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의균

#1. 룩셈부르크 개인정보보호당국(CNPD)은 지난해 7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 유럽법인에 7억4600만유로(약 1조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했다. 지난 2018년 5월 EU(유럽연합)의 강화된 개인정보보호법(GDPR)이 시행된 이후 부과된 과징금 중 최고액이다. CNPD는 온라인 사용 패턴에 따라 광고를 추천하는 아마존의 표적 광고 서비스가 이용자의 충분한 동의 절차 없이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유럽 시민의 데이터 활용 시 기업들이 지켜야 할 의무가 가득 담긴 GDPR은 위반하는 기업에 전 세계 연간 매출의 최대 4%까지 과징금을 매길 수 있다고 규정해 대표적인 빅테크 규제 법안으로 꼽힌다. 상상도 못한 거액의 과징금에 놀란 아마존은 “룩셈부르크 당국이 GDPR을 주관적으로 해석한 것”이라며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2. 그로부터 한 달 뒤인 작년 8월, 바다 건너 한국에선 구글이나 애플 같은 앱 스토어 사업자의 ‘인앱(In App) 결제’를 규제하는 법안(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세계 최초로 국회를 통과했다. 인앱 결제는 게임이나 음악, 웹툰 등 앱에서 유료로 상품이나 서비스 구매 시 구글 또는 애플이 제공하는 결제 시스템만 쓰도록 강제하는 방식으로, 두 기업은 결제 과정에서 최대 30%의 수수료를 떼어가 앱 개발자들의 원성을 들어왔다. 구글과 애플의 갑질을 끊겠다는 취지의 이 법안에 대해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무역장벽 보고서를 통해 자국 빅테크 기업을 겨냥한 “디지털 무역 장벽”이라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컴퓨터 기반의 4차 산업혁명 시대 미국 빅테크의 독주가 가속화되자 세계 각국이 다양한 방식으로 디지털 무역 장벽을 쌓아올리고 있다. 자국 산업이 성장할 시간을 벌고 디지털 경제 패권을 되찾아올 반격의 기회를 마련하겠다는 심산이지만, 전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를 부추겨 결국엔 부메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두 배 급증한 디지털 무역 장벽

과거 디지털 무역이라 하면 아마존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한 상품 구매 같은 전자상거래에 그쳤다. 하지만 이제는 포털 사이트와 클라우드(원격 컴퓨팅) 서비스 같은 디지털 인프라부터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같은 디지털 미디어 등 국경을 오가는 데이터 이동과 지식재산권(콘텐츠 또는 소프트웨어)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됐다. 가령, 구글 검색도 IP 주소와 검색 기록 같은 데이터가 해외 서버로 이동하는 만큼 디지털 무역으로 분류된다.

특히 데이터 전송량은 신종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을 거치면서 대폭 늘어났다. 원격근무가 보편화되고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수요가 커지는 등 대대적인 디지털 전환이 산업 분야를 막론하고 이뤄지면서 데이터 흐름이 거세진 것이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2022년 한 해 동안 발생한 전 세계 인터넷 트래픽은 2016년까지 발생한 누적 인터넷 트래픽을 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글로벌 싱크탱크 연합체인 세계무역혁신정책연합(GTIPA)은 현재 전 세계 GDP(국내총생산)의 25%가 이런 디지털 경제의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했는데 앞으로 50%까지 늘 수 있다고 내다봤다.

데이터 중심의 디지털 경제가 세계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으면서, 최근 디지털 무역 장벽도 데이터 흐름에 대한 규제에 집중되고 있다. 미국의 IT 정책 전문 싱크탱크 정보기술혁신재단(ITIF)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시행 중인 데이터 관련 규제는 작년 기준 62국 144개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4년 전(2017년 기준 35국 67개 조치)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이다.

