다.”
-안전성만 추구한다는 뜻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의 목표는 ‘알파의 원천(sources of alpha)’을 찾는 것이다. (알파의 원천이란 투자자가 시장 수익률을 능가하는 추가 수익을 창출하는 데 기여하는 요인이나 전략을 말한다.) 자국에서 강한 존재감을 갖고, 성장성이 높아 시장 지배력을 확보할 여지가 있는 ‘알파 기업(시장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해당 분야를 선도하는 기업)’을 선호한다는 얘기다. EQT는 기업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가치 창출 역량이 뛰어나기 때문에 이런 기업들과 시너지가 잘 맞기도 하다.”
-가상 화폐나 양자 기술과 같은 초기 기술에는 관심이 없나.
“상대적으로 중요도를 낮게 두고 있다. 가상 화폐와 관련해선 과거에 디지털 결제 관련 인프라에 투자한 사례가 있으며, 기업을 사들이는 바이아웃 방식이 아니라, 초기 단계나 기술 기반 투자를 통해 접근했다. EQT는 해당 기술이나 산업이 어느 정도 성숙했을 때 기업을 사들인 뒤, 가치를 높여 매각하는 바이아웃 전략을 선호한다. 양자 기술도 마찬가지다. 물론 지금까지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지만, 우리는 늘 새로운 테마와 기회를 찾고 있어 나중에는 투자 기회가 생길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아시아에 눈독 들이는 이유
-아시아 시장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아시아는 성장성과 다양성이 공존하는 시장이다. 미국은 소수의 기업이 주가지수를 좌우하며 밸류에이션 집중도가 과도한 수준이다. 반대로 아시아는 역동성이 큰 인도에서부터 안정적인 일본까지 시장 다양성이 있다. 이런 다양성이 투자의 매력 포인트다.”
-인도 시장은 어떻게 평가하나.
“인도는 EQT가 중시하는 ‘인구 구조 변화’라는 메가 트렌드가 활발하게 나타나는 곳이다. 인구 증가로 젊은 노동력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고, 중산층의 성장도 두드러진다. 덩달아 자본시장도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인구 구조 변화라는 메가 트렌드가 뒷받침하는 매력적인 시장이라는 얘기다.”
-인도가 새로운 AI 허브가 될 수 있다는 전망에 동의하나.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인도는 IT 분야에서 뛰어난 인재 풀을 갖추고 있고, (인도의 정부와 기업들이) AI 도입에 적극적이다. 내년이면 EQT가 인도에 진출한 지 20주년이 되고, 그동안 인도 역사상 최대 규모의 경영권 인수 사례를 남기기도 했다. 일부 지분만 사들이는 미국계 사모펀드들과 달리 EQT는 인도의 가능성을 상당히 높이 평가해 왔다.”
-최근 중국이 첨단 기술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중국에는 어떻게 접근하고 있나.
“EQT는 아시아에서 활동하는 최대 사모펀드인 만큼 지역 영향력이 큰 중국은 우리가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시장이다. 중국의 테크 기업들이 어떤 기술에 주력하고 있는지, 시장에서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등을 파악해야 하는 일이 중요하다. 하지만 중국은 매우 역동적이면서 동시에 복잡한 시장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은 초기 단계 투자에서 빨리 성과를 낼 수 있는 기회들을 더 많이 보고 있다.”
-중국 투자에 신중한 이유는.
“중국은 경영권 인수 장벽이 상당히 높다. 또 규제 환경, 지배 구조, 정보 접근성 측면 등에서 사업상 어려움이 적잖다. 경영권 확보에 성공한다고 해도 적극적으로 경영에 개입하고, 기업 가치를 높이는 게 쉽지 않은 구조다.”
-아시아 시장에서 EQT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EQT는 소프트웨어에서부터 제조업까지 다양한 산업에서 쌓아온 운영 역량을 갖고 있다. 단순히 AI·디지털 전환 전략뿐 아니라 조직 운영, 현금 흐름 관리 등 다양한 설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 기업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레버(Lever·지렛대)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韓, 기술력과 인재 뛰어나
-한국 방문은 처음인가.
“EQT는 1998년부터 한국에서 사업을 해왔다. (개인적으로) 앞서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지만 (지난 5월) EQT의 CEO 취임 이후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모펀드 업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지역으로 평가받는 아시아에서도 한국은 전략적인 요충지다. 게다가 한국에는 EQT가 가장 신뢰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고객이 많아 특별한 의미가 있다. EQT의 최대 주주는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존경받는 가문 중 하나인 스웨덴의 발렌베리(Wallenberg) 가문이다. 발렌베리 가문에 뿌리를 둔 기업들은 오랫동안 한국 기업들과 인연을 맺어 왔다. 오랜 역사가 있는 관계라 신뢰도 깊다.”
-한국 투자 사례는.
“최근에 주목할 만한 투자 사례로는 한국의 전사적 자원 관리(ERP)·소프트웨어 기업 ‘더존비즈온’, AI 기반 HR 플랫폼 ‘리멤버’, 폐기물 처리 기업 ‘리에나(구 KJ환경)’에 대한 투자가 있다. 세 기업 모두 EQT가 눈여겨보는 디지털화, 에너지 전환 등의 메가 트렌드와 맞닿아 있는 데다 미래 성장 기회가 많다고 보고 있다.”
-한국 투자 전략은 무엇인가.
“EQT는 단기 실적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아우르는 장기적 비전을 갖고 한국에 투자하고 있다. 기업과 미래를 그리며, 가치를 더해 나가는 과정을 함께하는 것이다. 특히 EQT는 ‘가족 기업적 성향’이 높은 한국의 기업 문화와 시너지가 좋다고 본다. 한국은 헬스케어 등 EQT가 관심 갖는 분야의 기술력과 인재 경쟁력이 탁월하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 투자를 적극적으로 늘려나갈 생각이다.”
-한국에서 눈여겨보고 있는 산업 분야가 있나.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역동적인 M&A 시장 중 하나다. 더구나 글로벌 수준의 인재를 보유하고 있어 사모펀드 입장에선 상당히 매력적인 시장이다. EQT는 여러 산업군 중에서 한국의 헬스케어와 테크 서비스 등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최근 한국에선 기업 분할, 자산 매각, 경영권 승계 등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만큼 앞으로 투자 기회가 많을 것이라고 본다.”
-2026년 경제는 어떻게 내다보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마법의 수정구’가 있으면 정말 좋겠다. 기본적으로 내년에도 높은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글로벌 환경을 지배할 것으로 본다. 이로 인해 미국과 유럽·아시아 등 주요 시장에서 (밸류에이션 격차 등)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 다만 이런 거래 환경은 점진적으로 개선될 여지가 있다. EQT는 각 지역에 탄탄한 현지 네트워크를 갖고 있기 때문에 기회가 생기는 곳에서 기회를 포착해 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