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의 중국, 변호사의 미국.’
미국과 중국이란 두 글로벌 거인을 마치 양극단의 거울처럼 대비하는 시선이 미국 사회에서 주목받고 있다.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연구원이자 중국계 캐나다인인 댄 왕이 내놓은 미·중 경쟁에 관한 관점이다. 그는 지난 11일 WEEKLY BIZ와 한 화상 인터뷰에서 “중국은 기술·공학 중심의 ‘건설 사회’인 반면 미국은 변호사가 법으로 세상을 규율하는 ‘장벽의 사회’”라고 했다.
이러한 관점이 미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는 것은 미국인들이 체감하는 잃어버린 건설·제조 능력에 대한 무력감을 직관적으로 포착한 데다,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해 광범위한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그의 관점이 담긴 저서 ‘브레이크넥(Breakneck): 미래를 건설하려는 중국의 탐색’은 지난 8월 출간 이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뉴요커는 이 책을 ‘올해 최고의 책’ 가운데 하나로 선정했다. WEEKLY BIZ는 미·중의 상반된 발전 경로와 병폐를 분석한 왕 연구원에게 미·중 경쟁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과 향후 전망을 들어봤다.
◇미·중을 보는 새로운 시선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두 나라 관계를 정의했다. 그 까닭은.
“오늘날 미·중 사이 복잡한 관계를 민주주의, 사회주의, 신자유주의 등과 같은 낡은 용어로만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중국을 ‘엔지니어의 국가’, 미국을 ‘변호사의 사회’로 부르게 됐다.”
-‘엔지니어의 국가’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가.
“중국은 레닌주의 기술 관료제 국가라 할 수 있다. 엘리트 계층은 수십 년 동안 주로 건설에 능통한 엔지니어로 구성됐다. 이때 기술 관료란 주로 소련식 중공업 방식으로 훈련받은 (토목, 기계) 엔지니어를 의미했다. 그들은 전국에 수많은 주택, 철도, 교량, 고속도로 등을 건설했고, 그런 인프라 투자와 같은 물리적 개선을 중심으로 한 발전 모델을 추구해 왔다.”
-그렇다면 ‘변호사의 사회’가 뜻하는 건.
“미국은 법률가의 사회로 봤다. 조지 워싱턴부터 에이브러햄 링컨까지 초대 16명의 대통령 중 13명이 변호사 출신이었고, 독립선언문도 법률 문서처럼 쓰여 있다. 최근 대통령도 10명 중 5명이 로스쿨 출신이다. 변호사는 무언가를 ‘막는 데’(규제) 능하지만, ‘짓는 데’(건설·제조)는 서툴다. 그래서 미국은 (중국의) ‘한 자녀 정책’ 같은 어리석은 정책은 실행 않지만, 반대로 인프라조차 제대로 짓지 못한다.”
-중국이 엔지니어 국가가 된 동인은.
“중국 공산당은 기술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하다. ‘굴욕의 세기’에 서구·일본 제국주의에 당한 것은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이란 인식이 뿌리 깊다. 그래서 조선, 화학, 항공, 반도체 등 실질적인 영역에서 기술 초강대국이 되려는 집념이 강하다. 중국에서 엔지니어 국가란 정체성이 태동한 건 1980년대 덩샤오핑 시기부터라고 본다. 1980년대 내내 공학 전공자들이 중앙위원회와 정치국에 진입하기 시작했고, 2002년에는 후진타오를 포함한 정치국 상무위원 9명 전원이 공학도 출신이었다.”
-두 국가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 아닐까.
“내 아이디어는 진지한 학문적 모형(model)이라기보다, 21세기를 해석하는 창의적·유희적 시도에 가깝다. 물론 중국은 여전히 레닌주의 체제이고, 미국 또한 다른 개념들로도 설명할 수 있다. 나는 단지 이 두 나라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신선한 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돌진하는 중국
-중국 제조업·인프라의 폭발적 확장 메커니즘을 설명해 달라.
“중국의 건설 시스템은 매우 합리적으로 작동한다. 대형 교량이나 지하철을 지으려면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시스템이 필수다. 예를 들어, 권위주의 체제의 철도는 민주주의 국가의 철도보다 직선으로 뻗어 있는 반면, 민주주의 국가에선 토지 소유자 등의 반대 때문에 선로가 더 굽는다. 또한 중국의 관료제는 ‘다음 대형 프로젝트’를 상시 계획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나타난다고 보나.
“전력 생산만 봐도 미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연평균 2% 성장에 그쳤지만, 중국은 현재 미국의 두 배에 달하는 전력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올해만 태양광 300GW(기가와트)를 증설할 예정인데, 미국은 30GW 수준이다. 원전도 중국은 33기를 건설 중이지만, 미국은 제로(0)다. 항만·철도·공항·전력망 등 거의 모든 물리적 인프라에서 중국은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다.”
