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하는 K팝 걸그룹 '헌트릭스'의 멤버 조이, 루미, 미라(왼쪽부터)의 모습. 극중에서 이들은 노래의 힘으로 악귀를 물리치는 사냥꾼으로 등장한다. 이들이 부른 K팝 '골든'은 빌보드 '글로벌200'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넥플릭스 코리아

전 세계가 K팝에 빠졌다. K팝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는 지난달 공개 이후 넷플릭스 영화 부문 글로벌 1위를 차지하며 흥행 돌풍이다. 걸그룹 블랙핑크의 신곡 ‘뛰어(JUMP)’는 11일 발매되자마자 신드롬이다. 세계 최대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의 ‘데일리 톱 송 글로벌’ 차트에 공개 이틀 만에 1위에 올랐다. 블랙핑크는 지난 12~1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파이 스타디움 양일 매진, 총 10만명 관객 동원이란 최다 관객 동원 신기록을 세웠다.

지난 5일 경기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걸그룹 블랙핑크의 월드투어 콘서트 '데드라인' 공연 모습. 지난 5~6일 양일간 총 7만8000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YG엔터테인먼트

미국이 블랙핑크에 빠져있을 때 독일에선 걸그룹 아이브가 세계적 뮤직 페스티벌 ‘롤라팔루자 베를린’ 무대에 올라 관객을 열광시켰다. K팝 가수들이 세계 곳곳의 대형 무대를 휩쓸며 ‘지구본을 찢었다’는 표현까지 나왔다. K팝 강진은 방탄소년단(BTS)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이른바 군백기(군 복무에 따른 공백기)를 마친 BTS는 지난 1일 약 2년 10개월 만에 팬들과 소통하는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며 내년 봄 앨범 공개를 예고했다. 이날 30분 동안 진행된 라이브 방송 실시간 총재생 수만 730만회를 넘겼다.

그래픽=김현국

바야흐로 K팝 황금기다. 동남아와 남미 청소년이 한국 아이돌 춤을 따라 추고, 미국 어린이들이 한국어로 노래 부르는 건 일상이 됐다. 중국 베이징은 물론 프랑스 파리의 백화점 LED 광고판에도 BTS의 생일 축하 영상이 흘러나온다. 한국을 찾은 전 세계 관광객은 ‘K팝 데몬 헌터스’ 속 장면을 찾아 남산과 종로로 몰려든다. K팝은 글로벌 한류의 파고를 높인다. 뉴욕타임스는 “한류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화장품부터 음식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유·무형 자산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고 했다.

K팝이 문화적 열기를 넘어 막강한 경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K팝 골드 러시’ 역시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WEEKLY BIZ는 ‘K팝 원론’을 집필한 노마 히데키 전 도쿄외국어대 교수와 제나 깁슨 워싱턴DC 한미경제연구소(KEI)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샘 리처드 건국대 석좌교수(펜실베이니아주립대 사회학과) 등 국내외 석학들과 함께 K팝이 가져온 경제적 파급 효과를 다각도로 분석했다.

그래픽=김현국

◇K팝이 불러온 대박 효과

K팝은 단순한 음악 장르를 넘어 이미 하나의 산업이다. 반짝 유행일 줄 알았던 K팝의 인기가 꺾이지 않으며 한국의 음악 산업 수출액은 고속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23년 한국 음악 산업 수출액은 12억2253만달러(약 1조7000억원)로, 10년 전인 2013년(2억7732만달러)에 비해 4.4배 수준이 됐다. 이 같은 수출 증가세를 감안하면 올해 음악 산업 수출액은 2조원을 훌쩍 넘어설 것이란 게 업계 전망이다. 이는 현대자동차의 고급 세단 제네시스 G80을 2만5000대 이상 판매한 것에 맞먹는 수치다. K팝 가수의 콘서트나 팬미팅, 페스티벌 등 온·오프라인 공연·행사 시장을 중심으로 한 K팝 이벤트 시장 규모도 폭발적 성장을 예고하고 있다. 얼라이드 마켓 리서치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K팝 이벤트 시장은 2021년 81억달러에서 연평균 7.3%씩 성장해 2031년 200억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픽=김의균

대표적인 K팝 아이콘인 BTS는 이미 수십 개 중견기업이 내는 생산 유발 효과를 창출한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이 2018년 내놓은 ‘BTS의 경제적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BTS가 한 해 활동으로 관광·유통·미술 등 국내 각 생산 분야에 유발한 효과는 연평균(2013~2017년 기준) 4조1400억원에 이른다. 중견기업 평균 매출액의 26배 수준이다. 여기에 BTS의 연평균 부가가치 유발 효과(1조4200억원)까지 합친 연간 경제 효과는 5조5600억원에 이른다. 이 분석이 나오고 7년이 흘러 BTS의 위상이 더욱 견고해진 만큼 경제적 파급 효과는 더 막강해질 전망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가장 영향력 있는 K팝 아이돌의 복귀는 한국의 소프트파워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킬 것”이라며 “(이들의 복귀가) 한국의 다른 산업 수출에도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멤버 전원이 군 복무를 마친 BTS는 내년 봄 컴백을 예고했다. /연합뉴스

