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고 인기 스포츠 기구인 미 프로풋볼리그(NFL)는 전자 상거래 업체이자 빅테크 기업 아마존과 ‘선데이 티켓 패키지’ 중계권 협상을 벌이고 있다. 미국 NFL 팬들은 사는 지역에 따라 일부 경기만 TV로 시청할 수 있는데, 이 패키지를 구매하면 어떤 경기든 볼 수 있게 된다. 미국 경제 매체 CNBC에 따르면, 아마존은 패키지 중계권을 얻는 대가로 NFL에 연간 20억달러(약 2조3500억원)에서 25억달러(약 2조9400억원)를 내야할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중계권자인 위성방송TV 업체 디렉TV(DirecTV)가 내는 돈 15억달러보다 최대 67% 많은 금액이다.

아마존만 관심을 갖는 게 아니다. 스포츠 매체 ESPN을 소유한 디즈니, IT 기업 애플 등 쟁쟁한 글로벌 기업들도 선데이 티켓 패키지 스트리밍 중계권 확보전에 뛰어들었다. 지난 시즌 NFL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로 시즌 일정이 변경되고 무관중으로 진행되면서 전체 32팀이 총 40억달러 손해를 봤다. 덩달아 팬들의 관심까지 떨어져 TV 시청률도 7% 정도 떨어졌다. 이 위기 속에서 NFL이 찾은 답이 라이브 스트리밍 시장 공략이다. 전통적인 TV보다 좀 더 자유롭게 영상을 즐길 수 있는 스트리밍으로 시청 방식이 옮겨가는 ‘코드 커팅(cord cutting)’이 대세가 되자, 발 빠르게 이를 활용해 코로나로 입은 손해를 만회할 찬스를 잡은 것이다.

세상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 이전과 이후로 나뉘고, 스포츠 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스포츠인들은 격렬하게 신체를 움직이며 타인과 접촉하는 경우가 많아 코로나로 인한 타격을 유독 크게 받았다. 이 때문에 기존 스포츠가 몰락하거나 새 스포츠가 인기를 누리는 지각 변동이 일어났고, 이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스포츠 산업계의 몸부림도 뜨거워지고 있다.

/일러스트=안병현

◇코로나에 스포츠 산업 매출 83조원 증발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더 비즈니스 리서치가 지난 5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세계 스포츠 산업 규모는 2019년 4588억달러(약 540조원)에서 2020년 3883억달러로 15.4% 역성장했다. 스포츠 관람료, 중계권료, 연계 상품, 경기장 시설 운영비 등을 통합해 집계한 수치다. 각국이 코로나 예방을 이유로 도시를 봉쇄하거나 강력한 거리 두기 조치를 시행하면서 주요 대회가 중단됐고, 개인의 스포츠 참여 활동 빈도도 크게 줄어든 탓이다.

특히 관중 수입과 오프라인 굿즈(상품) 판매 등에 의존하는 프로 스포츠의 손해가 막심했다. 미 경제지 포브스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NFL, 아이스하키(NHL), 농구(NBA), 야구(MLB) 등 4대 프로스포츠와 미 대학스포츠리그 농구(NCAA)는 141억달러(약 16조원) 손실을 입었다. 코로나 기간 NHL과 NBA는 연고지 대신 ‘버블(코로나를 제어하기 쉽도록 이동이 제한된 공간)’ 방식으로 경기를 치렀고, MLB는 단축 리그, NFL은 무관중 경기를 펼쳤다. 그 결과 수입에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종목별로 편차는 있지만, 프로 스포츠는 관중 입장을 통해 발생하는 ‘경기장 내 수입’이 전체 매출의 40~70%를 차지한다.

세계 최고 인기 스포츠인 축구도 마찬가지였다. 글로벌 컨설팅사 KPMG에 따르면, 지난 2020~2021 시즌 유럽 5대 프로축구 리그(잉글랜드⋅이탈리아⋅스페인⋅독일⋅프랑스) 클럽들은 총 20억유로(약 2조8000억원)에 달하는 손해를 봤다. 역시 리그 중단과 무관중 경기의 여파다.