-중국의 혁신은 모방과 보조금에 의존한다는 비판도 나오는데.
“많은 부분이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후발국이 선진국을 모방하며 따라잡았다. 18세기 산업혁명 당시 영국에서 기술을 훔쳐 미국으로 건너간 기술자도 있었고, 일본은 독일을, 한국은 일본을 모방했다. 지금은 중국이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오직 베낀다’는 주장은 성급한 일반화다. 그들은 아이폰을 더 잘 만들고, 전기차를 더 빠르게 생산하며, 배터리를 개선하기 위해 끊임없이 실험한다. 중국식 자본주의는 미국보다 훨씬 경쟁적이다. 일본·독일·미국에서 신차 개발에 6년 걸린다면, 중국은 18~24개월이면 끝낸다. 중국의 체제는 단순히 ‘도둑질’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복잡하다.”
-교육과 훈련 측면에서 두 나라의 차이는 무엇인가.
“가장 큰 차이는 졸업 후 진로 선택이다. 미국의 우수한 공학도들은 졸업 후 월가 헤지펀드나 빅테크 등 AI 업계로 간다. 급여가 높고, 공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훨씬 쾌적하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의 공학도들은 여전히 공장·현장 중심으로 진로를 택한다. 미국은 교육은 훌륭하지만, 인재들이 제조 현장으로 가지 않는다.”
◇엔지니어 국가의 그늘
-엔지니어 국가, 중국의 단점은 없나.
“중국은 인구조차 설계 대상, 즉 마음대로 깎고 다듬을 수 있는 건축 자재처럼 다루려는 경향이 있다. 공산당은 경제 문제뿐 아니라 인재 배분을 비롯한 사회적 현상까지도 설계하려 든다. 똑똑한 인재를 반도체·항공 산업으로 몰아넣는다. 물리적 인프라에 대한 엔지니어적 접근은 긍정적일지 몰라도, 인구·사회를 ‘수학 문제’로 다루는 사회 공학은 압도적으로 부정적 결과를 낳았다.”
-구체적인 사례는.
“우선 과거의 ‘1가구 1자녀 정책’이 있다. 이 정책으로 낙태가 3억건 이상 발생했고, 여성 약 1억명과 남성 2500만명이 불임 수술을 받았다. 나는 이 정책을 ‘농촌 여성의 몸에 가해진 공포의 테러 캠페인’이라고 부른다. 이 사건은 미사일 엔지니어였던 한 측근이 덩샤오핑에게 중국의 인구 과잉 문제에 대한 ‘우아한 해결책’이라고 속삭이면서 시작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중국은 저출산 위기에 빠지자 다시 엔지니어 방식으로 여성을 설계하려고 한다. 공산당 최하급 간부들이 기혼 여성 집을 찾아 ‘아이를 더 낳을 의향이 있나’라고 묻는 등 은근한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 ‘제로 코로나’ 정책도 마찬가지다. 초반엔 성공적으로 보였지만, 2022년 상하이의 도시 봉쇄는 (엔지니어 사회에서나 가능한) 인류 사상 최대 규모의 감금 실험이었다.”
-시진핑 체제 등 지금껏 이어져 온 중국의 권위주의 통치가 결국 발목을 잡을까.
“이미 여러 방식으로 중국을 제약하고 있다. 부유층은 자산과 사업을 해외로 옮기고, 언론·예술인 등 창의적 인재들은 싱가포르·런던·뉴욕·치앙마이 등지로 떠난다. 지난해에는 중국인 4만명가량이 (미국에 가려고) 에콰도르를 거쳐 멕시코 국경을 넘다 붙잡히기도 했다. 이는 중국 엘리트조차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고, 중국이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낀다는 뜻이다. 중국에선 첨단 기술 기업 창업자들도 숙청될 수 있고, 금융업 종사자라도 연봉 상한선을 부과받는다.”
◇“한국인 구금, 트럼프의 큰 실수”
-그렇다면 미국의 그늘은.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전략은 중국을 이길 수 있을까.
“우선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명백히 효과가 없다. 제조업 일자리를 줄였고, 기업엔 불확실성만 키웠다. 정작 미국 정부는 제조업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일부 규제 완화·에너지 정책은 긍정적 요소가 있을 수 있으나, 트럼프는 풍력을 싫어하고 태양광에도 우호적이지 않다. 석탄과 가스를 미래 에너지로 보는 시각은 시대착오적이다. 전반적으로 치밀한 (제조업 부흥) 계획을 보기 어렵다.”
-미국이 제조 강국으로 부활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트럼프의 고관세 정책에 대한 생각은.
