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엔 이 분야 세계 최대 업체인 스포티파이도 한국에 진출, 국내 오디오 콘텐츠 시장을 더 뜨겁게 달굴 전망이다.

인터넷 음악 서비스 플로(FLO)는 올해부터 가입자에게 음악 외에 매주 10권의 오디오북(audiobook·음성으로 읽어주는 책)을 제공한다. 금융·경제를 다루는 ‘어피티’와 20~30대의 트렌드 뉴스 ‘캐릿’ 등 팟캐스트(podcast·인터넷 라디오)도 시작했다. 소비자들이 음악 외에 더 다양한 오디오 콘텐츠를 원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경쟁 서비스인 멜론(Melon)과 지니뮤직은 빅데이터와 AI(인공지능)를 이용한 음악 추천 시스템도 도입했다. 미리 음악을 선택하지 않아도, 앱을 실행하기만 하면 가입자의 취향을 ‘저격’하는 음악이 계속 쏟아져 나온다. 나만을 위한 개인화된 ‘음악 방송’이 생긴 셈이다.

국내에서 이 구독형 오디오 스트리밍 서비스들을 이용하는 사람은 120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지난 2일엔 이 분야 세계 최대 업체인 스포티파이도 한국에 진출, 국내 오디오 콘텐츠 시장을 더 뜨겁게 달굴 전망이다. 제레미 얼리치 스포티파이 음악사업부 공동대표는 13일 Mint 인터뷰에서 “스포티파이는 더 이상 음악 회사가 아니라 오디오 회사”라며 “앞으로 오디오 콘텐츠 시장이 더 성장할 것으로 보고 투자를 더 늘리고 있다”라고 했다.

넷플릭스 같은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에 가려 잊힌 줄 알았던 오디오 콘텐츠 시장이 급부상하고 있다. 기존 스트리밍 서비스에 AI 스피커,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카 오디오 등이 결합하면서 오디오 콘텐츠를 즐길 방법이 늘어났다. 여기에 오디오북과 팟캐스트, 음성 기반 소셜미디어도 인기를 끌며 오디오 콘텐츠 생태계 자체가 진화하고 있다. 세계 시장에선 이미 아마존과 애플, 구글 등 대형 기업 간 경쟁에 불이 붙었다. 2019년 기준 세계 6위의 오디오 콘텐츠 시장인 한국도 더 이상 예외가 아니다.

그래픽/자료=국제음반산업협회

◇사양 산업 되살린 ‘스트리밍 혁명’

오디오 콘텐츠는 6~7년 전만 해도 사양 산업 취급을 받았다. 2000년대 초 인터넷 음악 공유 서비스가 시작되며 음반 구매량이 크게 줄어들면서다. 실제로 1999년 252억달러(약 28조1000억원)였던 세계 음반 산업 매출은 2008년에는 167억 달러(약 18조6000억원)로 3분의 2 토막이 났다. 이런 트렌드는 2003년 애플의 아이튠스가 ‘디지털 음원 시장’의 문을 연 이후에도 지속됐다. 아이튠스는 곡당 0.99달러를 내고 음원을 내려받아 아이팟(iPod) 등에서 들을 수 있는 편리성으로 성공을 거뒀지만, 시장의 흐름을 바꾸지는 못했다.

오디오 콘텐츠의 암울한 미래를 바꾼 것은 스트리밍 서비스였다. 2008년 스웨덴에서 창업한 스포티파이가 월 9.99달러를 내면 수백만 곡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선보였다. 음악을 구입하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빌려 듣는 것이다. 특히 음악 사이에 광고를 넣는 방식으로 수익을 내 음반 업체와 나눠 가짐으로써 무료 서비스를 가능케 한 것이 ‘대박’으로 이어졌다. 스포티파이는 2011년 세계 최대 음악 시장인 미국에 진출, 6000만 곡의 방대한 음원을 확보하고 “당신이 원하는 모든 음악이 여기 있다”고 선전했다. 사업 초기 6년간 스포티파이가 음반 업계에 저작권료로 지불한 금액은 20억달러(약 2조2300억원)에 이른다.