코로나 직격탄에 재빨리 대처하지 못한 구단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컨설팅 업체 딜로이트 자료에 따르면 세계적인 명문 축구팀인 스페인의 FC바르셀로나는 홈경기장(10만석) 티켓 수입을 포함해 2019~2020 시즌 매출이 전 시즌 대비 1억1400만파운드(약 1852억원) 줄어들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도 별다른 해결책을 찾지 못한 탓에 임금 삭감 압박에 휩싸였고 결국 세계 최고 스타 리오넬 메시를 이적료 한 푼 받지 못하고 자유 계약 선수로 풀어줘야 했다. 또 영입한 지 한 달 된 선수를 재이적시키는 등 방출 선수가 10명을 넘으면서 전력이 크게 약화됐고, 코로나 2년 만에 그저 그런 팀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이 밖에 ‘황사 머니’로 급성장해오던 중국 축구 리그에선 코로나로 인한 모기업의 재정난으로 구단 줄해체 사태가 벌어지고 호주에선 전 시즌 우승팀이 선수단을 전원 해고하는 일도 있었다. 세계선수협회(WPA)는 “지난 30여 년간 전례 없이 성장해온 프로 스포츠 경제의 근본적 취약성을 팬데믹이 드러냈다”고 했다.

지난 8월 프로 축구 K리그2 경남FC 홈구장인 창원축구센터 매표소에 붙은 무관중 경기 공지문. 코로나 사태로 관중 입장이 제한되면서 전 세계 프로 스포츠 구단들은 매출에 큰 타격을 입었다. /프로축구연맹

◇거리 두기 가능한 레저 스포츠는 급성장

하지만 모든 스포츠 산업이 동시에 하향 곡선을 그린 건 아니다. 개인 참여형 스포츠, 그중에서도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가능한 종목들은 오히려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 새로운 기회를 발견했다.

대표적인 종목이 골프다. 미국 내셔널골프파운데이션(NGF)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진행된 라운드 수는 5억200만라운드로, 2019년보다 6100만라운드(약 13.9%) 증가했다. 타이거 우즈 열풍이 일었던 1997년 이후 가장 가파른 상승세다. 2020년 3월과 4월엔 라운드 수가 각각 8.5%, 42.2% 급감했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가능하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갑작스레 인기가 늘었다. 영국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지난해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간 치러진 라운드 수가 2019년 같은 기간에 비해 59%나 증가했다. 골프 장비 제조 업체도 덩달아 신을 냈다. 골프 전문 시장조사 업체 데이터테크에 따르면 장비 업체들의 2020년 매출은 전년 대비 10.1% 성장한 28억1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조 베디츠 NGF 회장은 “21세기 들어 골프 비즈니스에서 이렇게 낙관주의가 팽배했던 적이 없었다”고 했다.

사이클, 암벽등반, 수상 스포츠 등 야외에서 혼자 즐길 수 있는 레저 스포츠들도 붐을 맞았다. 미국에서 스포츠 업체 합병 등을 진행해온 로펌 호건 로벨스는 “골퍼와 자전거 라이더, 암벽등반가들이 증가하면서 시장 규모와 이와 관련된 인수·합병 기회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회계감사 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세계 스포츠 산업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앞으로 성장 잠재력이 높은 스포츠 10종목′을 조사한 결과, 개인 참여도가 높은 레저형 스포츠가 나란히 4~8위에 올라 럭비(9위)와 미식축구(10위)를 제쳤다.

