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의 포성이 한창이던 1918년, 스페인 독감이 세계를 휩쓸었다. 4000만~5000만 명이 이 병으로 죽었다. 많게는 1억명이 사망했다고 추산한 자료도 있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세계 경제에 전염병은 치명상을 입혔다. 로버트 배로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가 스페인 독감이 경제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스페인 독감으로 인해 전 세계 43개 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은 평균 6% 하락하고, 1인당 실질 소비액은 8% 감소했다.

2년 넘게 이어지는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에 더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인류 앞에 100년 전의 악몽이 다시 어른거리고 있다. 600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코로나로 인해 2020년 3월부터 작년 11월 말까지 세계 인구 99%의 소득이 줄고, 1억6000만 명이 빈곤층으로 전락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닥친 전쟁은 실업과 고물가, 빈곤이라는 삼각 파도를 쓰나미로 증폭시키고 있다.

◇절대빈곤 인구 1억명 증가

지난 1월 26일 인도 비하르주에서 철도공사의 채용지침 변경에 반발한 시위대들이 열차에 불을 지르고 있다. 코로나가 불러온 인도의 청년 일자리 난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AFP 연합뉴스

지난 1월 인도 북동부 비하르주에서 취업준비생 수백 명이 열차에 불을 지르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발단은 철도공사의 채용 지침 변경이었다. 인도에서 인기 있는 직장인 철도공사는 당초 필기시험으로 3만5000명을 채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필기시험 합격자들을 대상으로 한 번 더 시험을 치러 최종 합격자를 선발하겠다고 돌연 지침을 바꿨다. 그러자 일자리에 목말라 있던 응시자들이 불공정하다며 폭발한 것이다. 이 시험에는 인도 전역에서 1250만명이 응시했다.

이 시위는 코로나가 할퀴고 간 인도의 현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백신 보급 지연과 의료시설 부족으로 인도에서는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51만명이 코로나로 사망했다. 한때 장례식장이 부족해 강에 던져진 시체를 들개가 뜯어먹는 지옥 같은 광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코로나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인도 정부는 고강도 봉쇄 조치를 시행했고, 경제 활동이 멈추자 실업자가 폭증했다. 외국에서 일하다 본국으로 추방된 노동자들도 취업 경쟁에 가세했다.

코로나 2차 유행이 정점이던 지난해 2분기 인도의 실업률은 전 분기 9.3%에서 12.6%로 급등했다. 코로나가 정점을 지났지만 그림자는 여전히 짙다. 지난해 12월 현재 인도의 실업률은 7.9%, 실업자는 5300만명에 달한다. 대다수 전문가는 이 숫자조차 상당히 과소 집계됐다고 본다. 작년 12월 인도 중부 마디야프라데시주에서는 중앙정부가 잡역부, 운전기사, 경비 등 15명을 뽑겠다는 공고를 냈는데, 대졸자를 포함해 전국에서 1만1000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지원자 중 한 명인 지텐드라 마유라는 지역 TV에 “법대를 졸업하고 판사 시험을 준비 중인데, 책 살 돈이 없어 운전기사에 응시했다”고 했다.

인도와 마찬가지로 많은 신흥국이 코로나로 인해 일자리에 직격탄을 맞았다. 남아공의 경우 2019년 7월 29%이던 실업률이 지난해 7월 34.4%로 뛰었고, 인도네시아는 코로나 전 4%대이던 실업률이 6%대로 치솟았다. 경제 통계 사이트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1억8000만명대이던 전 세계 실업자 수는 2020년과 2021년 각각 2억2000만명대를 기록했다. 특히 취약계층인 여성과 청년 일자리가 가장 많이 증발했다.

막대한 인명 손실과 경제적 피해를 딛고 회복을 준비하던 인도 경제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또 한 번 휘청거리고 있다. 인도는 원유 수요량 중 85%를 수입하는 세계 2위 원유 수입국이어서 국제 원유 가격에 큰 영향을 받는다. 노무라증권은 원유 가격이 10% 오를 경우 인도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0.2%포인트 하락하고 물가는 0.4%포인트 상승해 아시아 국가 중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1월 인도의 소비자물가는 6%, 식료품 가격은 5.4% 뛰어 이미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현지 매체인 인디아투데이는 “급격한 물가 상승이 서민들에게 재앙을 안기고 있다”고 전했다.

