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KOSA) 초청으로 처음 한국을 찾은 로버트 스미스 비스타 에쿼티 파트너스 회장이 WEEKLY BIZ 인터뷰에 응하며 자세를 잡고 있다. 그는 지난 2000년 비스타를 설립해 소프트웨어 분야 세계 3대 투자사로 성장시켰다. /김지호 기자

토마브라보, 실버레이크와 함께 소프트웨어 분야 세계 3대 투자사로 꼽히는 사모투자펀드(PEF) 비스타 에쿼티 파트너스(이하 비스타)를 이끄는 로버트 F. 스미스(60) 회장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1962년 미국 중서부 지역 도시 덴버의 교사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스미스 회장은 코넬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뒤 타이어 회사(굿이어)와 화학 기업(에어 프로덕츠)에서 화학 엔지니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컬럼비아대 MBA에 진학해 금융 및 마케팅 분야로 진로를 선회했고, 1994년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 입사해 비스타 설립 전까지 기술 분야 투자 업무를 담당하며 전문성을 키웠다. 2000년 비스타를 설립한 뒤로는 연평균 30%가 넘는 수익률을 내며 업계 평판을 쌓아나갔다. 지난해 투자자들에게 안긴 배당금만 74억달러(약 9조원)에 달한다.

그의 위상을 보여주는 명패는 많다. 피치북은 지난 2018년 그를 ‘최근 10년간 최고의 소프트웨어 투자자’로 선정했고, 2020년에는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포함됐다. 올해 기준 개인 순자산 67억달러(약 8조1500억원)에 달하는 그는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선정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중 최고 부자’이기도 하다.

스미스 회장은 요즘 각광받는 사스(SaaS) 산업을 일찌감치 눈여겨보고 20년 넘게 집중적으로 투자해온 선구자이기도 하다. 사스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oftware as a Service)의 약자로,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에서 운용되는 정기 구독 형태의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말한다. 신종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이후 재택근무가 일상이 되면서 기업들의 업무 핵심 도구로 자리 잡은 줌(Zoom)이나 업무용 메신저 슬랙(Slack) 등이 모두 사스로 분류된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전 세계 기업·소비자들의 사스 지출은 지난해 1455억900만달러(약 176조원)로 전년 대비 20.5% 증가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최근 국내에서도 디지털 전환의 첨병인 사스 산업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고 있다. WEEKLY BIZ가 최근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KOSA) 초청으로 처음 한국을 찾은 비스타의 설립자 겸 CEO(최고경영자) 스미스 회장을 만나 투자 비결과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의 전망을 물었다.

지난 2018년 3월 2일 자 포브스 세계 억만장자 특집호 표지 모델로 실린 로버트 스미스 비스타 에쿼티 파트너스 회장. 그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중 가장 부자로 꼽힌다. /포브스

◇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고 갑부 ‘비스타’ 스미스 회장 인터뷰 소프트웨어 산업, 마진율 95%에 재고도 없어

-현재 운용 중인 자본 규모와 포트폴리오가 궁금하다.

“현재 900억달러 수준으로 투자 중인 기업만 80곳이 넘습니다. ERP(전사적자원관리)와 CRM(고객관계관리)부터 마케팅 자동화, 농업, 헬스케어, 보험 등 투자한 기업들의 주력 분야는 제각각이지만 모두 기업용(B2B) 소프트웨어를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죠. 비스타 설립 후 지금까지 560번의 거래가 있었고 누적 투자액은 2000억달러(약 242조7000억원)를 넘습니다.”

2018년 19억4000만달러(약 2조3540억원)에 사들인 IT 비용 분석 소프트웨어 개발사 앱티오(Apptio), 이듬해 10억달러에 인수한 디지털 콘텐츠 관리 설루션 기업 액퀴아(Acquia) 등 비스타 포트폴리오에 담긴 회사들은 B2B 기업이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그러나 포천 100대 기업 중 앱티오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기업이 60%에 달하는 등 비스타가 사스 시장에서 가진 명성과 영향력은 높다.

특히 지난 2017년 마케팅 자동화 소프트웨어 기업 마케토(Marketo)를 17억9000만달러에 인수했다가 1년 뒤 어도비 시스템스에 47억5000만달러에 매각한 거래는 소프트웨어 투자 업계에서 비스타의 위상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 30억달러에 육박하는 매매 차익 덕분에 ‘올해의 거래’로 꼽혔을 정도다.