INFOGRAPHICS - 희비 엇갈린 세계 스포츠 산업 /그래픽= 박상훈

◇스포츠 베팅 시장도 고공 비행

경기 내용이나 결과를 두고 돈내기를 하는 ‘스포츠 베팅’ 시장도 코로나 대유행을 계기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시온은 2020년 1311억달러(약 154조원)인 글로벌 베팅 시장이 연평균 8.83% 성장해 2028년 1793억달러(약 2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면서도 스포츠에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스포츠 베팅 시장이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마켓리서치퓨처는 2019년(249억8800만달러)부터 2026년(595억3100만달러)까지 온라인 스포츠 베팅 시장 규모가 매년 13.6%씩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온라인 베팅장은 물리적 점포를 운영하지 않아도 돼 고정비용이 훨씬 낮다”는 이유를 들어 향후 10년간 온라인 스포츠 베팅 산업의 연간 성장률이 무려 40%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밝은 전망 속에 베팅 업체 주식에도 돈이 몰려 드래프트킹스는 최근 한 달 동안 주가가 14.2%, 시저스엔터테인먼트는 23.4% 올랐다. 딜로이트는 “베팅에 참여하는 팬들은 좋아하는 팀 외의 경기에도 관심을 둘 가능성이 크다”며 “스포츠 기구들이 이와 연계해 관심을 붙잡을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스포츠 도박도 성장을 위한 지렛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TV 쇠퇴 가속화··· 디지털에 사활 거는 전통 스포츠

하지만 전통적인 인기 스포츠 구단들은 커다란 도전에 직면해 있다. 2021년 10월 현재 미국 야구, 유럽 축구 등 일부 종목에선 관중이 경기장으로 되돌아왔지만 대부분 국가에선 회복이 요원한 상황이다. TV 시청률이 지속적으로 하락 중인 것도 위험 신호다. 이런 상황에서 스포츠 업계가 찾은 해답은 ‘온라인’이다. 딜로이트는 ‘2021 스포츠 산업 전망’ 보고서에서 “‘디지털 툴’을 활용해 새로운 수익 창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런 점에서 최근 각광받는 분야가 스포츠 스트리밍 시장이다. 이전까지 스포츠는 ‘실시간 중계’가 중요하다는 특성 때문에 OTT 서비스(인터넷으로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을 제공하는 것) 콘텐츠로서 가치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OTT 업계의 경쟁이 가열되면서, 차별화된 콘텐츠를 확보하려는 OTT 업계와 디지털로 진출하려는 스포츠 업계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 시청자가 자신이 원하는 선수의 움직임만 지켜보거나 골·홈런 장면 앵글을 자기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기능 같은 기술 발전도 시청자들을 스포츠 스트리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디지털 영상 업체 그라비요(Grabyo) 조사 결과, 2019년 이후 스포츠 시청 방식에서 TV를 선택한 인원은 9% 하락했으나 스트리밍 구독은 41% 늘었다. 베리파이드 마켓 리서치는 스포츠 스트리밍 시장이 2020년 181억달러에서 2028년 873억달러로 매년 20.1%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경제포럼은 “코로나가 스포츠 콘텐츠를 배포하기 위한 D2C(Direct to Customer) 서비스의 채택을 촉진할 것이며 팬데믹이 진정되더라도 기존 TV의 쇠퇴는 가속화할 것”이라고 했다.

스포츠 구단들이 눈여겨보는 또 다른 디지털 툴은 e스포츠다. NBA 피닉스 선스는 지난해 코로나로 경기가 중단되자 농구 게임인 NBA2K로 실제 경기 상대였던 댈러스 매버릭스와 시뮬레이션 게임을 벌이고 트위치로 스트리밍해 조회수 22만1000회를 달성했다. 국내에선 프로 축구 K리그가 지난해와 올해 e스포츠와 연계한 ‘e K리그’를 열어 누적 시청자 300만명을 기록했다. 프로축구연맹 이종권 홍보팀장은 “온라인 사업 없이 안정적으로 관심을 얻고 수익을 도모하기가 어려운 ‘뉴노멀’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마케팅으로 이름을 얻은 라임라이트미디어 대표 마이크 배런은 포브스에 “코로나 이후 스포츠 업계는 e스포츠,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인플루언서 마케팅 등에서 경제적 발전과 온라인 혁신을 발견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온라인은 이제 선택하거나 고려할 대상이 아니라, 바로 지금 스포츠를 팔기(sell) 위한 모든 것(everything)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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