비슷한 일이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스리랑카 교육 당국은 최근 1주일간 치를 예정이던 학기 말 시험을 연기했다. 종이와 잉크를 수입할 외화가 바닥나 시험지를 인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가의 주수입원인 관광산업이 코로나로 심각한 타격을 받으면서 현재 스리랑카의 외화보유액은 올해 외채 상환액(70억달러)에도 못 미치는 20억달러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에 동조해 중국에서 빌려온 막대한 차관도 독이 됐다. 스리랑카의 대중(對中) 채무는 34억달러(약 4조1000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에너지와 식량 가격 인상 등이 겹쳐 지난 2월 스리랑카 물가상승률은 13년 만에 가장 높은 15.1%를 기록했다. 결국 고타바야 라자팍사 스리랑카 대통령은 중국에 채무 재조정을 요청했다 거절당하자 지난 16일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겠다고 선언했다.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타격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물가 상승이 겹쳐 향후 신흥국들의 고통은 배가될 전망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이미 코로나로 인해 지난 2020년 전 세계 절대빈곤 인구는 20년 전 숫자보다 처음으로 늘었다. 절대빈곤이란 하루 약 2300원(1.9달러) 이하로 생계를 꾸려가는 것을 의미한다. 2015년 7억4400만명이던 절대빈곤 인구는 2019년까지 매년 2000만~3000만명씩 감소하다가 코로나가 터진 2020년 7억1000만명으로 다시 증가했다. 세계은행은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6억1300만명으로 줄었어야 할 절대빈곤 인구가 코로나 때문에 9700만명 늘었다”고 분석했다.

◇중산층 짓누르는 물가 압력

신흥국만큼은 아니지만, 선진국 역시 코로나로 인해 이미 적잖은 타격을 받았다. OECD가 발표한 가계의 처분가능소득(가계의 수입 가운데 소비와 저축 등으로 소비할 수 있는 소득)을 보면, 2020년 유로존 국가의 평균 가계가처분소득은 전년 보다 0.3% 줄었다. 유럽 재정 위기가 닥친 2013년 이후 첫 감소다. 영국 가계의 가처분소득도 평균 516만원(3203 파운드) 줄었다.

같은 해 미국도 가계의 중위 소득(전체 가구를 소득 순위로 나열했을 때, 중간에 해당하는 가구의 소득)이 전년(6만9560달러)보다 2.9% 감소한 6만7521달러(약 7920만원)를 기록했다. 미국의 중위 소득이 감소한 것은 금융 위기 여파가 닥친 2011년 이후 처음이다. 섀넌 시어리 웰스파고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정부가 충분한 재정 지원을 하지 않았다면, 빈곤의 증가는 더욱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코로나가 터진 2020년 4월부터 작년 2월까지 11개월 연속으로 실질임금이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대만도 작년 월평균 통상임금(약 185만원)이 전년보다 1.9% 올랐지만, 실질 임금(약 178만원)은 2016년 이후 처음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급등한 물가가 바윗돌처럼 중산층과 서민을 짓누르고 있다. 미국은 지난달 에너지 관련 물가가 전년보다 25% 올랐고, 석유 가격은 43% 급등했다. 중산층의 삶과 밀접한 중고차·트럭(41%), 식음료(7.6%), 육류·생선·계란(13%)도 적지 않게 올랐다. 미국 CNBC는 “물가 상승으로 중산층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며 “경제학자들이 물가 상승에 따른 불평등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고 전했다.

체감 물가는 지표를 넘어선다. 20여 년 동안 미국 미네소타주에 거주하는 교민 김모(66)씨는 “매주 코스트코에서 장을 보는데 1년 전보다 물가가 20% 정도는 오른 것 같다”고 했다. 보통 소고기와 야채 등을 담으면 150~200달러면 가능했는데, 지금은 250~300달러 정도가 든다고 했다. 그는 “소고기 스테이크 3개를 묶은 제품이 작년에는 40달러 정도였는데, 지금은 60달러를 훌쩍 넘는다”며 “은퇴 후 연금으로 살아가는데 물가 부담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물가가 오르다 보니 ‘Buy one, get one(하나 사면 하나를 공짜로 준다)’ 하던 할인 행사를 ‘Buy one, get one half(하나를 사면 나머지 하나는 반값)’로 줄이는 업체가 늘었다.

