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의균

“빨리 엉덩이를 차서 해고해버리고 싶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9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투자 포럼에서 한 이 말의 표적은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이다. 지난 1월 ‘2기’ 취임 후 파월에 대한 공격 수위를 지속적으로 높여온 트럼프 정부가 차기 의장 선임 작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지난 25일 파월의 후임을 결정하기 위한 면접 절차가 진행 중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크리스마스 전에 신임 의장을 발표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파월이 이끄는 연준은 “금리를 내리라”는 트럼프의 반복되는 압박을 견뎌내면서 올해 열린 일곱 차례의 기준금리 결정 회의에서 금리를 두 차례 0.25%포인트씩 인하하는 데 그쳤다. 시장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금리 인하 및 성장 촉진 기조에 발을 맞출 인사가 차기 의장에 선임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하고 있다. 연준 의장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의회(상원)가 인준한 후 공식 임명된다. 의장의 임기는 4년이고 연임 가능하다. 파월의 이번 임기는 내년 5월 끝난다.

◇선두 주자는 해싯, 추격하는 월러

베선트가 차기 연준 의장으로 거론한 후보는 총 다섯 명이다.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 미셸 보먼 연준 이사,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릭 리더 블랙록 CIO(최고투자책임자) 등이다. 경제 전문가들 및 베팅 사이트 등이 현재 차기 의장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거론하는 사람은 해싯 위원장이다. 대형 글로벌 베팅 사이트 ‘폴리마켓’에선 26일 기준 해싯 위원장의 선임을 예상하는 확률이 53%로 가장 높다. 한때 30%대까지 내려갔다가 블룸버그가 25일 “해싯이 확실한 선두로 치고 나갔다”고 정부 내부 인사들을 인용해 보도한 후 확률이 급등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트럼프 충성파’라는 점이 해싯의 특장점이다. 트럼프 1기 때인 2017~2019년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을 지낸 데 이어 2기에서도 ‘경제 조타수’로 발탁된 점이 이를 증명한다. NEC 위원장은 미국의 중요한 경제 정책을 대통령 가까이에서 조언하는 핵심 인사다.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교수, 연준 경제학자까지 거치며 학계·연준·정부 내 경력을 착실히 쌓아왔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해싯은 기준금리나 연준의 통화정책에 대해선 말을 아껴왔다. 하지만 지난 25일 폭스뉴스에 나와 “대통령이 연준 의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하면 당연히 수락한다” “내가 연준 의장이라면 당장 기준금리를 내릴 것”이라고 밝히는 등 ‘몸풀기’를 하는 듯한 발언을 최근 잇달아 내놓고 있다.

월러 연준 이사는 최근 들어 의장 지명 확률이 급등한 후보다. 13일 폴리마켓에서 지명 확률이 12%까지 내려갔다가 지금은 22%까지 상승했다. 베선트는 현직 연준 이사 중엔 월러와 보먼 두 명을 후보라고 언급했는데, 보먼의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월러의 ‘현직’으로서의 장점이 부각된다는 평가다. 보먼은 해싯·월러와 달리 트럼프가 직접 언급한 적이 없는 데다 연준에서 그가 추진해온 은행 감독 완화 등이 트럼프의 주력 관심사와 다소 벗어나 있다는 점이 드러나며 폴리마켓 확률이 1%로 고꾸라졌다.

반면 월러는 올해 두 차례 기준금리 인하를 주도한 데 이어 지난 17일 연설에서도 고용 시장 약화를 근거로 “12월에 추가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뜻을 확실히 밝히며 트럼프와 코드를 맞추는 모습이다. 최근 폭스 비즈니스와 인터뷰에서 “베선트와 만나 연준 의장직을 논의했다”고 발언한 것도 그의 지명 확률을 높인 변수다.

◇억만장자 사위 워시, ‘큰손’ 리더도 주목

워시 전 연준 이사는 1970년생으로 후보군 중 가장 젊다. 2006~2011년 연준 이사직을 지낼 당시엔 35세로 연준 역사상 최연소 이사 기록을 세웠다. 지금은 후버연구소 연구원 및 한국 전자상거래 기업 ‘쿠팡’의 사외이사로 일하고 있다. 트럼프는 2020년 백악관 행사에 참석한 워시를 향해 “당신과 함께였다면 정말 행복했을 텐데…. 왜 그 자리(연준 의장)를 원한다고 더 강하게 말하지 않았소”라고 하면서 친밀감을 드러낸 적이 있다. 워시의 장인이자 에스티 로더의 억만장자 상속자인 로널드 로더가 트럼프에게 그린란드 매입 아이디어를 제안한 인물이었다고 알려지는 등 가문 간 유대도 강한 편이다. 다만 워시가 과거 긴축적 통화 정책, 자유무역, 연준의 정치적 독립을 강조한 발언을 많이 해왔다는 사실은 트럼프의 선택을 막는 걸림돌로 꼽힌다.

리더는 후보군 중 유일하게 현재 금융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시장 전문가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글로벌 채권 부문 CIO로 수조 달러를 주무르는 ‘큰손’이다. 리더는 최근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미국 고용시장 약화를 지목해 “기준금리를 3%로 낮춰야 한다”며 트럼프의 금리 인하 압박에 힘을 실었다. 현재 연준 기준금리는 3.75~4%로 하단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기준금리를 0.75%포인트는 내려야 한다는 의미다. 펀드 평가사 모닝스타는 리더를 “데이터에 대한 끝없는 갈망”을 가진 인물로 평가한다. 이런 특징이 연준의 객관적 기준금리 결정에 잘 활용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반면 연준 경험이 전무(全無)하다는 사실은 단점으로 지적된다. 파월 의장도 사모펀드 ‘칼라일 그룹’에서 장기간 일한 경력이 있지만 연준 이사로 5년 동안 경험을 쌓은 뒤에야 의장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