더구나 최근 K팝의 경제적 효과를 증폭시키는 주인공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다. K팝 수퍼스타이자 악령 사냥꾼인 걸그룹 ‘헌트릭스’가 노래의 힘으로 악귀로부터 인간 세상을 지킨다는 게 영화의 핵심 줄거리다. 그런데 이 애니메이션의 인기에 힘입어 오리지널 사운드트랙(OST) 앨범에 수록된 ‘골든’이 빌보드 글로벌 차트 1위, 스포티파이 미국 ‘데일리 톱 송’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글로벌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애니메이션과 OST의 흥행은 K팝을 넘어 한국 음식과 관광, 문화 상품 등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 붙고 있다. 정지혜 DS투자증권 연구원은 ‘K팝 데몬 헌터스 인기가 증명한 가능성’ 분석 자료에서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한국 음식, 선후배·팬덤 문화, 무속 신앙과 저승사자와 같은 한국적 요소들이 글로벌 무대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콘텐츠임이 증명됐다”면서 “작중 아이돌 그룹인 ‘헌트릭스’ ‘사자보이즈’에 대한 글로벌 팬덤 형성으로 버추얼 아이돌 시장 성장도 기대된다”고 했다.

그래픽=김현국

◇K팝의 경제학① 팬덤, 충성 소비자로

K팝의 강력한 동력은 팬덤이다. K팝 성장 역사에서 팬덤은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 K팝이란 산업의 글로벌 성공을 견인한 핵심 주체로 평가받는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1990년대 초 서태지와 아이들의 팬클럽을 계기로 조직적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한국의 팬덤 문화는 2010년대 들어 스타의 이미지를 관리하고 확산하는 일종의 매니지먼트 역할까지 수행하게 됐다. 이후 K팝 팬덤의 영향력은 소셜미디어와 디지털 플랫폼 확산으로 날개를 달았다. 리처드 교수는 “소셜미디어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던 바로 그 시기에 K팝을 통해 ‘한국 문화’가 전 세계에 소개됐다. 기술적 접점을 통해 문화 확산이 기가 막히게 이뤄진 셈”이라고 했다. 이때부터 전 세계로 확장된 팬덤은 K팝 음반을 구매하고, 한국어 가사를 공부하며, 한국 제품을 써보고, 한국 관광에 나서는 충성스러운 K콘텐츠 전도사가 됐다.

그래픽=김현국

이제 전 세계 K팝 팬덤 숫자는 한국 전체 인구를 넘어설 정도다. 한국국제교류재단(KF)이 발표한 ‘2023년 지구촌 한류 현황’에 따르면 2012년 926만명이었던 전 세계 한류 팬은 2023년 2억2500만명으로 24배나 급증했다. 이 가운데 K팝 팬만 75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깁슨 디렉터는 WEEKLY BIZ에 “K팝 팬덤의 특징은 ‘참여에 기반한 소비’”라며 “이들은 한국 관광을 비롯해 한국 화장품과 패션 등 다방면에서 한국 제품 소비에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K팝 팬덤은 미국 팝 팬덤과 비교해 훨씬 넓은 소비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면서 “이들이 창출하는 한국 내 일자리 창출 효과도 긍정적”이라고 했다.

그래픽=김현국

실제로 한 번이라도 K콘텐츠를 접해본 외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인식도 해마다 커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한국 콘텐츠를 경험한 이들의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2020년 58.8%에서 지난해 67.1%로 8.3%포인트 늘었다. 같은 기간 한국산 제품·서비스에 대한 구매 의향이 있다는 이들의 비율도 44.1%에서 58.9%로 14.8%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K팝의 경제학② 韓 브랜드 가치 올려

K팝의 세계적 확산은 한국이란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끌어올려 한국산 제품의 매력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냈다. K팝 팬층이 두꺼워질수록, 한국산 제품에 대한 소비자 호감도도 함께 높아지는 ‘원산지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뜻이다. 고려대 경영대 소속 연구자 위안야위의 ‘K팝이 한국 브랜드 판매에 미치는 영향 평가: 미국 시장 자동차 사례를 중심으로’란 논문에 따르면 미국 주(州)별로 비교해 싸이나 BTS 등 K팝에 대한 관심이 높은 주일수록 한국산 자동차 판매가 의미 있게 높아지는 원산지 효과가 관찰됐다.

