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천연 탄산 미네랄 워터에서부터 오스트리아 알프스에서 솟아나는 청정 지하수, 한국 동해 깊은 바다에서 길어 올린 심해수까지….
지난 4월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파인 워터 서밋(Fine Water Summit)’에선 전 세계 35국 107종의 물이 최고의 물맛 경쟁을 벌였다. 와인 소믈리에처럼 물을 감별하는 워터 소믈리에들은 잔에 따른 물의 향을 맡고 시음하며 점수를 매겼다.
물맛이 다 거기서 거기일 것이라 생각해왔다면 큰 오해다. 화산 암반수나 빙하수, 심해수 등 각기 다른 지질·기후 환경이 빚어낸 물은 독특한 풍미와 이야기를 품고 고가(高價)에 상품화되고 있다. 봉이 김선달도 놀랄 ‘고급 물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셈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그랜드뷰리서치는 글로벌 프리미엄 생수 시장 규모가 지난해 361억8890만달러(약 51조원)에서 해마다 7.5%씩 성장해 2030년엔 560억1020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와인 고르듯 고급 생수를 골라 맛보며 점차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까. 우선 코로나 팬데믹 이후 특히 MZ세대 등을 중심으로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건강한 생활을 위해 음주를 의도적으로 멀리하는 것)’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술 없이도 친구들과 파티를 즐기고, 스포츠 경기를 보려는 웰빙족이 늘면서 와인·맥주 대신 다양한 프리미엄 생수를 음미하는 흐름이 커진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선 이름부터 강렬한 ‘리퀴드 데스(Liquid Death)’란 생수 브랜드가 급부상했다. 맥주 캔 같은 알루미늄 캔에 담긴 이 생수는 실제로는 물을 마시지만 마치 맥주를 마시는 기분으로 파티를 즐기고 싶어 하는 젊은 세대의 니즈를 정확히 충족시켰다는 평가다. 이에 판매도 급증세다. 투자 리서치 플랫폼 새크라(Sacra)에 따르면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약 3억3300만달러로, 전년 대비 27% 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소셜미디어 등에 올리기 위한 ‘과시적 소비’ 성향도 고급 생수 열풍에 기름을 부었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주얼리 워터’란 별칭을 가진 호화로운 병 장식의 일본산 프리미엄 생수 ‘필리코(Fillico)’는 물 한 병이 거의 양주 한 병 값에 이른다. 일본 고베 롯코산 샘물을 원수로 쓰는 이 초고가 프리미엄 생수는, 이 회사 온라인 숍을 통해 3만5200엔(약 33만원)에 팔리고 있다. 워터 소믈리에인 마이클 마샤는 금융그룹 LGT에 게재한 글에서 “병에 든 물을 단순히 수분 보충을 위한 것만으로 생각하는 시대는 지났다. 물을 마시는 것도 하나의 경험으로 여기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