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백형선

“미국이 매긴 높은 관세와 계속 바뀌는 무역(관세) 정책이 초래한 불확실성 때문에 올해 세계 무역 성장률은 3%포인트 가까이 추락할 겁니다.”

자유무역의 최후 보루라 할 수 있는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연구 조직을 총괄하는 경제학자는 글로벌 무역을 망가뜨리는 주범으로 미국의 ‘관세’와 관세 정책의 ‘불확실성’을 동시에 지목했다. 랄프 오사 WTO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7일 WEEKLY BIZ와 화상으로 만나 “올해 세계 상품 무역량이 지난해 대비 0.2% 감소할 전망”이라며 “고율 관세와 관세 정책의 잦은 변경에 따른 불확실성 때문에 종전 전망치(2.7% 증가)에서 2.9%포인트 하향 조정됐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 때문에 세계 각국이 수출을 7085억달러(약 980조원) 늘릴 기회를 날려버리게 됐다는 뜻이다.

트럼프가 지난 1월 취임한 이후 내놓은 과격한 관세 정책은 국제 무역의 판도를 송두리째 뒤집어 놓고 있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높은 세율’만으로도 기업에 부담이지만, 무엇보다 예고 없이 자주 바뀌는 정책 방향이 더 문제로 꼽힌다. 오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무역량 감소의 4분의 3은 관세 인상 때문이지만, 나머지 4분의 1은 정책의 불확실성 때문”이라며 “무역 정책의 불확실성이 국제 무역에 해롭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수없이 많이 나와 있다”고 했다. 실제로 애플과 테슬라 같은 미국 대기업 경영진도 실적 발표회에서 “앞으로 관세 정책이 어떻게 바뀔지 도저히 예측할 수 없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랄프 오사 세계무역기구(WTO) 수석 이코노미스트/WTO 제공

오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런던정경대(LSE)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프린스턴대, 시카고대 등에서 자유무역의 효과와 무역 전쟁의 경제적 손실을 연구해온 무역 전문가다. 2023년 1월부터 WTO 내 연구 조직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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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경우 올해 무역 0.8% 줄어

-올해 글로벌 무역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고 있나.

“높은 수준의 관세와 이를 둘러싼 불확실성 때문에 올해 상품 무역 규모는 지난해보다 0.2% 감소할 전망이다. (미국 정부의 고율 관세 부과 같은) 무역 정책의 변화가 없었다면 올해 2.7% 성장을 기대했는데, 전망치를 3%포인트 가까이 낮추게 됐다. 이 수치는 지난달 14일 기준 시행 중인 관세를 기준으로 산출됐다. 만약 미국 정부가 유예한 상호 관세가 실제로 발효된다면, 올해 무역량은 지난해 대비 0.8% 감소할 수 있다. 무역량 감소는 결국 세계 경제성장의 둔화로 이어진다. WTO가 예측한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은 2.2%로, 이는 종전 예측보다 0.6%포인트 하향 조정된 수치다.”

트럼프의 과격한 관세 정책 때문에 각국이 보는 피해는 작지 않다. 지난해 상품 수출 규모는 24조4310억달러에 달했다. 무역 증가율이 2.9%포인트 낮아지는 건, 본래대로라면 상품 무역량이 7085억달러 늘어날 기회를 잃게 된다는 의미다. WTO가 상정한 최악 시나리오대로 무역 증가율이 3.5%포인트 낮아진다면, 피해 규모는 8551억달러에 이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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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무역을 위축시키는 세부적인 요인은.

“무역량을 가장 직접적으로 줄이는 요인은 관세다. 무역량 감소 요인을 쪼개서 보면 4분의 3은 관세 인상의 영향이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관세를 포함한 여러 무역 정책의 잦은 변경에 따른 불확실성의 부정적인 영향이 나머지 4분의 1을 차지한다. 국제 무역에서 예측 가능성은 매우 중요하다. 무역은 초기 고정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기업 활동이기 때문이다. 이에 기업들은 해외시장에 진출하기 전에 그 국가의 정책과 소비자 취향을 면밀히 조사한다. 하지만 무역 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지면 기업은 해외시장 개척을 꺼릴 수밖에 없다. 무역 정책 불확실성은 경제 전반의 불확실성까지 키운다. 결국 기업의 투자나 소비자 심리도 위축되고, 이는 다시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미국 정부의 요동치는 관세 정책은 글로벌 무역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달 주요 무역 상대국에 대한 상호 관세를 발표했다가 90일 동안 유예하기로 했다. 또한 미국은 지난 12일 중국산 제품에 부과하는 145%에 달했던 추가 관세를 30%로 낮추기로 했다. 중국 역시 미국산 제품에 대한 125%의 추가 관세를 10%로 내리기로 했다. 다만 양국이 발표한 관세 인하 조치는 모두 ‘90일 유예’란 조건이 붙어 있다. 유예 기간이 끝난 이후 관세가 다시 얼마나 뛰어오를지는 미지수다. 이처럼 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기업들은 수입·수출 신규 주문을 주저하게 되고, 그 결과 세계 무역량도 줄어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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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는 얼마나 큰 영향을 받을까.

