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의균

“태어날 아기가 자라서 어떤 질병에 취약할지는 물론 키는 얼마나 클지, 피부색은 어떨지 등에 대한 예측 지표가 점점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배아(수정란) 유전자 검사 정보를 받는 병원들이 아직 신체 예측 정보까지 받는 데 동의하지 않아 제공하지 않고 있을 뿐이죠.”

배아 유전자 검사 스타트업인 지노믹 프리딕션(Genomic Prediction)의 공동 창업자이자 유전자 모델링 전문가인 스티븐 쉬 박사는 지난 8일 WEEKLY BIZ 인터뷰에서 이처럼 말했다. 아이들의 미래를 예견해 ‘현대판 점쟁이’라고까지 하는 유전자 검사 업체들의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공상과학 영화 ‘가타카’ 속 장면처럼 아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유전자 정보를 기반으로 아이의 특성을 예측하거나 특정 질병 위험을 낮추는 일이 기술적으로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영화에선 부모가 자녀의 지능과 외모를 선택하고, 그에 따라 신분과 직업까지 결정되는 세상이 펼쳐진다. 예컨대 영화 속 유전적 부적격자로 그려지는 주인공 빈센트와 달리 그의 동생은 유전자 조작으로 ‘조기 탈모’ ‘근시’ ‘알코올 중독’ ‘약물 중독’ ‘비만’ 등의 유전 인자를 솎아내고 좋은 점만 골라 ‘완벽한 아이’로 태어난다. “1000번 자연 임신해도 이런 아이는 못 가져요.” 영화 속 대사처럼 완벽한 ‘수퍼 베이비’가 태어나는 시대가 조만간 펼쳐질 수 있을까. WEEKLY BIZ는 유전자 검사 기술로 뜨고 있는 글로벌 스타트업과 국내외 전문가를 취재해 현재 유전자 검사의 기술 수준은 어디까지 발전했고, 이를 둘러싼 윤리 논쟁의 핵심 쟁점은 무엇인지 짚어봤다.

◇암 발생에서 비만 확률까지

“우리는 ‘배아 건강 점수(Embryo Health Score)’란 지표를 통해 각종 질환이 발생할 확률을 제시합니다. 이 정보는 부모와 의료진이 어떤 배아를 선택할지 판단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쉬 박사는 “(배아를 구성하는) 수백만 개의 DNA 염기 서열을 분석한 뒤 유방암·전립선암·정신분열증 등 주요 질환의 발병 위험을 계산한다”면서 “우리는 고객의 아이가 가능한 한 건강하게 태어나 자랄 수 있도록 배아 검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아직 엄마의 자궁에 착상되지도 않은 배아만 들여다봐도 나중에 아이가 자라 암에 걸릴 확률까지 따져낼 수 있다는 뜻이다. 데이터 분석 결과, 이렇게 건강한 배아에서 출발해 성장한 이들은 무작위로 착상돼 성인이 된 경우보다 건강 수명이 5년 길다는 게 이 회사 측 설명이다.

그래픽=양진경

특히 최근엔 난임 부모가 늘고 그만큼 체외수정(IVF·시험관 아기 시술)으로 아이를 갖는 사람도 많아지면서 미리 건강한 배아인지 알아보는 ‘착상 전 유전자 검사(PGT)’ 기술이 더욱 보편화되고 정교해지는 추세다.

우선 배아에 염색체 이상(정상 46개, 23쌍)이 없는지 검토하는 검사(PGT-A)는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서 해마다 34만건 이뤄지고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염색체 이상이 없는 배아를 골라야 착상 성공률도 높이고, 유산 가능성도 줄어들기 때문에 그만큼 관련 검사가 보편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또한 유전자 검사 기술이 발전하면서, 시험관 시술로 만든 배아에 대해 단지 정상 여부만 판단하는 단계를 넘어 아이의 ‘미래 질환 확률’을 예측하는 검사(PGT-P) 기술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이 검사는 단일 유전자 돌연변이로 나타나는 병이 아니라 환경적 요인이나 생활 습관과 함께 나타나는 비만, 정신 질환 등 복합적 질환이 일어날 가능성까지 예측해 내는 게 특징이다. 쉬 박사는 “이 검사를 통해 위험 점수가 높게 나올 경우, (심근경색과 같은 특정 질환이 발병할) 위험도가 일반인보다 5~10배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만 달러 들여 ‘건강한 배아’ 선택

태어날 아이가 앞으로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 예측해 준다는 유전자 검사가 확산되면서 지갑을 여는 부모도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부모는 아이가 가장 건강한 상태로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 의무 중 하나는 (예방접종처럼) 질병을 예방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유전자 검사는 질병을 예방하는 또 다른 방법일 뿐입니다.”

