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주 최남단에 있는 우주발사 시설 스타베이스. 초대형 우주 발사체 스타십이 인터룬(Interlune)사의 달 표토층(레골리스) 굴착 장비 ‘하베스터’를 실은 채 굉음을 내며 발사된다. 달 표면에 무사히 안착한 2t 남짓의 네모난 하베스터가 자율 주행을 시작한다. 회전형 드릴이 돌기 시작하며 시간당 100톤에 달하는 레골리스를 굴착한다. 하베스터는 레골리스를 부수면서 방출되는 가스를 영하 268도까지 냉각한 뒤, 그중 1%에 불과한 헬륨3 가스만 따로 추출한다. 인터룬은 하베스터가 채취한 헬륨3 가스 약 3리터를 로켓에 실어 지구로 보낸다.
공상과학(SF)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우주 탐사 스타트업 인터룬이 밝힌, 불과 4년 뒤 2029년 청사진이다. 인터룬은 ‘꿈의 연료’라 불리는 헬륨3를 두고 세계 각국이 벌이는 경쟁에서 지금까지 가장 앞선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되는 기업이다. 단 1g으로 석탄 40t에 맞먹는 에너지를 뿜어내 차세대 핵융합 발전 원료로 꼽히는 헬륨3를 채취해 세계 최초로 우주 자원 상업화에 성공한 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다. 소행성에 매장된 자원을 노리는 스타트업도 있다. 미 우주 기업 애스트로포지는 소행성에서 백금족 금속(백금·팔라듐·이리듐·로듐 등)을 채굴해 지구로 가져와 판매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영화 ‘아바타’에서 인류가 자연 상태의 초전도체인 ‘언옵테늄’을 찾아 외계 행성 판도라로 향한다는 이야기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지구 자원·에너지 고갈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우주 ‘보물섬’에서 자원을 채굴하기 위한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WEEKLY BIZ는 우주 탐사 스타트업인 인터룬과 애스트로포지, 오프월드의 최고경영자(CEO) 인터뷰를 통해 세계 각국이 ‘우주 골드러시’에 뛰어든 이유를 들여다봤다.
◇도전 이유 1. 막대한 경제적 가치
전 세계 우주 채굴 스타트업들이 가장 먼저 도전하는 곳은 바로 달이다. 달은 지구와 가장 가까운 위성으로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등에 사용되는 희토류를 비롯해 물과 헬륨3 등이 대량으로 매장돼 있다. 헬륨3는 모험가들 사이에서 이른바 ‘꿈의 광물’로 불린다. 100t이면 탄소 배출이나 방사선 문제 없이 인류 전체가 1년간 사용할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헬륨3는 수퍼컴퓨터를 대체할 것으로 예상되는 양자컴퓨터 구동에도 핵심적인 자원으로 꼽힌다. 롭 메이어슨 인터룬 CEO는 WEEKLY BIZ에 “양자 컴퓨팅 산업이 떠오르며 헬륨3가 각광받고 있다”며 “양자컴퓨터는 절대영도(영하 273도)에 가까운 극저온 환경에서만 작동하는데, 여기에 헬륨3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헬륨3가 1kg에 2000만달러(약 300억원)로 값비싼 자원이라는 점과, 급증하는 양자컴퓨터 수요를 감당하기엔 지구상의 공급량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달에 100만t에 달하는 막대한 양의 헬륨3가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2경달러 규모로 지난해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690배에 달한다. 메이어슨 CEO는 “달 탐사의 신뢰성과 빈도가 갈수록 증가하면서 우주 접근 비용도 덩달아 낮아지고 있다”며 “헬륨3을 대량으로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달에서 채굴하는 것”이라고 했다.
소행성도 ‘잭팟’이 터질 것으로 예상되는 희귀 금속의 보고다. NASA가 2023년 10월 탐사선을 날려 보낸 소행성 ‘16프시케(16Psyche)’에 매장된 금속의 가치만 1000경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이유로 애스트로포지는 근지구 소행성을 겨냥해 재사용이 가능한 저비용 소형 우주선 함대 개발에 나섰다. 매슈 지알리치 애스트로포지 CEO는 “임무당 비용은 약 1000만달러로 예상되지만, 5000만~6000만달러의 수익을 올릴 수 있어 최대 80%의 이익률이 기대된다”며 “대규모 소행성 채굴에 성공하면 그 이익은 지구상의 한계 비용과 환경적 부담을 능가할 것”이라고 했다.
◇도전 이유 2. 지구에선 구하기 힘든 자원
가뜩이나 지구에서는 희귀한데 국제 정세 악화로 무기화된 자원들이 달과 소행성에는 풍부하다는 점도 인류를 우주로 향하게 만들고 있다. 우주 자원이 본격적으로 채굴되기 시작하면 새로운 공급망이 구축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는 2030년 10억달러 규모인 우주 자원 시장이 2040년 630억달러로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자원 시장에서 활용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자원은 단연 헬륨3다. 지구에 있는 헬륨3는 대기 중 헬륨4의 100만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지구 자연계에서는 구하기 힘들다. 헬륨3는 보통 태양으로부터 불어오는 전기적 성질을 띤 태양풍 속에 포함돼 날아오는데 지구 대기와 자기장이 태양풍을 막아 퇴적을 방해한다. 이에 비해 달은 진공에 가까운 매우 희박한 대기를 지닌 탓에 수십억 년에 걸쳐 헬륨3가 퇴적됐다.
