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7일 오전 서울 중구 더 플라자호텔에서 세계경제연구원이 주최하고 조선일보와 tv조선이 후원하는 '카르멘 라인하트(Carmen Reinhart) 하버드대 교수 초청 특별 조찬강연회'가 열리면서 카르멘 라인하트 교수가 강연을 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인공지능(AI) 혁신을 통한 ‘생산성 대도약’ 기대가 부채 문제를 해결해줄지 의문입니다. 생산성 개선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기술 진보가 고(高)부채 문제를 자동으로 정리해줄 것이란 기대는 희망 사항에 가깝습니다.”

세계 금융위기와 국가부채 연구의 ‘대가(大家)’로 꼽히는 카르멘 라인하트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석좌교수는 “부채 문제를 해결할 마법 같은 해법(silver bullet)은 없다”며 이처럼 말했다. 세계은행 수석부총재 겸 수석이코노미스트를 지냈고, 금융위기의 역사적 패턴을 분석한 베스트셀러 ‘이번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의 공동 저자로 유명한 라인하트 교수는 27일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세계경제연구원이 연 ‘글로벌 국가부채 위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조찬 강연에서 “부채가 쌓이는 것을 사전에 억제하고 경제·금융 구조의 취약성을 상시 점검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

◇“韓, 가계 부채가 통화정책의 부담”

한국에 대한 평가는 비교적 우호적이었지만 분명한 경고성 메시지도 나왔다. 라인하트 교수는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반 정부 부채 비율(54.5%)이 다른 선진국 대비 낮은 편이고, 세입 대비 이자 지출 비율 역시 주요국 중 낮은 수준”이라며 “재정 건전성이 (비교적) 안정적이고, 정책 여력도 높다”고 평가했다. 공공 부채가 낮은 만큼 은행의 국채 보유 비율도 상대적으로 낮아 ‘둠 루프(Doom Loop)’ 위험 역시 선진국 평균보다 제한적이라고 봤다. 둠 루프란 정부 부채가 늘어 은행이 국채를 많이 들고 있다가 금리가 오르면 은행이 손실을 보고, 이를 메우기 위해 정부가 다시 돈을 써야 하는 악순환을 말한다.

2025년 11월 27일 오전 서울 중구 더 플라자호텔에서 세계경제연구원이 주최하고 조선일보와 tv조선이 후원하는 '카르멘 라인하트(Carmen Reinhart) 하버드대 교수 초청 특별 조찬강연회'가 열리면서 카르멘 라인하트 교수가 참석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그러나 문제는 민간 부채라는 지적이다. 라인하트 교수는 “한국의 민간 부채, 특히 가계 부채는 선진국 평균보다 높은 수준이며, 전세 관련 차입을 감안하면 통계에 잡히지 않은 실질 가계 부채 비율은 공식 숫자보다 훨씬 높아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높은 가계 부채는 결국 통화정책의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금리 인상 과정에서 가계와 부동산 시장이 받는 충격을 고려하면, 중앙은행이 최적의 판단 대신 ‘덜 아픈 선택’을 택하게 될 유인이 생긴다”고 말했다.

◇“부채 해결, 불편한 선택만 있을 뿐”

라인하트 교수는 “부채 문제를 해결할 마법 같은 해법은 없다. 성장만 하면 부채는 저절로 사라질 것이란 낙관론은 역사적으로도 잘 들어맞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글로벌 고부채 시대에는 재정·통화·금융 정책이 서로를 제약하는 복잡한 구조 속에서 움직인다”며 “부채가 누적된 뒤에야 뒤늦게 대응하면 선택지가 매우 좁아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부채의 양뿐 아니라 구조, 이자 지출의 추세, 민간 부채와 금융 시스템의 연계 등 취약성을 조기에 점검하고, 정치적으로 부담스럽더라도 단계적인 재정 조정과 구조 개혁에 나서는 것만이 위기 비용을 줄이는 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