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한 대형 물류센터에 새로 배치된 ‘신입 사원’은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었다. 근로자가 로봇에 부착된 바구니에 물건을 넣어주면 신입 로봇은 미리 입력된 경로를 따라 물건을 척척 운반했다. 이처럼 사람과 로봇이 함께 일하는 현장이 늘어가는 가운데 로봇 동료가 인간 근로자의 스트레스를 되레 키운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그동안 로봇과 자동화 시스템이 ‘더럽고, 지루하고, 위험하고, 어려운’ 분야의 일을 사람 대신 처리하면 인간의 삶의 질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일의 보람·자율성 줄어”
“바쁠 때는 로봇 20대가 줄지어 제자리로 오곤 했어요.”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40대 근로자 제시카는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거대한 창고에서 로봇과 함께 고객 주문을 처리하는 일이 “솔직히 엄청나게 지루했다”고 털어놨다. 마치 자동화된 공장의 한 부품이 된 것처럼 로봇과 기계적으로 일하는 환경에선 만족감을 느끼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로봇 자동화가 덜 된 다른 아마존 센터로 일터를 옮겼는데, 업무 속도는 느려져도 동료들과 대화하며 일하는 분위기가 훨씬 나아졌다고 말했다.
제시카뿐 아니라 로봇과 함께 일하는 게 근로자의 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는 이어지고 있다. 네덜란드 호로닝언대 밀레나 니콜로바 교수 등이 발표한 ‘로봇, 의미 그리고 자기 결정’ 논문에 따르면, 로봇화가 진행될수록 근로자들은 일의 의미와 자율성을 덜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유럽 20국, 14개 산업에서 종사하는 근로자 설문을 분석했는데, 로봇 밀도가 두 배 늘면 근로자들의 ‘일의 의미감’은 0.9% 줄고, ‘자율성’은 1% 감소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2005~2020년 사이 로봇화 수준이 26배 증가한 광업·채석업 분야에서는 근로자들이 업무에서 보람을 찾거나 자율성을 보장받기 훨씬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일자리 불안… 저숙련 근로자들 더 타격
유럽뿐 아니라 로봇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중국에서도 로봇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정신적 부담이 커진다는 연구가 나왔다. 광저우대와 지난대 연구진 등이 참여한 ‘로봇 도입 증가의 건강 영향’ 논문은 “근로자들이 로봇에 더 많이 노출될수록 정신적 스트레스가 커진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는 로봇이 기존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고용 불안과 직결된 스트레스였다. 이에 교육 수준이 낮거나 나이가 어린 근로자일수록 로봇 도입에 대한 불안감이 크게 나타났다는 게 이 연구의 결론이다.
미국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확인됐다. 피츠버그 연구팀은 2022년 발표한 ‘산업용 로봇,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 논문에서 로봇 도입 이후 해당 지역 근로자들의 약물·알코올 관련 사망률이 인구 10만명당 37.8건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로봇이 단순·반복 업무를 대체하면서 일부 근로자가 실직 위기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더 큰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알코올·약물에 의존하는 경향이 늘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로봇과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변화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며 “사라지는 직무에 대비해 근로자들이 새로운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재교육을 지원하고, 로봇 밀집도가 높은 산업일수록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