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간연구이니셔티브(i4is)가 주최한 유인 항성간 여행을 위한 설계 공모전에서 1위를 차지한 크리살리스. 거대한 시가(담배) 모양을 하고 있다. / i4is

인류가 언젠가 태양계를 벗어나 머나먼 다른 행성으로 이주한다면 그 여정을 이끌 우주선은 어떤 모습일까. 아직은 먼 미래의 이야기지만, 그 꿈을 설계도로 먼저 그려보는 대회가 열렸다.

영국 비영리 연구기관 ‘성간연구이니셔티브(i4is·Initiative for Interstellar Studies)’는 “유인 비행으로 약 250년을 항해해 거주 가능한 행성에 도달할 수 있는 우주선을 설계하는 ‘프로젝트 하이페이론 디자인 공모전’을 개최해 우수작을 선정했다”고 최근 밝혔다. 이번 공모전은 단순한 공상과학(SF) 상상이 아니라, 현존하거나 근미래에 구현 가능한 기술을 전제로 하도록 했다. 또 건축가·엔지니어·사회과학자 등이 한 팀을 이뤄 수백 년 동안 우주에서 자급자족하며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우주선 설계를 요구했다. 거주 인원은 약 1000명, 인공중력 유지, 의·식·주 등 기본 생활조건 보장 등 까다로운 조건도 내걸었다.

◇우주 망망대해를 항해할 거대 세대선

심우주(深宇宙)를 장기간 항해하는 자급자족형 미래형 우주선 설계안 가운데 1위는 이탈리아 팀 ‘크리살리스(Chrysalis)’가 차지했다. ‘나비의 번데기’를 뜻하는 이름을 가졌는데, 외양은 길이 58㎞의 거대한 시가(담배) 모양을 연상시킨다. 축구장 약 550개를 길게 이어붙인 길이다.

이 설계는 1974년 제라드 오닐 프린스턴대 교수가 제안한 원통형 우주 거주지 ‘오닐 실린더’에서 영감을 받았다. 크리살리스 팀은 오닐 실린더의 핵심 원리인 원심력 기반 인공중력 생성 기술을 토대로 회전 안전성과 공간 효율성을 높인 정교한 설계를 완성했다. 심사위원단은 보도자료를 통해 “모듈형 거주 구조 설계와 높은 시스템 통합성, 우주항해 임무 준비까지 고려한 높은 완성도가 인상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쌍륜 모양부터 해파리 모습까지

성간연구이니셔티브(i4is)가 주최한 유인 항성간 여행을 위한 설계 공모전에서 2위를 차지한 WFP 익스트림 팀의 작품. 쌍륜 모양이다. / i4is

이번 대회 2위는 폴란드의 ‘WFP 익스트림’ 연구팀이 차지했다. 직경 약 500m의 회전 링 두 개가 중앙 코어를 중심으로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도는 독특한 구조다. 시사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했던 쌍륜(雙輪) 우주정거장의 우주선 버전으로 평했다. 거주 공간은 여섯 개의 ‘동네’로 나뉘어 주거·업무·사회 공간을 배치됐다. 링과 코어는 엘리베이터와 보행 통로, 러닝 트랙 등으로 연결돼 공동체 간의 이동과 교류가 원활하도록 했다. 승무원의 복장이나 종교적 의례 공간까지 세심하게 설계한 것도 특징이다. 심사위원단은 “(우주선 내부의) 문화적·사회적 차원까지 고려한 섬세하게 발전된 아이디어”라고 평했다.

성간연구이니셔티브(i4is)가 주최한 유인 항성간 여행을 위한 설계 공모전에서 3위를 차지한 프록시뮴. 해파리를 닮은 모습이다. / i4is

3위는 캐나다·인도 등 다국적 연구진이 참여한 ‘프록시뮴(Proximum)’팀이 차지했다. 외형은 해파리를 닮았다. 소행성 내부를 파내 비운 뒤 껍질을 우주선 머리 부분의 외벽으로 활용해 방사선과 미세 운석을 차단한다. 그 안쪽에는 도넛 모양의 거주 공간 두 개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며 원심력으로 인공중력을 만든다. 자연에서 착안한 설계 기법인 ‘바이오미믹리(biomimicry)’를 적용해 구조적 안정성과 효율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i4is 안드레아스 하인 전무이사는 “프로젝트 하이페리온은 단순한 디자인 공모전이 아니라 언젠가 인류가 별로 향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더 큰 실험의 일부”라며 “자원이 극도로 제한된 환경에서 문명이 어떻게 살아가고, 배우고, 진화할 수 있을지를 상상하는 작업이자 지구의 미래를 바라보는 데에도 귀중한 통찰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참가자들에게 건축, 기술, 사회 시스템을 통합해 수 세기에 걸쳐 지속 가능한 사회를 구상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결과는 기대를 훨씬 뛰어넘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