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 대출 관련 기업의 잇따른 파산을 ‘탄광 속의 카나리아’처럼 받아들여야 한다.”(영국은행 앤드루 베일리 총재) “바퀴벌레 한 마리의 출몰은 더 많은 바퀴벌레의 존재를 암시한다.”(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
미국발(發) 관세 인상과 혼란스러운 무역 재편 가운데 최근 들어 ‘잠재적 위험’으로 지목되는 금융 상품이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 12일 사설을 통해 “경제의 시한폭탄이란 우려가 나온다”고 묘사한 사모 대출(private credit)이다. 지난 9월 미국 중소기업 퍼스트브랜드·트라이컬러가 나란히 파산 신청을 한 후 두 회사가 사모 대출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모 대출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는 상황이다.
사모 대출은 은행 대출이나 회사채로 자금 조달을 하기 어려운 기업이 비(非)은행 금융사를 통해 빌리는 일종의 사채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은행 대출 심사가 까다로워지면서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모 대출을 ‘헤쳐 모여’ 한 후 만든 대출담보부증권(CLO·Collateralized Loan Obligation)까지 증가했고 최근엔 대형 은행과 일반 개인 투자자 자금까지 유입됐다고 알려지면서 늦기 전에 조치가 필요하다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사모 대출, 그리고 이와 연동된 CLO는 무엇이고 왜 숨은 위험을 예언하는 ‘카나리아’나 ‘바퀴벌레’에 비유될까. 글로벌 금융 위기에 버금갈 사모 대출발(發) 충격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을까.
◇Q1. 사모 대출이 뭔가
모든 기업이 은행이나 채권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지는 않다. 은행의 까다로운 대출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거나 회사채를 발행할 정도로 회사 규모가 크지 않다면 다른 수단을 취해야 한다. 사모 대출은 이런 기업들이 받는 대안적 대출이다. 운용사나 전문 사모 대출 기업이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집해 일종의 ‘대출용 펀드’를 만든 다음 이를 비교적 높은 이자를 받고 저신용 중소기업에 빌려주는 형식을 취한다. 최근 들어선 은행들도 이들 펀드에 투자하는 방식을 활용해 간접적으로 사모 대출에 참여하는 사례가 늘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글로벌 사모 대출 시장은 2014년 약 5000억달러에서 지난해 2조1000억달러(약 3085조원)로 급증했다. S&P글로벌은 사모 대출 규모가 2028년까지 3조달러로 불어나리라고 예상한다.
◇Q2. 사모 대출을 왜 쪼개서 CLO로 만드나
CLO 중에는 원래 신용도가 괜찮은 대기업이 여러 은행에서 공동으로 받은 대출(신디케이트론)을 바탕으로 만든 상품이 많았다. ‘광범위 신디케이트론(BSL, Broadly Syndicated Loan) CLO’라고 불린다.
사모 대출을 ‘재료’로 만드는 CLO는 구조는 비슷하지만 위험도가 훨씬 높다. 대출자 중에 부도 위험이 크다고 평가되는 기업이 비교적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신력 있는 신용평가회사에서 제대로 상환 능력을 검증받지 않는 사례도 다수 드러나고 있다. FT는 최근 기사에서 “이 기업들은 사모 대출을 받기 위해 신용평가를 처음 받는 경우가 많은데 비교적 높은 등급을 얻어내기 위한 ‘신용 쇼핑’도 횡행한다”고 지적했다. 대신 대출 금리는 더 높다. 파산 신청서에 따르면 퍼스트뱅크 사모 대출 평균 금리는 연 11% 수준으로, 은행의 기업 대출 금리를 훨씬 웃돌았다.
사모 대출 CLO는 이처럼 금리와 부도 위험이 모두 큰 기업의 대출 채권을 쪼개고 뭉쳐서 위험을 분산한다. 투자ᐧ법률 자문사 메이플스그룹 분석에 따르면 사모 대출 CLO는 지난해 규모가 급격히 불어나 사상 최대인 420억달러가 발행됐다. CLO 같은 증권이 되면 이를 기반으로 복잡하고 위험한 파생 금융상품을 만들기도 쉬워진다.