“한국처럼 무역 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규칙 기반의 글로벌 무역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타격을 더 크게 받을 수 있다. WTO는 개별 국가 차원의 무역량이나 경제성장률 변화 전망치는 산출하지는 않는다. 다만 올해 한국이 속한 아시아 지역의 수출·수입은 각각 1.6% 증가하는 데 그칠 전망이다. 최근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 등으로) 무역 환경이 크게 바뀌면서 수출 증가율은 1.7%포인트, 수입 증가율은 1.6%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美·中 교역은 전 세계 무역의 3% 불과”

-미·중 무역 충돌에도 자유무역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이 전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약 3% 수준이다. 두 국가 사이의 무역 마찰이 가져오는 파급력을 과소평가하려는 의도는 없지만, 이들의 무역 갈등이 세계 무역 전체를 좌우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만약 미국과 중국이 서로 각각 145%, 125%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면, 양국 사이 무역량은 80%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이다. 하지만 양국 간의 무역 단절의 여파는 세계 무역 전체로 보면 제한적이다. 또한 미국의 수입은 전 세계 수입의 13% 정도고, 나머지 수입품에 대한 수요 87%는 다른 국가에서 나온다. 세계 무역 무대는 매우 거대하다. 미국과 하는 무역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외 다른 국가와 협력해 자유로운 무역을 이어나가는 일 역시 매우 중요하다.”

-현재 WTO는 어떻게 기능하고 있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현재 WTO 시스템은 잘 작동하고 있다. 지난 1월 전 세계 무역의 80% 이상이 WTO 규정에 따라 ‘최혜국 관세(다른 국가와 차별 없는 수준의 관세)’를 적용받으며 이뤄졌다. 최근에는 이 비율이 74%까지 다소 낮아지긴 했지만, 현재처럼 무역 정책의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시기에도 여전히 대부분의 무역이 WTO의 규범을 지키며 이뤄지고 있다.”

-WTO 체제는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을까.

“나는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WTO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글로벌 무역을 뒤흔드는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선 WTO 체제 안에서 규칙에 기반한 다자 무역이 작동해야 한다. 물론 지금의 WTO 체제가 완벽한 것은 아니며, 개선이 필요하다. 다만 (미국의 일방주의적 무역 정책이 촉발한) 최근 위기 국면을 계기로 개혁을 추진할 수 있길 바란다. 국가 간 신뢰를 바탕으로 한 다자 무역 시스템이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점은 분명하기에 이를 지켜내야 한다.”

◇“일자리 감소, 기술 발전 영향”

-저임금 개발도상국과 하는 무역이 선진국의 제조업 일자리를 파괴한다는 지적은 어떻게 생각하나.

“무역이 선진국 노동시장에 충격을 준 건 사실이다. (인건비가 낮은 개도국과 무역이 확대되면 고임금 국가의 노동 집약적 산업은 경쟁력을 잃게 된다.) 하지만 무역보다는 기술 발전이 (생산 공정 자동화 등을 통해) 선진국 노동시장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자유무역의 확대로 제조업 근로자들이 비참한 삶을 살아가게 되고, 빈부 격차가 커졌다는 건 과잉 해석이다. 무역에 대한 개방성과 경제적 불평등의 명확한 상관관계가 증명된 바 없다.”

-무역 확대에 따른 제조업 일자리 감소에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적절한 노동시장 정책이 핵심이다. (개도국 기업과 벌인 경쟁에서 밀린 산업 부문의) 근로자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이들이 새로운 일자리에 필요한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돕는 정책도 필요하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적절한 정부의 대응만 이뤄진다면 무역 확대로 특정 계층의 경제적 기반이 무너지고, 불평등이 확대되는 부작용은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

-관세와 같은 정책이 미국인들의 삶을 낫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관세가 불러오는 가격 상승은 저소득층 가계에 더 큰 타격을 준다. 이는 미국뿐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저소득층 가구는 가처분 소득 중 큰 비율을 무역이 가능한 상품을 구매하는 데 사용한다. 대표적인 게 저렴한 수입 식료품이다. 반면 고소득층은 무역이 불가능한 서비스에 더 많은 돈을 쓴다. 무역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고급 식당의 음식과 서비스 등에 돈을 쓰는 것이다. 관세 때문에 상품 가격이 오르면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이 더 영향을 받는 건 이 때문이다.”

◇“자유무역의 이점은 한국이 증명”

-자유무역이 유지되어야 할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기본적인 분업 원리에서 출발한다. 내가 모든 것을 스스로 만들어서 소비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내일 입을 셔츠를 직접 만들고, 빵도 직접 구워 먹고, 살 집까지 각자 지어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이처럼 비효율적인 일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서로 가장 잘 만드는 걸 제작해서 교환하는 분업 시스템을 구축하게 됐다. 무역이란 이러한 분업을 국경 너머로 확대한 것이다. 나와 이웃이 각자 잘 만드는 물건을 교환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와, 한국과 미국이 무역을 통해 이득을 얻는 구조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크게 위축된 자유무역 시스템이 회복될 수 있을까.

“나는 자유무역 체제의 회복 가능성에 대해 비교적 낙관적이다. 자유무역이 유지될 때 모든 국가가 분명한 혜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자유로운 무역을 통해 빠른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한국뿐 아니라 여러 나라가 자유로운 무역을 통해 빠른 경제성장을 달성하면서 적어도 수억 명이 빈곤에서 탈출했다. 이 과정에서 국가 간 경제 격차도 줄어들 수 있었다. 한국 경제가 증명한 것처럼 자유무역은 분명한 이점이 있어서 포기해야 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