대표적인 것이 데이터 현지화(Data Localization)다. 한 국가에서 발생한 데이터는 해당국 내에서 저장·처리돼야 한다는 내용으로, EU를 비롯해 중국, 러시아, 인도, 브라질, 터키, 인도네시아 등 여러 국가가 비슷한 규제를 도입했다. 가령, 중국 IT 기업 바이트댄스를 모기업으로 둔 글로벌 소셜미디어 틱톡이 4억2000만유로(약 5600억원)를 들여 내년 초 가동을 목표로 아일랜드에 새 데이터센터 건립에 나선 것도 이 규제 때문이다.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사용자만 10억명에 달하는 틱톡은 그간 미국과 싱가포르에 해외 이용자 데이터를 저장해왔다. 하지만 EU의 GDPR 시행 등 해외로 데이터 이전을 제한하는 규제가 강화되자 유럽 사용자들의 데이터를 저장할 서버를 유로존 내 마련하기로 한 것이다. 틱톡의 유럽 지역 개인정보보호책임자인 일레인 폭스는 “지역 외부의 데이터 흐름을 최소화할 것”이라며 “데이터 거버넌스에 대한 이런 지역적 접근 방식을 통해 우리는 유럽 데이터 주권 목표에 부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작년 10월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총회에서 전 세계 136국이 최종 합의해 내년부터 시행되는 디지털세(稅) 역시 새로 등장한 디지털 무역 장벽의 일종이다. 해외에 물리적 사업장이 없어도 매출이 발생한 곳에서 세금을 부과한다는 원칙에 따라 글로벌 매출 200억유로(약 26조7000억원) 이상, 이익률 10% 이상 기업에 세금을 부과한다. 미국 빅테크가 주요 과세 대상이어서 ‘구글세’라고도 불린다.

◇중국 따라 미국 빅테크 견제 나서

디지털 무역 장벽의 선봉은 중국이다. 중국은 2017년 6월부터 시행한 사이버보안법 등을 통해 국경 간 데이터 이전을 적극 제한해왔다. 국영기업 통신 사업자를 통해 외국의 IP 주소와 URL에 대한 접근을 통제해 외국 기업의 무역·투자 활동을 제한하는 방식이다. 이른바 ‘만리 방화벽(Great Firewall)’으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지난 1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1000개 주요 웹사이트와 소셜미디어 중 170여 개가 중국에서 차단돼 이용할 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에는 유튜브와 페이스북, 왓츠앱, 트위터, 구글, 아마존 등이 포함됐다. 이효영 국립외교원 경제통상개발연구부 교수는 “중국의 인터넷 규제 정책 시행 결과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에 대한 자국민 서비스 접근을 제한하면서 바이두, 텐센트, 알리바바 등 중국의 국내 디지털 산업이 급성장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분석했다.

그러자 EU를 비롯한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무역 장벽을 쌓아 미국 빅테크 견제에 나선 것이다. ‘FAANG(페이스북·애플·아마존·넷플릭스·구글)’으로 대표되는 미국 빅테크들은 온라인 플랫폼을 앞세워 전 세계에 진출한 뒤 절대적인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1일 기준 세계 10대 인터넷 기업 중 시가총액 상위 5개 기업이 미국 기업이다. 전 세계 디지털 무역을 뒷받침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및 플랫폼 시장도 미국 기업들이 독차지하고 있다. 데이터 생태계를 구축하는 클라우드 서비스 시장을 살펴보면 아마존(AWS)과 MS, 구글 등 미국 3개 기업이 차지하는 시장 점유율이 60% 이상이다.

이를 보고만 있을 수 없던 각 나라들이 꺼내든 비수가 디지털 무역 장벽이다. 효과는 즉각적이다. EU 회원국들은 GDPR 법 시행 후 지난달까지 총 1058건의 과징금 부과했는데, 누적 부과액만 16억2474만유로(약 2조1600억원)에 달한다. 아마존과 메타, 구글 등이 주요 표적이다. 메타는 지난 2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용자 데이터를 전송할 수 없게 된다면 유럽에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포함한 다수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게 될 것 같다”며 북미 시장 다음가는 유럽에서 철수할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불만 높아지는 미국

자국 기업 견제에 미국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는다. 지난 3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현재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 중인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간 망 사용료 소송을 디지털 무역 장벽으로 규정하며 “한국의 입법 노력을 계속 감시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두 회사는 ‘통신망 이용료를 누가 내느냐’를 놓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는데, 과도한 트래픽(데이터 전송량)을 이유로 넷플릭스에 통신망 이용료를 부담시키는 건 차별이라는 게 미국 정부의 주장이다. 미국 상공회의소는 “디지털 무역 장벽이 확산하고 있다”며 “디지털 보호주의 확산을 억제하지 못한다면 (기업들의) 세계 시장 진출 기회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했다.