미국의 신경과 전문의 라팔 스미그로드츠키 박사는 5년 전 세계 최초로 ‘다유전자 질환 검사(PGT-P)’를 받고 자녀를 낳은 사례로 기록돼 있다. 라팔은 2020년 5월 체외수정으로 얻은 배아 4개 가운데 심장병·당뇨병·암 등 주요 질환 위험이 가장 낮게 평가된 배아를 선택해 딸 아우레아(Aurea)를 출산했다. 그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유전자 검사는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처럼 유전자 검사를 통해 가족력 등으로 발생할 수 있는 아이의 유전 질환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에서는 부모들이 수천에서 수만 달러에 이르는 비용을 들여가며 이런 검사를 받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노믹 프리딕션 측은 지난 1월 기준 전 세계 고객 420명에게 1600여 배아의 유전 위험 점수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유전공학 스타트업 뉴클리어스 지노믹스 역시 고객 수천 명에게 배아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명 기업인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오픈AI CEO 샘 올트먼(Sam Altman)과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Elon Musk) 등이 자녀 출산 과정에서 유전자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고 전했다.

유전자 검사가 확산하면서 관련 시장 성장세도 가파르다. 미국 시장조사 업체 리서치 네스터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이뤄지는 착상 전 유전자 검사 시장은 올해 8억5888만달러(약 1조2600억원)에서 2035년 20억7000만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쉬 박사는 “매년 세계적으로 약 250만건의 체외수정이 이뤄졌는데, 시술 건수는 빠르게 증가해 2030년까지 약 500만건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며 “이에 따라 유전자 검사 시장 규모도 연간 약 100억달러까지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세계적으로 합계 출산율이 줄어드는 추세지만 업계는 성장세에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봤다. 쉬 박사는 “여성들의 결혼 적령기가 갈수록 늦춰지고 있고, 각국 정부가 불임 문제 해결에 이전보다 집중하고 있다”며 “출산율 하락과 관계없이 체외수정 시술 건수가 향후 빠른 속도로 증가하니 이와 관련된 유전자 검사 건수도 함께 늘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유전자 검사 열풍 속에서 관련 스타트업 투자도 잇따르고 있다. 2019년 설립된 오키드헬스는 지금까지 1650만달러를 유치했으며, 투자자 명단에는 이더리움(ETH) 공동 창립자 비탈릭 부테린과 코인베이스 CEO 브라이언 암스트롱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유전공학 스타트업인 '헤라사이트(Herasight)'에서 윤리·정책 자문을 맡고 있는 조너선 어노멀리 박사(전 듀크대 교수). 그는 WEEKLY BIZ 화상 인터뷰에서 "미래에는 태어날 아이의 근육량이 어떨지 등과 같은 더 정교한 신체 특성까지 예측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헤라사이트

◇완벽한 아이 설계하는 세상

문제는 유전자 검사 기술이 단순히 아이의 건강 위험을 예측하는 수준을 넘어 태어날 아이의 지능이나 외모 등 비(非)질병 형질까지 판별하려는 방향으로 퍼질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미국의 유전공학 스타트업인 헤라사이트(Herasight)는 현재 배아의 유전적 질환만 검사하는 게 아니라, 일부 비질환적 유전 특징까지 예측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헤라사이트에서 윤리·정책 자문을 맡고 있는 조너선 어노멀리 박사(전 듀크대 교수)는 WEEKLY BIZ 화상 인터뷰에서 “우리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는 지능에 대해 유전적 점수를 매겨 파악하거나, 키와 체질량 지수(BMI)까지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 중”이라며 “미래에는 태어날 아이의 근육량이 어떨지 등과 같은 더 정교한 신체 특성까지 예측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 말 그대로 ‘완벽한 아이’를 설계하는 세상이 열릴 수 있다는 뜻이다.