이미 코로나로 감소한 실질 소득은 인플레이션 때문에 더 쪼그라들고 있다. 통장에 찍히는 월급은 늘었지만, 물가가 그보다 더 오르는 것이다. 지난 2월 미국 노동자의 시간당 평균 임금은 31.58달러로 전년(30.04달러)보다는 5.1% 증가했다. 그런데 소비자물가가 전년보다 7.9% 오르면서 미국 노동자의 실질 임금은 오히려 깎였다. 이러다 보니 미국에서는 종업원에게 돌아가는 봉사료(팁)를 올려 임금을 메워주는 음식점도 늘었다. 미국에 거주하는 교민 김모(61)씨는 “원래는 음식값의 15%, 18%, 20%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종업원에게 팁을 주기로 돼 있었는데, 지금은 그 선택폭이 20%, 25%, 30%로 올랐다”며 “음식 값이 10만원이라고 하면 최소 2만원 이상은 팁을 줘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영국도 올해 1월 평균 임금은 4.8% 증가했는데, 물가는 5.5%나 올라 실질 임금은 마이너스다. 블룸버그통신은 “영국 근로자들은 지난해 말 이미 물가 상승으로 인해 임금이 모두 소진된 것을 목격했다. 올해는 더욱 심각한 생활비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했다. 영국 경제·기업연구센터는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영국 국민의 실질소득이 710억파운드(약 114조원)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더 큰 문제는 전쟁으로 인한 식량과 에너지 가격 인상이 아직 물가에 다 반영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전 세계 밀 공급의 30%를 담당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으로 지난달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역대 최고치인 140.7포인트를 기록했다. ‘아랍의 봄’을 촉발한 2011년을 넘어섰다. 그 여파는 3~6개월 뒤 음식료 가격 상승으로 전 세계 소비자들이 본격 체감하게 된다.

지난 19일 스페인 마드리드 시청 앞 광장에서 극우정당 VOX 주최로 열린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스페인 국기와 팻말을 흔들며 물가인상에 항의하고 있다. 2월 스페인 물가는 7.6% 상승해 3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 AFP연합

◇증가하는 빈부격차와 세금 고지서

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경제학과 교수 등 일부 전문가는 “전염병이나 전쟁은 장기적으로는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주식 투자자들의 자산이 줄어드는 등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보다 잃을 게 더 많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오히려 빈부격차가 확대되는 징후가 뚜렷하다.

세계불평등연구소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상위 10%가 가진 부는 전 세계 자산의 75.5%로 코로나가 발생하기 직전인 2019년에 비해 0.4%포인트 늘었다. 미국 CNBC방송 등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주식을 보유한 상위 10% 미국인의 주식 가치가 43% 오르는 동안, 하위 90% 미국인이 가진 주식 가치는 33% 오르는 데 그쳤다. 이렇다 보니 코로나 전만 해도 전체 미국 주식의 88%를 차지했던 상위 10%의 부자들은 89%로 1%포인트 늘었다.

경제적 고통과 빈부격차가 커지는 와중에 국민에게 세금 고지서를 내미는 국가도 점차 늘고 있다. 코로나 방역과 지원으로 재정 여력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는 작년 3월 법인세율을 올렸고, 9월엔 소득의 1.25%에 해당하는 보건·사회복지세를 신설했다. 각종 세금 감면도 축소했다. 이로 인해 영국 정부는 연간 20조원(120억파운드)의 세금을 더 걷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연봉 5000만원(3만1000파운드) 정도 받는 영국 근로자가 매년 43만원(268파운드)의 세금을 추가적으로 부담하게 될 것으로 추산했다.

캐나다 토론토시는 지난해 주택 소유자 재산세를 4.4% 올리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시민들은 연평균 141달러의 세금을 더 내야 한다.

호주는 향후 10년간 재정이 520억달러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세금 인상을 준비 중이다. 시드니모닝헤럴드는 연소득 2만~5만달러 근로자의 경우 세금이 6.6%가량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시드니모닝헤럴드는 “정부 수입 가운데 개인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율은 1999년 이후 가장 높을 것”이라며 “정부가 코로나로 인해 발생한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일반 근로자들에게 점점 더 손을 벌릴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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