◇Q3. 왜 갑자기 위험 경고가 나오나
일단 사모 대출을 받은 중소기업 두 개가 지난 9월 파산 신청을 한 후 경각심이 커졌다. 주로 히스패닉계 이민자를 대상으로 자동차 판매·대출을 하는 트라이컬러(Tricolor)와 자동차 부품 업체 퍼스트브랜드(First Brands)다. 담보를 여러 대출에 중복으로 맡기고 대출을 받았다는 두 회사의 사기 행각이 밝혀지면서 사모 대출의 부실한 심사가 도마에 올랐다.
사모 대출이 CLO라는 형태로 증권화되면서 원래대로라면 위험한 사모 대출에 자금을 대지 않았을 은행 등 대형 금융사들의 돈이 적잖이 들어갔다는 점도 문제였다. 이는 금융계 전체의 연쇄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공포를 키웠다. 예를 들어 퍼스트뱅크의 경우 제퍼리스, 뱅크오브아메리카, UBS 등 은행이 CLO를 통한 사모 대출에 참여해 손실을 봤다.
연방준비제도에 따르면 사모 대출을 포함한 미 은행의 ‘비은행 금융기관(NBFI) 대출’은 2015년 3200억달러에서 지난 10월 1조7000억달러로 급증했다. 올해만 5570억달러 늘었다. 전문가들은 증가분의 상당 부분이 사모 대출에서 비롯했다고 본다. S&P글로벌에 따르면 미 10대 은행 중 NBFI 대출 규모가 가장 큰 은행은 웰스파고(1583억달러)였고 JP모건체이스(1334억달러), 뱅크오브아메리카(1184억달러) 등이 뒤를 이었다. 기본(티어1) 자본 대비 비율은 퍼스트시티즌뱅크셰어 은행이 132%로 가장 높고 웰스파고도 100%가 넘는 104%에 달했다.
◇Q4. 실제로 부도가 늘고 있나
아직은 아니다. 하지만 사모 대출의 특수한 구조를 감안하면 ‘사실상 부도’는 드러난 것보다 훨씬 많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사모 대출은 대부분 이자를 내지 않고 원금에 더하는 ‘PIK(payment-in-kind, 현물 상환)’ 옵션을 제공한다. 당장은 이자를 안 내서 좋을지 몰라도 갚을 돈이 복리로 불어나니 상환은 더 어려워지게 된다. 이자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기업이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사모 대출 중 PIK을 이용하는 비율을 13% 정도라고 추정한다.
S&P글로벌이 PIK과 함께 담보 강화나 추가 심사 없는 원금 상환 유예, 만기 연장 등을 ‘선택적 부도(selective default)’로 보고 부도율을 집계했더니 부도율이 다섯 배 정도 높았다. ‘전통적 부도(파산·연체)’ 비율은 2022년 0.5%에서 2024년 1% 정도로 늘어난 데 반해 ‘선택적 부도’ 비율은 같은 기간 2.5%에서 5%로 올라갔다.
◇Q5. 금융 위기 버금가는 충격이 올까
부실한 대출 심사, 부도 위험이 큰 대출, 이 대출의 위험을 분산하겠다며 만든 증권, 이 증권에 손을 뻗치고 파생상품으로도 만들어 유통하는 월가(街)의 금융사 등 사모 대출에 등장하는 요소들이 2008년 금융 위기의 원흉들과 닮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이 ‘비우량 기업 사모 대출’로 바뀌었을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지금 파악된 사모 대출 수준만으로도 2008년 당시 서브프라임 모기지(약 2조달러)에 버금가는 규모라는 점도 불안 요소다. IMF가 10월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사모 대출에 대한 금융사의 광범위한 투자가 새로운 위험으로 떠올랐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한 이유다. 최근에 사모 대출 CLO가 개인연금 등으로 침투하면서 개인 피해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선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주택’이라는 한 담보에 집중된 대출이었던 반면 사모 대출은 산업·지역별로 분산돼 있어 한꺼번에 동시다발적 부실이 발생할 가능성은 작다는 의견도 나온다. 퍼스트브랜드·트라이컬러의 중복 담보가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의도적 사기였기 때문에, 이는 업계 전반의 문제가 아니라는 진단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