헤라사이트의 통계유전학자 스펜서 무어는 “배아의 개수나 (얼마나 유전적 조합이 잘 섞였는지) 유전자의 ‘운(luck)’ 정도 등에 따라 부모가 고를 수 있는 배아 폭이 다양해질 수 있다”면서 “우리는 질병에 걸릴 확률뿐 아니라 지능에 대해서도 세계적 수준의 연구 결과를 보유하고 있어 예측력이 높은 편”이라고 했다.

다만 아이의 지능까지 예측할 수 있다는 업체 측 주장을 두고 과학적 근거가 아직 빈약하다는 반론도 나온다. 김진수 카이스트 공학생물학 대학원 교수는 “아이의 외모나 지능에 유전적 요인이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유전자 변이가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며 “이 분야는 과학이라기보다 자칫 유전학을 빙자한 ‘현대판 미신’이 될 수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충원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도 “아직은 복잡한 질환을 일으키는 유전자 간 상호작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단계”라며 “검사를 통해 유전자가 특정 형질이나 질병에 영향을 끼칠지 확률적으로 따진 점수(PRS)는 대규모 인구 집단에선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지만, 배아 하나에 적용할 경우 예측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대판 우생학’ 논란

배아 유전자 검사를 통해 우수 배아를 선별하는 행위는 기술의 정확성을 떠나 ‘정치적·윤리적 화약고’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더 주목받고 있다. 완벽한 아이를 낳으려는 부모의 욕심과 이를 상업화하려는 업체들의 행태가, 인종적 순혈을 내세웠던 나치 독일의 우생학과 무엇이 다르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우생학은 영국 유전학자 프랜시스 골턴이 1883년 창시한 개념으로, 선택적 교배를 통해 인류를 ‘개선’할 수 있다는 유사과학적 이론이었다. 오늘날 배아 선택에 정교한 유전자 검사를 도입하려는 일련의 시도는 ‘현대판 우생학’의 재현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유전자를 ‘선택’하는 수준을 넘어 직접 ‘편집’하려는 시도는 이미 국제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바 있다. 2018년 11월 중국 남방과기대 허젠쿠이 교수는 에이즈 바이러스(HIV)에 면역력을 갖도록 유전자를 편집한 쌍둥이 여자아이가 태어났다고 발표했다. 세계 과학계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고 비판했고, 중국 선전시 법원은 이듬해 그에게 징역 3년과 벌금 300만위안(약 6억2000만원)을 선고했다. 판결문은 “연구와 의학 윤리의 마지노선을 넘었다”고 적시했다.

하지만 유전자 편집이 아닌 유전자 검사를 통한 배아 선별의 윤리적 경계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특히 ‘지능’과 같은 비질병 형질을 두고 일반인 의견도 갈린다. 2023년 미국에서 성인 142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36.9%가 지능 유전자 검사를 찬성했고, 22.6%는 중립, 40.5%는 반대 의견을 냈다.

국가에 따라 유전자 검사를 어디까지 허용할지 규정도 제각각이다. 한국은 생명 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생명윤리법)에 따라, 유전 질환을 진단하는 목적이 아닌 배아 유전자 검사는 엄격히 금지한다. 심각한 선천성 질환이나 염색체 이상 등 의학적 필요가 입증된 최소한의 경우에만 허용한다. 국내에선 난임 환자가 2020년 22만8618명에서 2024년 30만401명으로 빠르게 늘고 있지만, 배아 유전자 검사에 대한 논란이 수면 위로 본격적으로 올라오지는 않은 이유다.

반면 미국에선 연방 차원에서 배아 유전자 검사나 배아 선택에 대한 명확한 규제가 미비하고, 주(州)별로도 가이드라인이 다르다. 이에 전문가들 의견도 다양하다. 생명윤리학자인 바르디트 라비츠키 전 몬트리올대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우리는 이미 유전적 결정론에 빠져 있다”며 “자녀의 미래가 유전으로 결정된다는 메시지를 주는 기술은 이런 결정론을 강화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배아 유전자 검사에 과민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다는 일부 주장도 있다. 마르깃 버마이스터(뉴클리어스 지노믹스 과학 자문위원) 미시간대 인간유전학 교수는 “부유층 자녀가 이미 사교육·입시 등에서 유리한 환경을 누리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도 비교적 돈이 많이 드는 체외수정과 배아 선택이 윤리적으로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