스트리밍의 등장과 함께 오디오 콘텐츠는 기사회생했다. 2014년 140억달러(약 15조6000억원)까지 고꾸라졌던 세계 음반 산업 매출은 2019년 202억달러(약 22조5000억원)로 반등했다. 같은 기간 CD 등 음반 매출은 59억달러에서 44억달러로, 음원 다운로드도 40억달러에서 15억달러로 급감했지만, 스트리밍 매출은 19억달러에서 114억달러로 6배로 폭증, 음악 산업 매출의 56.4%를 차지했다.

오디오 콘텐츠 시장이 스트리밍 중심으로 성장하자 애플, 아마존, 구글까지 잇따라 뛰어들었다. 시장 조사 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기준 스포티파이의 시장점유율이 34%로 1위이고, 애플뮤직(21%)과 아마존뮤직(15%)이 그 뒤를 이었다.

일러스트=안병현

◇비디오 따라잡는 오디오 콘텐츠

오디오 콘텐츠 시장이 폭발적 성장을 보이며 OTT 시장과의 규모 격차도 줄어들고 있다. 2019년 기준 세계 오디오 콘텐츠 시장 규모는 210억~220억달러 내외로 OTT 시장(852억달러)의 4분의 1 정도로 추정된다. 골드만삭스는 이러한 오디오 콘텐츠 시장을 놓고 “2030년에는 오디오 스트리밍 시장의 규모만 750억달러(약 82조6200억원)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0년 안에 약 3배가 되는 것이다.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오디오 콘텐츠 시장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먼저 AI 스피커와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스마트 TV 등 오디오 스트리밍을 이용할 수 있는 기기들이 크게 늘었다. 오디오 콘텐츠는 이 기기들을 이용해 출퇴근 시 운전을 하면서, 집에서 집안일이나 다른 취미 생활을 하면서 장시간, 손쉽게 즐길 수 있다. 시장 조사 기관들은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시장은 2018년 111억달러에서 2026년 215억달러로, 또 AI 스피커 시장은 2019년 84억달러에서 2025년 156억달러로 6~7년간 2배가량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오디오 콘텐츠 시장의 성장 폭 역시 그 이상이 될 것이란 예상이 자연스레 나온다.

오디오북, 팟캐스트, 클럽하우스 같은 음성 기반 소셜미디어 등 오디오 콘텐츠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오디오북의 경우 책 자체를 읽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책을 읽을 여유마저 줄어든 것이 시장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 교육과 육아에 오디오북을 활용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오더블(Audible), 스크리브드(Scribd) 등 월 구독형 스트리밍 서비스가 인기다.

딜로이트는 지난해 미국은 전체 인구의 22.9%인 7600만 명, 중국은 24.5%인 3억5000만 명이 오디오북을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전 세계 오디오북 시장이 향후 연평균 24% 이상의 성장세를 이어나갈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한국에서도 네이버 오디오클립과 팟빵, 스웨덴 스토리텔이 오디오북 서비스를 하고 있다. 시장 규모는 300억원대로 추정된다.

팟캐스트 역시 오디오북 못지않은 성장세다. 딜로이트는 2020년 10억달러 규모였던 전 세계 팟캐스트 시장이 2025년엔 33억달러로 5년 만에 3.3배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스마트폰과 AI 스피커 등으로 팟캐스트를 라디오처럼 쉽게 들을 수 있게 됐고, 사람들의 정치적, 사회·문화적 관심사가 다양화하면서 니치(niche·틈새) 미디어로 인식되어 온 팟캐스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 원동력이다. 국내 최대 팟캐스트 서비스 팟빵은 1000만 명 이상이 이용하고, 연간 청취 시간이 2억 시간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클럽하우스는 오디오 콘텐츠 시장의 진화와 발전 가능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해 4월 미국 스타트업 ‘알파익스플로레이션'이 출시해 현재 전 세계에서 600만 명 이상이 사용 중이다. 기존 메신저의 채팅방 서비스와 비슷하지만, 문자 대신 실시간 음성으로 대화를 나누고, 초대받은 사람만 가입이 가능하다. 테슬라 CEO(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 등 유명인들이 이용하면서 유명해졌고, 정치인과 연예인 사이에 크게 유행하고 있다.