“우선 (트럼프) 관세는 철폐해야 한다. (트럼프의 고관세 이후) 미국에서 사라진 제조업 일자리는 약 4만개에 달한다. 둘째, 과학 연구에 더 투자해야 한다. 대학·기업 연구비를 줄이면서 기술 초강대국을 유지할 수 없다. 셋째, 외국 인재를 환영해야 한다. 트럼프가 대학을 공격하면서 해외 인재들이 미국 이주를 꺼린다. 미국 공장 건설에 더 많은 외국인 투자를 허용해야 한다. 중국이 테슬라·애플·월마트 생산을 온쇼어링으로 끌어들여 생태계를 키운 것과 같은 접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미국이 ‘우리는 뒤처졌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댄 왕은 지난 9월 미 이민 당국이 조지아주 서배너 소재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한국인 300여 명을 구금한 일을 언급했다. 그는 “고급 인재를 국내로 유입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데, 나는 올해 트럼프 행정부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 중 하나가 바로 연방 이민국 직원들이 조지아주에서 한국 엔지니어 300명을 사슬에 묶은 채 추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외국인 인재를 대하는 올바른 방식이 아니며 부정적 신호를 줬다. 만약 내가 해외 엔지니어이고 회사에서 미국으로 가라고 한다면, 수락을 망설일 것이다.”
-미·중 경쟁에서 결국 누가 승리할까.
“구조적 요인만으로 단일 승자를 가리기 어렵다. 경쟁은 장기전이 될 것이다. 앞선 나라는 자만에 빠져 실수하고, 뒤진 쪽은 개혁으로 추격하는 양상이 계속될 것이다. 2021년 미국의 혼란스러운 코로나 대처와 1·6 의사당 폭동을 보면서, 시진핑은 (승리했다는) 과신에 빠져 (알리바바 등 자국) 빅테크를 옥죄고 부동산을 통제했다. 그 결정의 후폭풍이 아직 중국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민주주의·인구·기술 같은 고정 변수로만 이해할 수 없는, 매우 역동적인 레이스가 오래 이어질 것으로 본다.”
◇AI 전쟁, 승자는
-중국의 제조업 경쟁력이 AI 시대에도 유효할까.
“현재 실리콘밸리가 앞서 있는 게 맞는다. 하지만 중국도 여러 ‘추론형 모델’ 분야에서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 AI가 전력 집약적 산업으로 확장될수록, 전력 설비 용량이 미국의 두 배인 중국이 유리할 수 있다. 미국의 최상위 AI 연구 인력 중 중국계가 많다는 점도 변수다. 트럼프가 촉발한 이민 규제가 강화되면 일부는 귀국해 기술력과 네트워크가 중국으로 이동할 수 있다. 또 미국은 서비스업 위주라서 AI를 ‘파워포인트를 더 잘 만들거나 소송을 더 많이 하는 기술’로 쓸지 모른다. 중국은 제조업 중심이어서 AI를 더 많은 아이폰·드론·탄약을 만드는 데 투입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세계에선 중국의 ‘과잉 생산’ 역량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
-미국의 반도체 통제가 중국을 본질적으로 묶어둘 수 있을까.
“단기적으로는 그렇다. 데이터센터 구축과 컴퓨팅 능력 확장을 막고 있으니까.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자립을 오히려 앞당길 것이다. 나는 이런 상황을 중국의 ‘스푸트니크 모멘트(개혁의 중대한 전환점)’라고 부른다. 미국 의존의 위험을 절감한 화웨이·바이트댄스·DJI·알리바바 같은 기업들이 정치적 충성심이 아니라 생존 때문에 자립화를 추진하게 됐다. 핵심 기술을 한 나라가 영원히 독점한 전례는 없다. 영국도, 미국도 그랬고, 중국도 결국 상당 부분 제약을 돌파할 것이다.”
-최후의 AI 분야 승자는 누구일까.
“경쟁은 장기전이고, AI의 향후 발전 방향도 불확실하다. 내가 실리콘밸리에서 느낀 건, 미국인 상당수는 ‘상자 속 신(God in a box)’을 만들려는 듯 AI를 인간보다 똑똑하게 모든 것을 제어하는 초지능으로 상상한다는 것이다. 반면 중국은 AI를 통제 가능한 또 하나의 기술로 보고 모든 공장 운영에 넣으려 한다. 접근이 매우 다르므로 승자를 속단하긴 이르다. 미래 어느 방향으로 AI가 발전할지 접근법 자체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미·중 외 제3국이 AI 경쟁에 끼어들 여지는 있을까.
“항상 여지는 있다. 한국·호주·독일 같은 나라들이 자국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내야 한다. 다만 미국과 중국이 두 마리 코끼리처럼 미래를 주도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제3국은 자국의 강점을 바탕으로 틈새를 찾아 성장 경로를 설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