헬륨3 부족 현상은 갈수록 심화될 전망이다. 미 연방정부는 2008년 처음으로 헬륨3 공급 부족이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인지, 회계감사원(GAO)에 헬륨3 관리 실태를 검토하도록 지시한 바 있다. 이후 미 정부와 산업계가 헬륨3의 새 공급원을 찾아 나섰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메이어슨 CEO도 “삼중수소를 만들어 생산하는 방법도 있지만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며 “규제 기준을 맞추기 어려울뿐더러, 설령 그렇게 생산한다고 해도 수요를 충당할 만큼 충분한 양을 공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전기차와 반도체, 바이오 등 첨단 산업 핵심 소재인 희토류 공급망이 중국 등 특정 국가에 편중되어 있다는 점도 이들이 우주 채굴에 뛰어든 이유다. 중국은 현재 전 세계 희토류 채굴의 약 60%, 가공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자동차 촉매와 전자제품에 필수적인 팔라듐 생산도 러시아가 절반을 장악하고 있다. 지알리치 CEO는 “첨단 산업은 점점 더 확보하기 어려워지는 백금족 금속(PGM)에 의존하고 있다”며 “채굴에 성공하면 PGM 공급망을 안정화해 산업 전반에서 생산성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일본 벤처 우주 기업 아이스페이스를 비롯해 미국의 문익스프레스와 애스트로보틱 등은 달 자원 채굴 로봇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들 모두 희토류가 풍부한 소행성 채굴에도 로봇을 투입할 가능성이 높다. NASA는 지구 근처에 약 10만개의 소행성이 있으며, 그곳에 백금·니켈·코발트·희토류가 다량 매장돼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도전 이유 3. 성숙한 기술도 뒷받침
우주 자원 채굴이 상용화를 목전에 둔 것은 과거에 비해 기술이 크게 성숙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특히 발사 비용의 혁신적인 절감은 우주 자원 채굴의 미래를 앞당겼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이끄는 스페이스X는 발사체 1단을 재사용하는 기술을 통해 화물 발사 비용을 기존의 10분의 1로 줄여 우주 수송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류동영 우주청 달착륙선프로그램장은 “우주로 가는 문턱을 획기적으로 낮춰 과거엔 상상조차 어려웠던 상업 우주 프로젝트의 문을 열어준 셈”이라고 했다.
달에서 채굴 장비를 운용하려면 극한의 환경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이를 이겨낼 수 있는 기술 개발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실제로 달 표면은 낮에는 121도까지 치솟고 밤에는 영하 246도로 떨어지는 극심한 온도 차를 보인다. 여기에 더해 풍화 작용을 거치지 않은 날카로운 암석 파편인 레골리스가 기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수도 있다.
메이어슨 CEO는 “달의 낮은 중력과 극한의 온도, 강한 방사선의 환경에도 견디는 자율 운행 시스템이 채굴 장비에 적용됐다”며 “무인 운용이 가능할 만큼 로봇 공학 기술도 충분히 발전했다”고 했다. 이어 “기존보다 전력을 10분의 1만 소모하는 시스템은 이미 특허 출원 중이다”라고 했다. 인터룬은 헬륨3 매장량 측정과 탐색을 위해 올해 말 다중분광 카메라가 탑재된 달 탐사 로버(차량)를 달 남극으로 보낸다. 2030년부터는 하베스터 5대로 헬륨3을 연간 10kg씩 생산할 계획이다.
미 우주 자원 광산 개발 기업 오프월드는 통신 환경이 원활하지 않은 달과 소행성에서 로봇이 스스로 군집 형태로 협업하며 작업하는 ‘스마트 스웜’ 기술을 개발했다. 짐 케라발라 오프월드 CEO는 “AI를 통해 로봇은 통신이 끊어져도 현장을 학습한 뒤 적응한다”고 했다. 연이은 실패가 기술을 오히려 한층 더 성숙하게 만들기도 한다. 지알리치 CEO는 “지난 2월 발사한 오딘(소행성 채굴 탐사선)이 달 궤도를 벗어나면서 교신이 끊겼다”며 “이 실패를 바탕으로 개선된 ‘딥스페이스2′가 내년 말 소행성 샘플 채취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그는 “딥스페이스2가 성공하면 민간 기업 최초로 지구-달 권역을 넘어 다른 천체에 도달한 임무가 된다”고 했다.
◇우주 채굴 경쟁에서 뒤처진 한국
우주 자원 채굴을 놓고 세계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아직까지 달이나 소행성 자원 채굴에 적극적으로 나선 민간 기업이 없기 때문이다. 국가 주도의 채굴 목적의 소행성 연구도 더디다. 류 프로그램장은 “우리나라는 에너지와 통신, 건설, 자원 추출 등 여러 분야에서 강점이 있다”며 “우주 자원 개발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했다.
우주 예산 역시 주요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 상황이다. 우주항공청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의 우주 예산은 7억달러 수준으로 미국(740억달러)과 중국(160억달러)과는 비교가 무색할 정도로 격차가 크다. 가까운 일본과 비교해도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우주 탐사 경쟁에 뛰어들 채비는 이뤄지고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KIGAM)은 달 표면의 자원 성분을 분석할 수 있는 중성자 분광기·레이저 유도 분쇄 분광기 등 핵심 탑재체를 개발하고 있다. 연구원은 오프월드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2028년쯤에 예정된 오프월드의 달 탐사 임무에 한국이 개발한 장비를 실어 성능을 검증하는 방식의 협력도 추진 중이다.
국내 유일의 탐사 로봇(로버) 제조 기업인 ‘무인탐사연구소(UEL)’도 오는 2027년 말 스페이스X 발사체에 실어 달에 소형 로버를 보낼 계획이다. 조남석 UEL 대표는 “한국도 2032년엔 달 탐사 착륙선을 보내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자원 채굴이 가능한 로버도 개발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