◇가입자·콘텐츠 놓고 무한 경쟁

이미 세계적 기업들이 급성장하는 오디오 콘텐츠 시장에서 혈투를 벌이고 있다. 아마존은 유료 멤버십 서비스 ‘아마존 프라임’ 회원에게 무료로 200만 곡의 스트리밍을 제공한다. 월 9.99달러에 5000만 곡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는 ‘아마존 뮤직 언리미티드’도 있다. 지난해엔 스포티파이를 겨냥, 광고 기반 무료 음원 서비스도 내놨다.

애플은 아이폰과 아이패드, 애플워치 등에 애플뮤직을 기본 탑재하고, 지난해 9월부터 애플뮤직을 비롯해 애플 생태계의 모든 콘텐츠를 한 번에 구독할 수 있는 ‘애플원’이라는 서비스를 내놨다. 월 14.95달러로 음원 스트리밍은 물론 애플티비플러스(동영상), 애플아케이드(게임)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엔비디아와 공동 개발한 제네시스 GV80의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내장된 앱으로 음악과 팟캐스트, 오디오북 등 다양한 스트리밍 오디오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다. / 현대차그룹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서비스도 격전지다. 모바일 기기와 차량을 블루투스로 연동하는 기존 방식에서 나아가 아예 차량의 인포테인먼트 장치에 스트리밍 앱을 탑재하고 있다. 스포티파이는 테슬라의 모델3·모델S·모델X에 탑재돼 미국과 캐나다, 홍콩 등에서 마치 내장된 카 오디오처럼 사용할 수 있다. 포르셰의 전기 스포츠카 타이칸(Taycan)에는 애플뮤직이 탑재됐다.

팟캐스트 선점 경쟁도 뜨겁다. 스포티파이는 팟캐스트 제작사 ‘김릿’ ‘파캐스트’ ‘더링어’에 이어 팟캐스트 제작서비스 ‘앵커’, 광고 플랫폼 ‘메가폰’을 줄줄이 인수했다. 아마존뮤직은 지난해 9월 팟캐스트 기능을 추가하고, 팟캐스트 제작사 ‘원더리’를 인수했다. 애플은 팟캐스트 큐레이션 앱인 ‘스카우트FM’을 인수해 자체 팟캐스트 제작을 추진 중이다. 뉴욕타임스도 최근 오디오 콘텐츠 스타트업 ‘오덤’을 인수했다.

스포티파이

◇‘세계 6위’ 한국 시장의 운명은

스포티파이의 한국 진출로 오디오 콘텐츠 전쟁의 장(場)은 한국으로 넓어졌다. 글로벌 음악 산업에서 K팝 콘텐츠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한국은 오디오 콘텐츠 소비 시장뿐만 아니라 공급 시장으로서도 부각되고 있다. 실제로 한국 오디오 콘텐츠(음원 시장) 규모는 미국·일본·영국·독일·프랑스에 이어 세계 6위다. 또 2020년 BTS(방탄소년단)와 블랙핑크, 아이즈원 등 한국 아티스트의 스포티파이 스트리밍 횟수는 106억7000만 회를 넘어섰다.

현재 국내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는 멜론(34.1%)과 지니뮤직(23.1%), 플로(16.2%)가 선점하고 있다. 각각 카카오(멜론)라는 독점 IT 플랫폼 기업과 SK텔레콤(플로), KT(지니뮤직) 등 대형 통신 기업이 운영하고 있어 시장 장악력이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디오북과 팟캐스트 서비스는 네이버와 팟빵이 선점한 상태다.

이에 비해 해외 업체들은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한국어 콘텐츠가 부족한 것이 문제로 지적된다. 스포티파이를 시장 지배자로 만들어 준 광고 기반 무료 스트리밍은 국내에서 제공되지 않는다. 아이유, 임영웅, 지코 등 국내 인기 가수들의 음원이 해외 업체들에 제공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전문가들은 해외 업체들이 오디오북과 팟캐스트 서비스를 전략적으로 파고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내 미디어 기업과 제휴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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