-왜 기업용 소프트웨어 기업에만 투자하나.

“대학을 졸업할 때쯤 컴퓨터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기업들은 컴퓨터를 활용해 복잡한 문제를 풀어가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산업 환경의 디지털화는 풀어야 할 숙제였습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생산성 있는 도구였고 매력적인 투자처였죠. 비스타는 대체투자를 통해 산업혁명을 지원하는 셈이죠. 심지어 소프트웨어는 제품만 개발되면 추가 제조·재고 비용이 들지 않는 마진율 95% 사업입니다. 비스타가 투자한 기업들의 투자자본수익률(ROI)은 보통 640%에 달하죠. B2B 기업에 집중하는 이유는 기업 간 거래가 신뢰를 중시하는 만큼 소비자를 상대하는 B2C 기업보다 일관성이 높고 변동성이 적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B2B 기업이 투자 안정성이 더 높다고 생각합니다.”

◇소프트웨어 기업은 치킨과 비슷

-투자 기업을 선정할 때 어떤 점을 주로 살피나.

“우리는 바이아웃(buy-out) 투자(지분 인수 후 경영 지원으로 기업가치를 높여 매각)를 주로 합니다. 증권 컨설턴트처럼 유망주를 찾기보단 (제품 개발과 판매 등) 함께 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투자 파트너를 찾습니다. 가장 먼저 살피는 건 실제 기업 고객을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는가입니다. 고정된 고객이 많다는 건 그 자체로 제품의 우수성을 보장하기 때문이죠. 여기에 그간 쌓아온 비스타의 노하우를 적용하면 장기적으로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할 수 있습니다.”

-인수 후 어떤 식으로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나.

“소프트웨어 기업은 치킨 맛이 납니다. 모두 다른 제품을 팔지만 맛은 거의 엇비슷한 느낌이죠. 예컨대 제품 개발부터 판매 마케팅, 품질 관리, 인사(HR) 등 소프트웨어 기업이 하는 일의 80%는 거의 같습니다. 우리는 함께 일하는 소프트웨어 기업이 80곳이 넘는다는 점을 충분히 활용합니다. 80개 기업이 있다는 건 각각 80명의 CEO와 CTO(최고기술책임자), CRO(위험관리책임자), COO(최고운영책임자)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들을 서로 연결해주고 교류하게 하는 방식으로 노하우를 전달합니다. 비스타만의 생태계를 만들어 확장시키는 방식이죠.

특히 소프트웨어 분야는 (실력 좋은 개발자같이) 유능한 인재 채용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국내외 인재를 선별하고 평가하는 나름대로 프로세스가 있는데 이를 활용해 사람을 선발하고 비스타 생태계 내에서 자유롭게 이직시킵니다. 여러 소프트웨어 기업을 돌며 실력을 쌓은 인재를 다시 흡수하는 방식으로 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것이죠.”

◇기업 가치 끌어올리는 비결은 생태계와 인재

-사모펀드는 흔히 차익 실현을 위해 단기 실적에 집중하느라 기업의 장기 성장 가능성을 희생시킨다는 비판이 있다.

“우리는 단기 이익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기업에 지속 가능성이 없으면 매각도 상장도 성사되지 않습니다. 물론 과거 사모펀드들이 수익성만 추구하다 보니 비용을 대폭 낮추거나 LBO(차입매수) 같은 금융공학적인 접근 방식을 많이 취했던 걸 압니다. 하지만 비스타는 오히려 연구·개발(R&D)이나 인재 채용 같은 분야에 예산을 20% 더 늘리는 등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기업 체질을 개선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기업이 부가가치를 얼마나 창출할 수 있는지에 집중합니다.”

스미스 회장은 특정 기업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비스타가 최대 매매차익(약 30억달러)을 거둔 마케토 역시 사모펀드 인수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과감한 투자로 짧은 기간 큰 폭의 경영 실적 개선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비스타는 당시 시장 가격에 64% 프리미엄(웃돈)을 얹어 마케토를 인수한 뒤 B2B 사스 분야 대기업으로 꼽히는 SAP의 경영진 스티브 루커스를 CEO로 영입해 전문 리더십을 강화했다. 아울러 신규 채용을 늘려 회사의 핵심 기술 경쟁력을 강화했다. 그 결과 인수 직전인 2016년 5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던 마케토의 EBITDA(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이익)는 이듬해 흑자로 전환해 성공적인 매각으로 이어지는 발판이 됐다. 포브스 분석에 따르면, 비스타는 투자금 회수(exit)까지 평균 4년 7개월을 보유하면서 투자 기업들의 EBITDA를 두 배로 늘렸다.