화장품도 예외가 아니다. K팝 스타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지고 이들의 외모와 화장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미국 시장에서 한국산 화장품 판매는 프랑스산을 넘어섰다. 미국국제무역위원회(USITC)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대미 화장품 수출액은 17억100만달러로, 프랑스(12억6300만달러)를 제치고 미국 시장 1위를 기록했다.

K팝의 세계적 확산 여파가 제품별 수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분석한 자료도 나와 있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의 ‘K콘텐츠 수출의 경제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K팝 수출이 1억달러 증가할 경우 관련 소비재 수출은 약 22억달러, 화장품은 2억4000만달러, 가전·휴대전화는 19억달러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문화 콘텐츠가 한류 확산을 넘어 전방위적인 산업 성장의 촉매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그래픽=김현국

리처드 교수는 “BTS와 블랙핑크와 같은 K팝 스타는 한국을 연상할 때 떠오르는 대표 이미지가 됐다”며 “(OTT나 각종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이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까지 늘면서 전 세계인이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와 제품을 소비하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K팝의 경제학③ 수퍼 IP로 진화

K팝은 음악 장르를 넘어 진화하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서사 중심의 지식재산권(IP) 기반 사업으로 확장하는 흐름이 대표적이다. 단순히 음반을 파는 것을 넘어, 웹툰·게임·드라마·굿즈·공연 등으로 IP를 확장하는 수익 모델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업계 관계자는 “특히 최근엔 무한 확장이 가능한 ‘수퍼 IP’ 확보에 집중하는 곳이 많다”고 했다. 할리우드 마블 스튜디오가 아이언맨, 헐크 등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묶어 ‘어벤저스’ 시리즈를 내고 관련 전시와 각종 캐릭터 사업 등까지 외연을 확대하는 게 수퍼 IP 모델의 대표 사례다. 이처럼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도 K팝 외연 확장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뜻이다.

예컨대 하이브는 아이돌 그룹 엔하이픈과 연계해 ‘다크문: 달의 제단’이란 웹툰 연재에 나섰다. 지난 10일 기준 이 웹툰 누적 조회 수는 2억뷰를 달성했는데, 이는 미국과 프랑스, 독일 등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결과란 분석이다. BTS IP를 활용한 아이돌 게임 ‘BTS 월드’도 비슷한 사례다. BTS 월드는 글로벌 176국에 14개 언어로 출시돼 1600만 다운로드 수를 기록하는 등 아이돌 게임으로는 최고 성적을 거뒀다. 이처럼 아이돌 세계관을 바탕으로 영화, 드라마, 웹툰, 캐릭터 사업 등에 응용할 수 있는 수퍼 IP가 향후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핵심 성장축이 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마치 ‘스위프트노믹스’처럼

전문가들은 미국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만들어낸 ‘스위프트노믹스(스위프트 경제학)’처럼, K팝 역시 그에 준하는 경제적 파급력을 지닌 만큼 마케팅 전략의 확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스위프트는 2023년 3월부터 시작해 지난해 연말까지 이어진 ‘디 에라스(The Eras) 투어’를 통해 콘서트가 열린 전 세계 도시마다 관람객을 몰고 다녔고, 티켓 판매는 물론 굿즈, 숙박, 교통 등 관련 소비를 촉진하며 지역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해당 투어의 총수입은 20억달러를 넘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K팝이 황금기를 맞은 지금, 공연장 등 관련 인프라를 적극 확충해 경제적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생각이다.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최근 인기인 ‘K팝 데몬 헌터스’엔 K팝 공연 문화를 넘어 한국 음식과 관광지 등 다양한 관광 상품 요소가 종합 선물 세트처럼 녹아 있다”면서 “이처럼 K팝이 유발하는 소비 동력을 고려할 때 대규모 K팝 공연장 도입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K팝의 ‘전략적 포지셔닝’을 유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마 전 교수는 “K팝 인기의 원동력은 기존 팝 문화의 획일성에 반하는 ‘다양성’”이라며 “이 가치를 이어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예컨대 태국 출신 멤버 리사가 속한 블랙핑크나 다국적 멤버로 구성된 걸그룹 하츠투하츠처럼 글로벌 현지화를 통해 각국 팬층과의 정서적 거리를 좁히는 포지셔닝을 하란 뜻이다.

리처드 교수는 K팝을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한국의 ‘소프트 파워’로 재정의하며 이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라고 강조한다. 그는 “한류(韓流)는 ‘파도’가 아니라 ‘쓰나미’에 가깝다”며 “쓰나미는 해안에 도달할 때까지 존재를 인식하기 어렵듯, K컬처도 어느 순간 전 세계를 휩쓸었다. 이제 이 막강한 소프트 파워를 한국 제품에 결합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