빅테크에 대한 견제가 계속될 경우 미국 정부가 다양한 방식으로 보복 조치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또 데이터 흐름을 막고 글로벌 기업들을 집중 타격하는 디지털 무역 장벽이 결국에는 모든 나라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지난해 상반기 전자상거래로 수출하는 국내 기업 1029개 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평균 약 30%의 기업이 ‘데이터의 국경 간 이동 제한으로 사업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이 밖에 ‘소액 상품 및 전자적 전송물 과세’ ‘해당국 내 동종업체와 차별대우’ ‘소프트웨어 소스코드 공개 또는 수정 요구’ ‘해당국 이용자의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엄격한 규제’ 등 업종별로 적게는 20%부터 많게는 70%가 넘는 기업들이 디지털 무역 장벽으로 인해 사업상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다.

한국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따르면, LG·SKT·네이버 등 EU 시장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은 프로젝트를 하나 진행할 때마다 GDPR이 요구하는 표준계약(SCC) 절차를 지키기 위해 적게는 3000만원에서 최대 1억원의 부대비용을 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SCC는 EU 집행위 또는 회원국 감독기구가 승인한 개인정보보호원칙, 내부 규율, 피해 보상 등 필수적인 조항을 계약서 형식으로 표준화한 것인데 절차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표준계약절차 자체가 어려워 EU 진출을 미리 포기하는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했다. 다행히 작년 12월 중순 한국이 데이터 전송에 있어 EU회원국에 준하는 자격을 갖춘 것으로 보는 ‘적정성 결정’을 받아 이런 문제가 일단락된 듯 하지만, 여전히 금융 부문 데이터는 전송 제한을 받고 있고 적정성 결정 역시 4년 마다 재심사를 받아야 하기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구글세의 유탄도 맞는다. 올해 예상 실적에 OECD 평균 법인세율(23%) 적용 시 삼성전자가 해외 국가에 내야 하는 세금은 1조449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당장은 한국 정부가 외국에 내는 세금만큼 국내 법인세에서 빼주기로 했지만, 2030년에는 디지털세 매출액 기준이 200억유로에서 100억유로로 낮아지며 과세 대상 기업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디지털 FTA로 돌파구 찾아야

높아지는 디지털 무역 장벽에 대항해 우선 미국이 주력하는 돌파구는 디지털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자국 빅테크를 지원하기 위해 미국은 우방국과 높은 수위의 디지털 FTA를 체결하며 세력을 넓히고 있다. 세계 최초의 독립적인 디지털 무역 협정으로 지난 2020년 1월부터 발효된 미·일 디지털무역협정(USJDTA)이 대표적이다. 그간 디지털 무역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신북미자유무역협정(USMCA) 등 일반 무역협정에서 전자상거래 챕터로 포함되는 경우가 전부였다.

USJDTA의 특징 중 하나는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ISP) 책임 면제 조항으로, 온라인 플랫폼상에 게재된 콘텐츠에 대해 플랫폼 기업의 책임을 묻지 못하게 한다. 최근 EU와 영국에서 미국 빅테크를 겨냥해 유해 콘텐츠에 대한 책임을 플랫폼 기업에 묻는 법안 도입이 추진 중인데, 강력한 우방인 일본과의 협정에선 자국에 유리한 조항을 밀어 넣은 것이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싱가포르는 지난 2020년 6월 뉴질랜드·칠레와 세계 최초로 다자간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을 체결한 데 이어 2개월 뒤에는 호주와 디지털경제협정(SADEA)을 체결해 데이터 산업 경쟁력을 도모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지난 2020년 6월부터 한국·싱가포르 디지털동반자협정(DPA) 협상을 개시했고, DEPA 가입도 추진 중이지만, 아직 가시적인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이규엽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신통상전략팀장은 “한국 입장에서 빅테크 강국인 미국과의 디지털 FTA는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면서 “싱가포르처럼 대등한 경쟁이 가능한 나라와 협정을 서둘러 산업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GDPR

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EU가 2018년 5월 25일부터 시행 중인 유럽의 개인정보보호통합법령. 위반하면 2000만유로(약 265억원)나 전 세계 연간 매출액의 4% 중 높은 금액을 과징금으로 물린다. 모든 외국 기업은 EU에 지사가 있건 없건 별도 허가 없이는 EU에서 수집한 개인 정보 자료를 역외로 반출할 수 없고, 고객이 원하면 삭제해야 한다.

☞표준계약(SCC)

Standard Contractual Clauses. EU집행위 또는 회원국 감독 기구가 승인한 개인정보보호원칙, 피해 보상 등 필수적 조항을 계약서 형식으로 표준화한 것으로, 해외 기업들이 EU 시민의 개인정보를 제3국으로 이전할 때 가장 널리 활용하는 수단이다. 다만 절차가 까다로워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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