비스타가 경쟁력 있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고안한 신입 직원 교육과정(부트캠프)에도 스미스 회장의 철학이 담겨 있다. 2주면 마치는 일반적인 기업 프로그램과 달리 비스타 부트캠프는 졸업까지 6~9개월이 걸린다. 비스타는 이 부트캠프를 통해 3년간(2015~2018년) 1만2000명(포트폴리오 기업 기준)의 신규 직원을 채용했다.

◇한국도 잠재력 충분... 인재 육성에 공들여야

비스타의 투자는 그간 미국·영국·캐나다·호주 등 영미권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이번 방한을 계기로 한국 소프트웨어 기업에 대한 투자도 검토하기로 했다. 스미스 회장은 지난 29일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와 “한국 소프트웨어 기업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검토한다”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날 스미스 회장은 국내 기업과 비공개 간담회도 가졌다.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은 디지털 대전환과 맞물려 주목받는 시장입니다. IT가 발달한 나라인 만큼 사스 시장에서 잠재력이 대단할 거라 기대됩니다. 특히 해외에서도 일할 수 있는 뛰어난 인재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번 초청은) 현재 한국 소프트웨어 업계를 이끄는 대표 기업들과 스타트업까지 다양한 기업을 만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방한을 계기로 한국 기업들과 활발한 네트워킹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스 시장과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인가.

“B2B 사스 시장은 생태계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기업 역량 진단이 투자로 이어지고 정부 지원을 받아 인력을 육성하는 등 투자자와 기업, 정부와 노동시장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산업 측면에선 우선 인재 육성이 우선돼야 합니다. 현재 디지털 수요가 폭발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인재 채용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아주 많습니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정부가 나서 관련 인프라를 마련하고 정책적 부분과 함께 인센티브를 도입하는 등 인재 육성에 공을 들여야 합니다.

기업 입장에선 시장을 정확히 겨냥해야 합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은 적용 분야에 따라 다양하지만 각 분야는 가장 우수한 성과를 낸 기업이 시장 전체를 차지하는 승자독식 체제입니다. 고객 기업의 운영 방식을 정확히 꿰뚫고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지난해 발표한 ‘2021 클라우드산업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사스 기업 수는 2020년 기준 780개다. 매년 늘어나는 추세이긴 하지만 전 세계 사스 기업 수(약 2만5000개)에 비하면 3% 수준에 불과하다. 사스 기업의 60%(약 1만5000개)는 미국에 있다.

물론 한국인이 창업한 기업 중에서도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사스 기업들이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진출해 채팅 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에서 두각을 나타낸 센드버드, 모바일 애드테크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몰로코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나란히 유니콘(기업가치가 10억달러 이상인 비상장사) 반열에 오른 두 기업은 모두 B2B 전문 기업이다.

센드버드의 소프트웨어는 미국 최대 원격의료업체 텔라독헬스와 미국 3대 소셜미디어 레딧을 비롯해 국내 KB금융그룹과 신세계, 넥슨, 엔씨소프트 등 120여 기업에 적용되고 있는데, 올 1월 기준 이용자 수가 약 2억6000만명에 달한다. 몰로코의 인기 역시 만만치 않다. 삼성 갤럭시, 배달의민족, 틱톡, 일본 라인, 스포티파이 같은 유수의 기업 제품에 적용되는 타깃 광고 안에는 몰로코의 머신러닝(기계학습) 소프트웨어가 작동 중이다. 스미스 회장은 “컴퓨터 산업은 지난 50년 발전한 것보다 앞으로 50년간 더욱 발전할 것”이라며 “주류로 부상한 B2B 사스 시장에서 한국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SaaS(Software as a Service)

클라우드(가상 서버를 활용한 원격 컴퓨팅) 환경에서 이뤄지는 소프트웨어 제공 서비스. 문서 작성, 회계 등 프로그램을 PC에 설치하는 대신 매달 일정액의 구독료를 내고 인터넷으로 접속해 사용하는 방식이다. 기기나 장소 등에 제약 없이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B2B(Business to Business)

기업과 기업 사이에 이뤄지는 전자상거래 모델. 기업이 소비자에게 직접 상품이나 서비스를 파는 B2C(Business to Consumer) 모델과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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