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페 4세의 초상’(왼쪽)과 ‘푸른 드레스를 입은 마르가리타 공주의 초상’. 두 그림의 주인공 모두 초상화에서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전적 결함인 주걱턱의 흔적이 보인다.

미술관에 가서 합스부르크 가문의 초상화를 보면 기괴하게 바깥으로 돌출한 턱을 보고 흠칫하게 됩니다. 일명 ‘합스부르크의 턱’이라는 이 유전병은, 고귀한 혈통을 유지하고자 했던 근친혼의 결과이자 합스부르크 왕가가 받은 ‘유전의 저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후손에게 좋은 유전자를 물려주려는 욕심은 왕가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 후대에 유리한 유전자를 남기려는 건 본능에 가깝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런 인간의 본능과 욕심이 유전과학의 발전과 결합해 자칫 ‘신(神)의 영역’을 침범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엔 체외수정 과정에서 배아의 착상 전 유전자를 검사해 특정 질환 발병 위험을 미리 확인하는 것은 물론, 태어날 아기의 키나 근육량, 피부색 등 신체적 특징까지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배우 뺨치는 얼굴에 보디빌더 몸매를 지닌 아이를 낳는 시대가 열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런 시대가 정말 오면 부자들만 건강한 아이를 낳는 ‘유전자 양극 사회’, 유전자 선별 인종을 우대하는 신(新)우생학 시대 등 공상과학 속 악몽이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마치 예전 합스부르크 가문이 고귀한 왕가 순혈에 집착하다 주걱턱이란 유전적 형벌을 얻었듯, 인류 역시 명확한 규제가 없다면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겁니다.

/김성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